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소셜 벤처] 공익적 가치와 반성적 기업철학서 비롯문화콘텐츠 유통구조의 불합리성 개선창작자와 소비자의 관계회복에 기여할 것

터치포굿 폐현수막 재활용 에코 가방
대학생 황룡(25)씨는 2008년 7월 소셜벤처(Social Venture)인 블레이어(www.blayer.co.kr)를 창업하고 음원제공 서비스를 시작했다.

블레이어의 음원 유통 방식은 일반 플랫폼과 차이가 있다. 스트리밍(음원을 내려받지 않고 온라인에서 듣는 것)과 위젯(블로그에 배경음악 등으로 삽입)이 무료다. 뮤지션이 자신의 음원을 다운로드 받을 때 사용되는 이윤율을 직접 결정한다.

이는 음악저작권협회나 멜론(SK텔레콤), 도시락(KT), 뱅크 온(LG텔레콤) 등 이동통신사의 음원 유통 방식과는 확연한 차이를 불러온다.

음저협이나 이통사가 음원을 판매해도 창작자에게는 10~20%의 수익만 돌아갔다. 그러나 이 사이트는 음원을 올린 창작자에게 수익의 70% 이상을 돌려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한적으로 제공되던 스트리밍을 곡 전체로 폭을 넓혔다. 수용자가 생소한 인디밴드의 음악을 충분히 감상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블레이어 수익모델. <그림제공=블레이어>
이통사 음원제공 사이트에서 1천여 명이 곡을 다운받아도 10만여 원의 이득밖에 얻지 못했던 인디 밴드가 전업으로 음악에 몰두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애플 아이튠즈나 자멘도(www.jamendo.com/en)의 한국판인 셈이다. 1년 6개월여 만에 100여명의 아티스트가 500여 개 트랙을 블레이어에 올렸다. 회원 수는 현재 3700여 명에 이른다. 애플 앱스토어를 벤치마킹한 SK텔레콤 T 스토어에도 입점했다.

소셜벤처가 사회적 기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셜벤처는 도전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반성적 기업철학에서 비롯했다. 특히 문화예술 소셜벤처는 문화콘텐츠 유통구조의 불합리성을 개선해 창작자와 소비자의 관계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소셜벤처란 기업 활동으로 공익적 기여를 한다는 면에서는 사회적 기업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노동부 인증을 받아야 하는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과 달리 대부분은 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자연 비즈니스 모델이 더 도전적이며 자율성이 높다. 중대규모화 한 사회적 기업에 비해 대부분 소규모 창업이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되는 이유다.

소셜벤처는 소비를 통해 창작자와 수용자뿐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정상화는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문화예술 소셜벤처는 이윤창출로 공익적 문화예술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대안으로서도 기대된다.

조영복 부산대 경영학부 교수(사회적 기업 연구원장)는 "소셜벤처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사회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소비활동을 한다"며 "소비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착한 소비를 더 확산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소셜벤처는 정부에 의해 인증을 받는 사회적 기업에 비해 순수한 시민운동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해 시민운동이 정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생활에서 실현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활용 패션으로 자원순환

헌 옷 등을 재활용 한 패션소품을 만들어 자원 재생과 순환에 기여하는 패션 소셜벤처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뜻은 있어도 실천하기 쉽지 않은 자원재생과 소비자의 거리를 좁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폐 현수막을 걷어 에코백을 만드는 소셜벤처가 눈에 띈다. 이준희(27)씨를 비롯한 20대 여성 세 명은 2008년 10월 소셜 벤처 터치포굿을 창업해 폐 현수막을 재활용한 에코 백, 양산 등 잡화를 제작 판매하고 있다.

신나는 공장 D.I.Y. 목공예 수업. <사진제공=신나는 공장>
이들은 제작과정에도 친환경 공정을 도입해 소비가 사회적 공헌이나 기부행위로 이어지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아토피를 비롯한 환경성 피부질환에 걸린 보육원 아동의 치료, 육아 환경개선에 사용하는 덕분이다.

채수경(37)씨를 비롯한 3명의 디자이너는 2005년 소셜벤처 리블랭크를 창업했다. 이들은 헌 옷과 가죽 등의 재료를 재활용한 패션 소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쓰고 버린 재료를 완전히 해체한 뒤 전혀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천갈이 업체에서 버려진 쇼파의 가죽을 수거해 핸드백이나 카드 케이스 등의 가죽 소품을 만들기도 한다. 서울 디자인 올림픽이 끝나는 날에는 현장에서 나온 폐자재로 우편함을 만들어 판매했다.

자원순환의 사회적 의의에 동감하는 소비자 반응도 뜨겁다. 리블랭크의 한달 매출은 300~500만원 대다. 2009년에는 전년보다 매출액 기준 2배 정도의 성장세를 보였다. 현재 7개 매장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기도 하다.

문화예술 공연기획으로 이웃 도와

문화예술 공연 마케팅과 사회적 공헌을 연계한 공익연계 마케팅 소셜벤처가 활약하고 있다. 홍익대 섬유미술학과 대학원 과정의 '절친' 이었던 김은정(30)씨와 가면정(29)씨는 2006년 '커뮤니케이션 우디'를 창업해 행사 수익금 일부를 독거노인 돕기나 아동기금 조성 등에 보태고 있다.

우디는 지난해 9월 25일 홍대 앞의 한 클럽의 클럽데이에 수공예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내놓는 벼룩시장을 여는 이색적인 행사를 벌였다. 이날 행사는 50여 명의 수공예 팀이 참가했다. 300여 명이 방문해 소비적 오락공간을 문화예술의 소통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이날 행사에서는 물물교환도 이뤄져 공예와 시민의 거리를 더 가깝게 했다.

우디는 소비지향 일색인 전시 공연 파티 등을 공익적 목적으로 바꿔놓는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마케팅 기업이다. 기업의 자본과 공익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방법은 이밖에도 여럿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진지한 사회문제를 재미 있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은정 커뮤니케이션 우디 공동대표는 2005년 서울 홍익대 앞 등지에서 '아름다운 얼굴' 사진전을 열어 거둔 수익을 독거노인 돕기에 쓰기도 했다. 이 전시에는 사진작가 김중만 등이 출품했다.

기업 이미지 재고에도 이들의 마케팅 방식은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아이리버 등의 일반기업이 이들과 공동 마케팅을 벌이기도 했다.

목공으로 노동과 공예의 가치 되살려

노동과 예술의 가치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목공예로 사회 문화를 성숙시키려는 소셜벤처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신나는 공장'은 D.I.Y. (do-it-yourself) 가구를 교수 제조 판매한다. 수익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공익적 기여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병원(43) 전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장, 윤석인 전 희망제작소 부소장을 비롯한 20여 명의 주주와 30여 명의 자문위원은 지난해 9월 22일 경기 일산동구 성석동에 '신나는 공장'의 문을 열었다.

이 공방은 목공예 교실을 열어 D.I.Y. 가구 제작을 소비자가 직접 하도록 독려한다. 주문을 하면 전문 목공을 비롯한 신나는 공장 직원들이 목공예 가구를 제작해준다. 목공 강의, 주문 제작뿐 아니라 D.I.Y. 전문 미디어 출간을 목적으로 한다. 인터넷 난전 등의 오픈 마켓도 기획하고 있다.

목공예를 통해 대량생산 시스템의 인간 소외를 뛰어넘은 문화를 창출한다는 아이디어다. 신나는 공장은 공예가 대량생산에 의존하지 않고 내가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시켜 준다고 설명한다.

공방 수업료는 20~30만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향후에는 수익의 50%를 차출해 재단을 만들고 공공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