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결혼을 하여 부부가 살다 보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무신경해지기 마련이다.

또 작은 일로 싸운 것이 해소되지 않아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심지어 본인이 잘못했던 경우에도 배우자가 그 정도도 받아주지 않는가 하는 실망감이 오히려 상대에 대한 원망으로 변하여 남는 경우도 많다.

만약 이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이 강하면 덮고 넘어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그런 실망감들이 점점 쌓이게 된다.

이런 감정의 찌꺼기들은 마음속에 오랜 동안 축적되어 있다가 다음에 상대가 작은 실수를 했을 때 앙갚음하고 싶은 충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사소한 일에도 참지 못하게 만들고, 싸움을 잦아지게 하고, 또 한번 싸우면 마음이 잘 풀어지지 않게 해서 더 큰 응어리가 되어 남는다.

이는 마치 혈관벽에 응고되어 혈액의 흐름을 막는 '나쁜 콜레스테롤'과 같다. 즉 그 덩어리가 처음 생긴 자리에서 점점 커져서 혈관을 막을 수도 있지만, 떨어져나가 다른 곳의 혈관을 막아 심각한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럴 때 부부간의 애정표현은 부부 사이의 노폐물들을 깨끗이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마치 '좋은 콜레스테롤'이 불순물을 제거하여 혈액순환을 좋게 해주고, 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섭생이 건강을 되찾아주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평소에 상호 애정표현이 풍부한 부부는 서로가 불편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상대의 웬만한 잘못을 확대시키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잘못한 당사자도 배우자에게 심하게 추궁당할 거라는 불안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일찍 솔직하게 이야기하여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설령 싸우게 되는 경우에도 누구든 양보를 하여 빨리 화해하자는 표현을 하고, 상대도 역시 못이기는 체 화해 제안을 받아 들인다. 그러니 부부의 사이가 점점 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이 역시 건강한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기가 더 쉬운 것과 마찬가지다.

불행하게도 건강을 잃은 사람이라도 적절한 노력을 통해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불화의 '늪'에 빠져 있는 부부도 적절한 노력을 통해서 원만한 부부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지속적인 '애정의 표현'이다.

부부의 애정표현은 남녀 간에 서로 성적으로 끌려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일정기간만 잘 보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표현되며,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깝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흔히 의식주를 기본 생존조건이라고 말하지만, 무인도에서 의식주가 해결된다 해도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해서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아내가 살림을 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가정의 모습은 갖추어지지만, 그 부부가 상호 애정이 없다면 그것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며 사는 남녀 이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가정의 자녀들도 건강한 인격체로 자라 장차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데 상당한 장애를 겪을 수도 있다. 부부간에 애정이 있어야 부부 각자는 물론 그 자녀들의 양육을 위해서도 가정으로서의 기능을 효과적이고 완전하게 발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결혼한 부부에게 애정표현은 그 날의 기분이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박동이나 호흡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조건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음으로 비로소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사랑이나 우정 또는 가정처럼 '추상명사'로 표현되는 대상들은 우리 각자가 마음으로 우러나 표현하는 만큼만 존재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일반명사'로 인식한다면 자신도 상대에게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상대를 진정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아낀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자신도 상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