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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발효 음식

삭힌 상어, 고등어 액젓… 세계 각지에 제3의 맛 매력
"Oh, what a smell!"

『 된장찌개와 홍어삼합 앞에서 코를 싸 쥐는 외국인들. 우리 식탁의 정체성 중 하나이기도 한 자랑스러운 발효 음식들은 유독 세계화 앞에서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다. 그러나 사실 발효향은 세계 공통의 맛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즐겨 먹는 발효 음식과 썩은 맛의 은밀한 매력에 대하여.』

한식 세계화를 위해 얼마 전 정부에서 주최한 '어메이징 코리안 테이블' 행사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교차했다.

"한식 중 가장 세계화 가능성이 큰 음식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부침개 같은 전 종류가 아주 훌륭합니다. 된장은 농도를 약간 묽게 해야 할 것 같고요."

  • 앤초비를 얹은 토마토 피자
"된장은 별로였나요?"

"아뇨,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된장은 아주 훌륭한 식재료예요."

국내 요리 잡지와 인터뷰 중인 영국인 셰프 루크 데일 로버츠는 피곤해 보였다. 당장 오늘 저녁에 있을 갈라 디너의 메뉴도 빨리 정해야 하는데 자칫 말실수를 했다가는 민족 고유의 맛을 무시했다고 구설수에 오를 것 같고, 아니 그래도 된장이 냄새가 나는 건 사실이잖아.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인터뷰 장을 떠난 로버츠는 그날 저녁 대게에 된장 드레싱을 곁들인 요리를 선보였다. 된장은 크림처럼 부드럽게 변형돼 있었다.

된장만 빼면 OK?
발효는 부패와 어떻게 다를까. 놀랍게도 전혀 다르지 않다. 미생물이 각종 효소를 분비해 유기 화합물을 산화, 분해, 합성시킨다는 점에서 둘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차이가 있다면 결과론적인 이야기가 되는데, 결과물이 유용하면 발효, 무용하면 부패다. 유용이라는 단어의 뜻이 또 모호하다. 음식의 효용을 맛이라고 정의한다면 맛 있으면 발효 식품, 맛 없으면 음식 쓰레기라는 뜻이 된다. 먹는 사람의 자라온 환경, 그에 따라 형성된 기호가 쓰레기인지 별미인지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발효 식품은 한식의 뿌리다. 간장, 고추장, 된장, 청국장, 김치, 액젓 등 소스부터 반찬까지 식탁의 전방위에서 이처럼 발효를 적극 활용하는 민족은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거부 반응 앞에서 더욱 난감해지는 것이다. 한두 가지 음식이 아니라 아예 DNA 자체를 부정당한 마당에 세계화는 물 건너 간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발효향은 한국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음식 쓰레기가 배출되는 나라라면 응당 발효 식품도 있다.

  • 소시지와 사우어크라우트
발효 식품에 대해서 말할 때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빼놓을 수 없다. 적어도 액젓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그들이 한 수위다. 지리적 특성상 넘쳐나는 생선을 소금에 절여 만든 젓갈과 액젓은 밥 중심의 식문화를 가진 동남아인들에게 중요한 반찬이다. 캄보디아에서는 쁘라혹이라는 것을 밥에 비벼 먹는데 장밋빛의 뻑뻑한 장이다. 열대여섯 종류의 생선을 준비해 대가리를 잘라내고 몸통을 나무 통에 넣고 빻아 으깬 후 24시간 동안 묵힌 다음 소금을 넣고 비벼 또 24시간 동안 돗자리에 펼쳐 말린다.

그 후 이것을 반죽해 항아리에 담아 한 달간 발효시키면 특유의 지독한 비린내가 풍기면서 완성된다. 더 두면 항아리 위에서부터 액체가 떠오르는데 이를 떠낸 것이 액젓인 뜩뜨라이다. 베트남의 녁남과 태국의 남플라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녁남은 베트남의 거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 맛을 좌우한다. 유럽에서는 생선을 발효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지중해 인근 국가에서 많이 소비하는 앤초비와 아이슬란드의 삭힌 상어, 토라블롯이 있다.

