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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으로의 회피'는 미봉책

■ 유태우의 "건강은 선택이다"
제 진료실을 찾아온 30대 중반의 남자분이 있었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위장도 불편하고 몸의 여기 저기 아픈 데가 많았고, 이전에 없었던 증세이었으니 틀림없이 자신의 몸에 큰 병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지요. 증세를 자세히 물어보니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가 않고 대부분 모호한 대답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런 증세를 일으킬 만한 병들과 그분이 갖고 있는 위험요인에 따른 감춰져 있을 수 있는 병들에 대해 철저한 검사를 시행하였지요. 결과는 제가 예상한 것 같이 전부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몸에 질병이 없다는 제 판정에 이 남자분은 전혀 만족하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당혹해 한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었지요.

자, 이 남자분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볼까요? 이 분은 정말로 잘 나가는 로펌의 변호사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고 맡은 일에는 철저한 완벽을 추구하는 생활을 지난 몇 년간 해 온 것이었지요. 그 동안 한 번도 실패라고는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의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의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하면 증세는 가라 않기도 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몸은 더 아파져서 일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만족스럽게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픈 것은 견뎌도 일의 불완벽성은 참을 수가 없었던 이 분의 마음에는 큰 갈등이 일었지요.

이런 마음의 갈등과 몸의 아픔이 반복하다가 이 분이 내린 결론은 자신이 병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가 없었던 이 분이 찾은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질병이었지요. 병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맡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 분의 증세는 물론 몸을 지나치게 써서 생긴 신체기능의 이상 증상이지요. 그렇지만 이 분이 진료실을 찾은 진짜 이유는 증상이 심각해서가 아니라 질병이 있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한 달간 쉬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판정이 절실했던 것입니다.

제 진료실에서는 흔히 보는 이러한 현상을 '질병으로의 회피'라고 합니다. 삶의 부담과 스트레스가 너무 클 때, 자신이 그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을 때 우리의 마음은 돌파구를 찾지요.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질병으로의 회피'입니다. '질병으로의 회피'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증상은 두통, 뒷목 및 어깨통증, 위장장애, 불면증 등 각종 신체기능의 병과 불안, 우울 등의 마음의 병, 더 나아가서는 질병과 증세를 연구를 하고 병원을 자주 가고 검사도 자주 받는 건강불안증 등이고, 아주 심한 경우에는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키는 급성 정신증까지도 발생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스스로가 병원을 찾고, 질병이 없다고 하면 크게 낙담을 하거나, 의사와 검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또 다른 병원을 찾습니다. 어쨌든 증세는 있으니까 검사와 약물을 처방받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검사도 하고 약물도 처방받으며, 또한 의사가 다시 오라고 하는 것을 잘못 해석해서 그것이 바로 자신이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믿기도 하지요.

다른 모든 경우에서 그렇듯이 회피는 문제의 해결이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고통을 면할 수는 있어도, 회피했던 원래의 문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지요. 근본치료인 맞섬은 현재의 선택이 회피임을 자각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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