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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성 생크림을 다오

첨가물 없는 100% 유지방 생크림… 이제 진짜 케이크 맛볼 때
지금까지 케이크에는 너무 많은 면죄부가 주어졌다. 달콤하다고 한 표, 예쁘다고 한 표, 기념일 분위기 제대로 내준다고 한 표. 이렇게 한 표 한 표 쌓이다 보니 어느새 케이크는 맛이라는 본연의 의무에 태만해졌다. 아무리 맛이 없어져도 사람들은 기쁜 날이면 어김없이 제과점에 들러 케이크를 사갈 테니까. 그러나 사실 생크림 케이크는 한 조각 먹고 슬며시 포크를 내려 놓는 굴욕을 당할 만큼 형편 없는 음식이 아니다. 이제 진짜 맛있는 케이크를 맛 볼 때가 왔다.

식물성 크림 VS. 동물성 크림

"마가린과 버터의 차이라고 보시면 돼요."

케이크의 맛과 모양을 좌우하는 새하얀 생크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식물성과 동물성. 둘의 차이점을 묻자 <빵빵빵 파리>의 저자인 양진숙 파티셰가 대답했다.

"식물성 크림에는 사실 생크림이라는 말을 붙이면 안돼요. 거기에는 유지방뿐 아니라 팜유, 야자유 같은 식물성 유지에 여러 가지 첨가물이 들어갔거든요."

우유를 원심분리기에 넣어 추출한 순수한 유지방이 생크림, 즉 동물성 크림이라면 식물성 크림은 그녀의 말대로 각종 첨가물을 넣어 만든 가공품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는 생크림의 맛은 대부분 이 식물성 크림의 맛이다. 크리스마스 때면 거리에 넘쳐나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케이크에는 거의 이 식물성 크림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식물성 크림이 판을 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현재 케이크 문화를 가장 잘 말해주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함성이 터져 나오는 시점에 관한 이야기인데 "와아~" 하는 소리는 보통 케이크를 맛 본 순간이 아닌 케이크 상자를 여는 순간 터져 나온다.

새하얀 케이크에 알록달록한 과일이 올려져 있고 그 옆에 보너스로 귀여운 눈사람과 산타 인형이 올려져 있다면 우리의 기분은 이미 하늘까지 치솟는다. 케이크의 생크림이 오늘 만든 것이든 닷새 전에 만든 것이든, 키위와 귤이 정체 모를 시럽에 절여져 그 본래 맛을 완전히 잃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배 채울 음식은 따로 있고 기분 내려고 산 것뿐이다.

만약 동물성 크림을 썼다면 케이크의 반질반질한 윤기, 윗부분에서 측면으로 떨어지는 날카로운 각, 뾰족하게 끝을 빼낸 크림 장식 같은 것들은 불가능하다. 본래 기포가 많고 뭉침성이 적은 생크림은 한 번에 매끄럽게 바르는 것이 어려워 두어 번 더 손을 대야 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결이 생기면서 상품성과는 안녕을 고하게 된다. 게다가 가격도 동물성 크림의 절반 수준이니 대량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재료일 수밖에 없다. 가장 널리 쓰이는 골드라벨 휘핑크림이 1000ml에 4000원인 반면 덴마크 생크림은 500ml에 4300원선에 판매된다.

장식의 세계에서 음식의 세계로

  • 빵빵빵 파리 - 바나나 타르트
사실 차이가 이것뿐이라면 '프리미엄 케이크'라든지 '웰빙 케이크' 등의 마케팅 문구를 앞세워 얼마든지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어 팔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동물성 크림을 쓰지 않는, 아니 쓰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보존 기간 때문이다.

