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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경제불황 그리고 돈

■ 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거친 바다로 말하자면 가정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작은 배라 할 수 있다. 원하는 목적지까지 잘 도달하기 위해서는 함께 배를 타고 있는 가족구성원의 협력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때로는 구성원 간에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고, 항해 도중 많은 장애를 만나기도 한다. 더구나 원하지 않은 방향의 해류를 만나면 상당히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렇다고 당장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데에만 목표를 두다 보면, 자신들이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을 잃어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오늘날 우리 가정에 위협을 주는 요소 중에는 경제불황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몇해 전 IMF라는 암초를 만나 많은 가정이 큰 고통을 겪었으며, 가까스로 그 위험에서 벗어난 가정도 현재의 장기적 불황에 또 다시 시련을 겪고 있다.

남편이 충분히 벌어오지 못하거나 부인까지 일터에 나가느라 가족 돌보기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다. 애써 키운 자녀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도 부족해서, 공부를 더 하겠다고 돈을 가져다 쓰기까지 한다. 자녀를 결혼시키려면 혼수나 살림, 그리고 집까지 마련해 주느라 없는 기둥이라도 뽑아내야 할 판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가정에서 '돈' 때문에 불화를 겪게 된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해서도 출산을 미루고, 어린 자녀를 둔 부부는 자기 자녀를 키우는 것이 급해서 부모님의 봉양에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떤 부부는 자녀에게 들여야 하는 돈과 부모에게 드려야 하는 돈의 우선순위로 다투다 파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부모는 자녀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병을 숨기다가 병이 키우거나 때로는 자살이라는 비극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돈'이 과대평가된 세상에 가정이 휩쓸리다 보니 가정의 원래 목표를 상실해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돈'의 위력을 과대평가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탕을 기대하며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고 소문을 따라 몰려다니다가 그나마 조금 있는 돈까지 날리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그런 사람들처럼 돈을 벌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거나 배우자를 탓하게 된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이혼 중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이혼의 비율이 상당한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현상인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해체되는 가정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혼한 가정은 이혼 후에도 계속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자녀를 맡아 키우려면 돈도 돈이려니와 경제활동과 자녀양육 두 가지를 다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혼을 할 때 서로 자녀를 맡지 않으려고 해서 자녀에게 이중의 상처를 주기도 한다. 실제로 부모의 이혼 이후 경제적 이유로 보육시설에 버려지는 자녀들이 적지 않다. 다행히 부모에게 자녀 양육을 맡길 수 있는 경우는 좀 낫지만, 이제는 늘그막에 손자손녀를 맡아야 하는 조부모가 자녀의 이혼에 따른 스트레스와 과로로 병이 날 지경에 놓인다.

우리의 가정은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가족 구성원 각자의 노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및 각 기업에서 가정을 안정시킬 수 있는 여러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용의 안정과 고용기회의 확대를 위한 정책,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을 위한 육아 및 탁아 시설 그리고 방과후 학교 등의 대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나라에서 오히려 이혼율이 높다는 점에서 보면, 역시 각 가정의 구성원들 특히 부부의 사랑과 협력관계를 확립하는 것을 가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상이 살기 좋아지든 각박해지든 우리가 돌아와 쉴 곳은 역시 가정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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