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SBS '골드미스가 간다'
60대 전후의 부부가 진료실을 찾았다. 부인은 자신의 우울증을 고쳐달라고 하면서 남편이 혹시 의부증은 아닌지 진단을 부탁했다. 부인은 이제는 자녀들도 다 출가하여 그 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교회활동을 하다 보면 예상보다 좀 늦어질 수도 있는데, 남편이 수시로 전화를 하고 일찍 돌아오도록 요구하여 다른 사람들 보기에 창피하다고 했다. 심지어 혹시 만나는 사람이 있느냐고 남편이 추궁할 때는 황혼이혼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이 유교적인 교육을 받아서 가정생활에 엄격한 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은 가장으로서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예방할 책임과 권리가 있으며, 요새 많은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데 자신은 그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 부인의 행동거지를 단속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자신의 노력이 도리어 황혼이혼의 위기로 이어진 현실에 대해 난감해 했다

세계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사회 문화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여성의 권리 신장에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남성의 보조자로서의 역할만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여성들은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경제적 권리가 보장되면서 모든 면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구의 문물이 도입되자 그 동안 억압을 받으며 지내왔던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또 경제발전과 더불어 각 가정에서 아들과 딸을 구분하지 않고 교육시키고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면서 여성들은 자신들이 남성보다 결코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결혼한 부인들은 남편에게 의존하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으며, 미혼의 여성들은 더 이상 '현모양처'를 자신의 희망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면서 우리나라 가정 문화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이혼율의 증가일 것이다. 한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여성의 65.9%가 '상황에 따라서는 이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나라는 결혼율의 감소와 이혼율의 증가로 '가정의 해체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정이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과거의 불평등한 부부관계를 벗어나 바람직한 부부관계를 모색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성들의 의식변화가 모두 바람직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여성들의 변화된 의식과 신장된 권리를 제한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사례의 남편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투철한 사람으로 가정의 안정을 지키려는 그 의도가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인의 자유의지와 관계없이 자신의 뜻대로 부인을 통솔하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혼을 화재로 비유하여 보자면, 화재를 피하기 위하여 불이나 전기가 주는 편리를 포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없다.

과거와 달리 현대의 가정은 가장이나 어느 한 사람이 주장하는 것으로 지킬 수 없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의 가정이 쉽게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정의 목표를 가정 자체를 지키려는 것에서 각 개인의 발전을 위해 가정이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각 부부들이 양성의 평등한 관계를 기초로 한 애정관계에서 출발하여 가족 구성원 모두의 자율성과 책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식을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런 노력이 가장 실제적이고도 효과적인 이혼방지책이 될 것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