식물성 휘핑 크림이 멸균 표장한 경우 2~3달은 넉넉히 버티는 반면 동물성 크림은 길어야 일주일로 그 안에 전부 소진하지 않으면 상해 버린다. 이것으로 만든 케이크는 더욱 예민해서 만든 지 몇 시간만 지나도 손가락으로 찍었을 때 묻는 양이 달라지고 이틀이 지나면 맛이 변해버린다. 한 마디로 그날 만든 케이크를 그 다음날 오후까지 전부 팔아 치울 자신이 없다면 동물성 크림을 쓸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이 까다로운 크림을 바르는 순간 케이크는 디자인의 세계에서 맛의 세계로, 장식의 차원에서 음식의 차원으로 넘어간다. 그 고소한 맛, 신선한 우유 내음, 체온에 딱 맞게 녹아 내리는 인체 친화력까지. 식물성 크림이 처음 한 입 먹을 때는 달고 신선하다가도 끝 맛이 느끼해 한 조각 이상 못 먹는 것과 달리 동물성 크림은 마지막 맛까지 깔끔하다. 마치 할아버지의 꿀단지처럼 따로 퍼 먹어도 맛있는 음식 같달까? 특히 케이크라면 질색하는 남자들이나 유제품을 먹을 때마다 소화가 안돼 괴로워하는 사람이라면 동물성 크림으로 생크림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꿔볼 것을 추천한다.

동물성 크림으로 케이크를 만드는 4곳

디저트 대국인 프랑스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 동물성 크림을 고집하기란 쉽지 않다. 비용은 논외로 쳐도 일단 번거롭다. 게다가 기껏 썼는데 사람들이 몰라주면 더 서럽다. 그러므로 아래 소개하는 가게들의 케이크에는 동물성 크림 외에도 주인의 무시무시한 철칙과 주관이 들어가 있다.

  • 빵빵빵 파리
Pain Pain Pain Paris 빵빵빵 파리

홍대 캐슬프라하 골목으로 꺾으면 바로 앞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밝은 하늘색 간판. 빵빵빵 파리는 책과 샹송, 달콤한 디저트,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차와 와인이 있는 공간이다. 프랑스 르꼬르동 블루에서 파티셰 과정을 수료한 양진숙 씨는 그녀가 운영하는 쿠킹 클래스에서 재료들을 모두 꺼내 보여주며 '이보다 못한 재료로 만들 거면 아예 여기서 배웠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시작할 만큼 재료 사용에 까다롭다. 작고 반짝거리는 쇼케이스에는 바나나 타르트와 당근 케이크, 초콜릿 케이크, 딸기 케이크 이렇게 딱 4종류만 있다.

100% 생크림은 물론이고 뉴질랜드 산 버터나 터키산 최고급 건포도인 설타나 등 좋다는 재료는 아낌 없이 들어간 것들이다. 메뉴에는 없지만 주문하면 나오는 퐁당 쇼콜라에도 생크림이 곁들여진다. 시원한 생크림을 뜨끈한 초콜릿 위에 얹어서 먹으면 초콜릿의 진함과 생크림의 고소함이 배로 살아나면서, 둘 다 달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깨끗하게 날려 버린다. 이 외에 생크림과 설탕만 넣고 8시간 동안 저으면서 만든 우유잼은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오리지널 아이템이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이틀 전에 주문하면 고객이 원하는 재료와 크기에 맞춰 만들어 준다. 식사 대용으로 먹을 것인지 디저트로 먹을 것인지, 싫어하는 재료와 좋아하는 재료 등을 정확히 알려주면 더 맛있는 케이크를 즐길 수 있다. 귀띔을 하자면 주인은 당근 케이크와 초콜릿 케이크에 자신이 있다.

Maman Gateau 마망 갸또

  • 빵빵빵 파리 - 당근 케이크
가로수길에 새로 생긴 마망 갸또는 베이킹 스튜디오 겸 카페다. 마포에서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던 피연정 씨가 두 달 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케이크뿐 아니라 생 캐러멜을 맛볼 수 있는데 주인이 일본 홋카이도에서 유지방 40~50%의 고농축 생크림을 넣어(국내 생크림은 대부분 38%선) 만든 생 캐러멜을 경험하면서 시작됐다.

피연정 씨는 이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우유 원심분리기까지 구입했지만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풍미가 강한 유지방에 적응을 못해 최근에는 살짝 농도를 낮췄다고. 플레인과 라즈베리, 홍차, 코코아 등 다양한 맛이 있는데 입에 넣으면 질겅거리지 않고 초콜릿처럼 살살 녹아 내린다. 이 캐러멜은 마망 갸또의 캐러멜 케이크와 캐러멜 아포가토, 캐러멜 마키야토에 전부 들어간다. 마망 갸또가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부쉬 드 노엘이다.

