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가족여행] 해남 두륜산과 대흥사소백산맥 마지막 정기 모은 '만세의 땅' 속 천년고찰의 신비 가득

두륜산 전경
소백의 줄기가 반도의 서남으로 흘러내리면서, 속리, 덕유, 지리의 준봉들을 뛰어넘어 극남의 땅 해남에 이르러 마지막 정기를 모두어 빚어 놓은 산이 해남 두륜산(頭輪山)이다. 무등, 월출과 더불어 산가의 작은 계보를 이루면서 바다를 향해 발치 끝으로 달리는 두륜의 형상은, 뭍을 마무리하는 막내둥이의 버팀이 차라리 애처러움마저 느끼게 한다.

이 산 깊은 품에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는 산사가 대흥사다. 신라 법흥왕 원년(514),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모후 소지 부인을 위해 창건한 절로 천년고찰의 풍모가 절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창건 당시 대둔사로 불렸던 것을 서산대사가 대도량으로 중흥시키면서 대흥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다도의 선인으로 기억되는 큰 인물인 조선 말엽의 초의선사(草衣禪師)도 이 절에서 나온 인물이다.

겨울 산의 스산함이 절 입구의 텅 빈 주차장부터 느껴지지만 자신을 돌아보며 걸을 수 있는 한적함이 오히려 고맙다. 유유자적하면서 걷는 것이 두륜산 대흥사에 이르는 숲길을 걷는 방법이다. 아홉 구비 숲길로 이어져 '구림구곡(九林九曲)'이라 불리는 이 길에 들어서면 발길이 저절로 늦어진다. 길 양옆에는 앙상한 편백나무와 신갈나무가 뒤섞여 있고 군데군데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이런 숲이 양편으로 가지런히 도열하고 있는 숲길을 걸어 수백 보를 오르면 작은 돌다리가 나타난다. 이름하여 피안교(彼岸橋). 상가와 여관촌의 속세가 끝나고 다리를 건너서면서부터 대흥사 경내가 시작되니, 이름 그대로 피안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피안교 바로 전에 유서깊은 여관 유선장이 있다. 300년 동안 대흥사 객사로 이용된 역사를 가진 이 여관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편에 소개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난 해 겨울 '1박2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사전예약을 해야만 묵을 수 있는 곳이 됐다.

반질반질 손때 묻은 툇마루를 달고 있는 을 지나고, 원숭이며 거북의 문양이 소박하게 돋을새김된 이끼 낀 부도 밭도 지난다. 부도 밭 주위로는 한 아름도 더 되는 소나무 다섯 그루가 일렬로 서서 겨울인데도 성성한 초록빛을 잃지 않고 있다. 십삼대선사도량(十三大禪師道場) 석비 위로 수십 개의 부도 군과 탑비들이 늘어선 비전 앞에 서면, 대흥사의 오랜 역사와 여기서 배출된 고승들의 위혼이 저절로 느껴진다. 부도와 탑비는 그 자체가 그대로 사찰 역사의 증거이며 문화재다.

두륜산 케이블카
건널 때마다 하나씩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는 9개의 다리를 다 건너면 이내 대흥사다. 세속의 나그네는 일주문을 지나 피안의 깊숙한 세계로 빨려들어 간다. 서산대사는 일찍이 두륜산과 대흥사를 가리켜 만세의 땅이라고 하였다. 북으로 월출산이 하늘을 떠받드는 기둥이 되고, 남에는 달마산(達磨山)이 지축에 연결되어 있으며, 동서에는 천관산(天冠山)과 선은산(仙隱山)이 대치하고 있으니, 바다와 산이 이곳을 둘러싸 안고 있는데다 골짜기 또한 깊고 그윽하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본래 대흥사의 부속암자가 백여 개를 넘었다 한다. 지금은 대흥(大興)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아직 산자락에 남아있는 암자의 수는 여섯에 불과하다. 대흥사에서 서산대사를 모신 사당인 표충사까지 오면 두륜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진불암(眞佛庵)과 남미륵암을 거치는 길과 다른 하나는 북미륵암을 거치는 길이다. 이 두 암자는 잠시 갈증을 달래고 쉬어갈 수 있어 산행 길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다.

둔륜산에서 가장 높은 곳은 가련봉(703m). 그러나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은 두륜봉이다. 대둔사지(大芚寺誌)를 보면 '백운대가 곧 두륜봉의 정상이다. 양편에 바위가 대립하여 그 사이가 10여 보가 되고, 그 높이는 백 길이 된다. 바위 위로는 돌 하나가 가로 놓여 있어 다리를 이룬다'고 기록되어 있다. 두륜봉이 구름에 휩싸여 천계(天界)를 이루는 날, 발아래 흘러가는 구름을 딛고 올라 보면 가히 선경을 실감할 법하다. 정상에 서면 남으로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의 무수한 섬들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한 아름에 안긴다.

산행할 시간이 부족한 경우에는 두륜산케이블카(061-534-8992)를 타고 고계봉 정상 아래까지 가서 오심재로 향하는 산행도 많이 한다. 케이블카는 대흥사 집단시설지구인 유스호스텔 입구에서 두륜산 고계봉 정상 바로 아래까지 1600m를 오가는 코스에서 운행한다.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전망대에서 10분 정도만 더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고계봉 전망대에 서면 두륜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맑은 날엔 육안으로 한라산까지 보일 지경이다.

을 맛보자.

대흥사 앞 전주식당(061-532-7696)은 산채정식과 표고전골이 맛있다. 한국전통문화본존회가 지정한 전통명장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가진 이 집의 맛은 5가지 한약재를 넣어 만든 동동주의 감칠 맛에서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유선여관

대흥사 가는 숲길
대흥사 대웅전
두륜산 무공해 산채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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