상어는 홍어의 사촌 뻘로 암모니아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삭혀 먹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상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우유에 재워 두 달 정도 지나면 상어가 삭으면서 홍어 못지 않은 진한 암모니아 향을 풍긴다. 이 후에 약 4개월간 건조시키는데 아이슬란드 인들은 이 암모니아 냄새를 일일이 코로 맡아가며 정확히 언제까지 말려야 할지를 결정한다. 전라도 잔치에 홍어가 주인공이듯 잘 삭혀진 토라블롯도 축제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이다.

김치 같은 채소 발효 식품은 일본에서 많이 보인다. 소금으로 야채를 절인 것을 츠케모노라고 총칭하는데 단무지나 초생강, 락교, 우메보시가 모두 여기 속한다. 유럽의 대표적인 채소 발효 식품은 피클과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다. 사우어크라우트는 시든 양배추를 심을 빼고 잘게 썬 뒤 소금을 뿌려 켜켜이 쌓아 절여 만든다. 이때 포도 잎 같은 것을 위에 덮어 둔다.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정도 발효 과정을 거치는데 우리나라의 김치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달라져 세 달쯤 지났을 때 가장 좋은 풍미를 낸다. 단독으로 먹지 않고 소시지 옆에서 느끼함을 덜어주거나 핫도그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한국은 홍어, 아이슬란드는 상어
식품학자들은 발효된 음식에서 풍기는 시큼하고 톡 쏘는 맛을 두고 제 3의 맛이라 칭하며 주목하고 있다. 이렇듯 발효향은 만국 공통이거늘 왜 된장과 김치는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운 걸까?

  • 녁남을 넣은 베트남식 폭찹
"발효 음식의 향을 결정하는 것은 재료 자체의 맛과 균의 종류입니다"

경희대학교 약학대학 김동현 교수의 말처럼 어떤 음식을 어떻게 썩히느냐에 따라 같은 발효 음식이라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콩, 채소, 생선을 주로 발효시키는 데 반해 서양에서는 고기, 우유 등 축산 식품의 발효가 많다. 재료가 다르니 향이 달라지고 서로 낯설게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재료를 써도 균주에 의해서 맛이 완전히 변하기도 한다. 간단하게 청국장과 낫토만 비교해도 낫토 발효에는 한 가지 균주가 들어가는데 비해 청국장에는 낫토균을 포함해 수십 가지 잡균이 들어간다. 이 잡균들이 청국장의 꼬릿꼬릿한 내음의 정체다. 국내에도 낫토처럼 냄새가 덜한 청국장이 개발돼 있지만 특유의 강한 향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들은 좀처럼 청국장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국 발효 음식의 유별난 냄새는 장벽인 동시에 가능성이다. 발효 음식은 초기 진입 장벽이 높지만 한번 익숙해지고 나면 중독처럼 점점 더 강한 것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처음엔 기무치를 더 좋아해요. 피클이랑 맛이 비슷해서 거부감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몇 번 맛을 본 사람들은 김치의 맛이 더 깊다는 것을 구분해내더라구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치즈에 빠질수록 점점 더 냄새가 독한 치즈를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쿠킹스튜디오 수랏간 김영빈 대표의 말이다.

발효와 부패의 헐렁한 경계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한번 무너지면 발효 공화국인 한국의 음식에 날개가 달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물론 시간은 필요하다. 옛 중국 문헌인 <여씨 춘추>에 따르면 공자도 김치를 좋아하기 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지 않은가.

"주나라 문왕이 저(菹: 김치)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공자가 듣고서 콧등을 찡그리면서 이를 먹은 지 3년 후에야 그 맛을 알더라"

참고서적: 음식전쟁 문화전쟁, 주영하 교수, 사계절출판사
사진제공: 발효음식 상차림, 김영빈, 살림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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