프랑스에서 성탄절마다 먹는 케이크인데 단면이 둥근 장작처럼 생긴 롤 케이크다. 안에는 마망 갸또의 특기인 캐러멜 크림이 가득 들어간다. 50개 한정이며 가격은 3만8000원. 케이크는 동그래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형적인 딸기 생크림 케이크도 판매할 예정이다. 직경 18cm 기준으로 4만5000원이다.

SNOB 스노브

지난 해 봄 문을 연 이후로, 제대로 된 케이크를 만든다는 사람들이 몽땅 홍대로 몰린 지금에도 스노브가 최고의 디저트 카페 리스트 맨 앞에 이름을 올리는 이유는 사장이 변함 없기 때문이다. 손님의 대부분이 동물성 크림과 식물성 크림을 구분하지 못할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크림 비율을 가지고 장난친 적은 한 번도 없다.

  • 마망 갸또
얼 그레이, 초콜릿, 티라미슈 등 다양한 조각 케이크를 판매하는데 모든 케이크에 일관성 있게 질 좋은 생크림을 쓰고 케이크에 들어가는 딸기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시장에 가서 딱 이틀 쓸 분량만 사 가지고 온다. 후레즈 케이크, 후레즈 타르트, 후레즈 프로마주 무스 등 딸기가 들어간 후레즈(불어로 딸기) 시리즈가 가장 인기 있다.

케이크 위에는 큼직한 통 딸기가 올려져 있고 포크로 한 입 베어내면 안에는 반으로 뚝 자른 신선한 딸기가 여기저기 박혀 있다. 쿠키, 조각 파운드 케이크 등 초콜릿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노브에서 직접 만든 것들만 판매한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23~25일 3일간만 판매하는데 80개 한정이라 미리 예약해야 한다. 초콜릿 케이크와 딸기 케이크 중 선택할 수 있고 크기는 2호 사이즈(직경 18cm)로 통일이다. 가격은 3만5000원.

Tokyo Panya 도쿄 팡야

일본은 디저트의 천국이다. 조금만 소문이 나도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드는 바람에 베스트 셀러 맛보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도쿄 시모키타자와의 안젤리카 역시 명물 빵집 중 하나. 이 곳에서 일하던 후지와라 야스마 씨가 지난해 10월 논현동 한적한 골목에 도쿄 팡야를 열었다.

안젤리카에서 팔던 카레빵과 미소빵(일본 된장 미소를 사용한)을 그대로 만들고 신선한 생크림으로 꽉 찬 와플 롤케이크도 판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만드는 케이크다. 일본은 우리 나라와 달리 빵 가게와 케이크 가게가 구분돼 있는데 안젤리카는 말하자면 빵 가게다. 즉 도쿄팡야의 케이크는 파티셰(케이크, 과자 전문)가 아닌 블랑제리(빵 전문)가 만드는 케이크다.

  • 마망 갸또 - 부쉬 드 노엘
"딸기가 있을 때만 케이크를 만들어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딸기 케이크를 좋아하기 때문. 올해 봄에는 4월까지 케이크를 만들었다. 만들어 내온 케이크를 보니 딱 어린 시절 생일상에 올라오던 그 모양이다. 테두리를 따라 딸기를 종종 박아 놓은 것이 촌스럽다 못해 귀엽지만 제일 좋은 국산 생크림을 쓰고 제철 딸기만 고집해가며 제대로 만든 케이크다. 조각 케이크는 없고 원형의 홀 케이크는 하루 전에 주문하면 만들어준다. 딸기 케이크 전문이지만 손님의 요청에 따라 바나나 케이크도 시도해 본 적이 있다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2~3일 전에 주문해야 한다. 큰 사이즈는 2만6000원, 작은 사이즈는 1만8000원.

  • 스노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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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노브 - 후레즈 홀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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