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수제 주먹밥… 간편함, 건강 모두 잡아 인기

정오의 단상

밥 때는 왜 이리 자주 찾아오는가. 연말 정산을 3시까지 끝내야 하는 오늘 같은 날엔 그냥 건너 뛰고 싶다. 하지만 어느새 한 끼만 걸러도 머리가 핑도는 30대임을 자각하고 간단한 메뉴들을 떠올린다. 제일 빨리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은 끝이 좋지 않다. 이젠 더 이상 그 짜고 기름진 국물이 반갑지 않다. 샌드위치? 빵은 싫다.

소화도 안 되는 주제에 빨리 꺼진다. 밥, 뜨끈한 밥이 간절하다. 하지만 편의점의 딱딱한 삼각 김밥도 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그냥 밥 모양에 쌀 향을 첨가한 무엇이 아닐까? 따뜻하고 이왕이면 밥알도 탱탱하니 살아 있어 씹는 맛도 끝내주고 무엇보다 빨리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내가 너무 많이 바라는 건가?

들고 먹는 밥, 오니기리

우리의 음식은 지금 패스트와 웰빙의 대치 상태에 놓여 있다. 한동안 대세였던 패스트 푸드의 자리를 건강을 앞세운 슬로 푸드가 몽땅 차지해버릴 것 같았지만 양쪽 다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주중에는 가능한 빠르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는 대신 주말에는 25시간 동안 저온 조리한 오리 고기를 즐기는 식으로 삶의 질과 효율을 동시에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간단한 음식이 몸에도 좋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 만드는 데 약 25초 정도 걸립니다"

지난해 여름 압구정역 근처에 문을 연 는 오니기리 전문점이다. 오니기리는 일본식 주먹밥으로, 편의점 삼각김밥이 그 차갑고 인공적인 비닐 포장으로 들어가기 전의 원형이다. 일본에서는 편의점에도, 백화점 식품매장에도, 심지어 노래방에도 어디에나 오니기리가 있다.

이 오니기리를 처음 국내에 받아들인 곳은 편의점이지만 최근에 오니기리가 목격된 곳은 식당이다. 주문과 동시에 밥을 쥐어 따끈하고, 두께는 거의 삼각김밥의 2배가 넘을 정도로 푸짐하며, 그러면서도 속도는 그대로다. 25초면 전자레인지에 삼각 김밥을 데우는 시간과 비슷하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과 똑같이 만들어요. 김치는 김장할 때 조금 더 한다 치고 쌀도 햅쌀을 쓰구요. 쇠고기는 마장동 지인으로부터 국내산으로만, 일일이 냄새까지 다 맡아보고 사요."

와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홍대 이윤주 사장이 만드는 오니기리는 철저하게 가정식이다. 웬만한 여염집 주방보다 깔끔한 곳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오니기리는 기다리는 수고도, 부실하게 때웠다는 찜찜함도 남기지 않는다.

지금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오니기리는 원조의 맛과는 좀 다르다. 일본에서 오니기리는 밥맛을 음미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다. 일본인들은 좋은 쌀로 밥을 지어 소금과 참기름으로만 살짝 간을 한 뒤 안에 우메보시(매실 절임) 또는 단무지만 달랑 넣고도 맛있게 먹는다.

그러나 좀 더 제대로 배인 간과 '따순' 밥에 집착하는 우리의 입맛에 맞게 한국의 오니기리는 후리가케(깨, 김가루, 소금 등이 들어간 일본식 조미료)로 간을 하고 고두밥보다는 살짝 질게 된 밥을 선호한다.

안에 넣는 재료도 미역, 다시마, 톳 대신 김치, 쇠고기, 불닭, 떡갈비로 바꾸고, 김 역시 일본식의 질기고 조미하지 않은 것 대신 바삭하게 구운 김에 살짝 소금 간을 했다. 따끈한 국물이 있어야 식사로 치는 습관 때문에 달랑 오니기리만 먹는 일본과 달리 미소 시루나 작은 사이즈의 우동이 반드시 따라 나와 주는 것도 특징이다.

홍대 카모메, 안암동의 세모네, 대구의 더 오니기리, 중대 앞 공씨네 주먹밥 등 주로 젊은 층이 모이는 곳에서 오니기리는 샌드위치와 삼각 김밥을 제치고 간편식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당고집
밥 때가 되면 좁은 오니기리 집은 손님으로 꽉 찬다. 기성 세대와는 다르지만 '밥심 유전자'는 고스란히 물려 받은 변종 신세대들이 주 고객이다. 중국산 찐 쌀도 의심스럽고 빵도 싫어 모인 그들 중에는 '나홀로 족'도 꽤 된다. 혼자 밥 먹기가 어색하지 않은 이들은 오니기리 집에 필수적으로 있는 바를 차지하고 앉는다.

평균 1500원대인 가격은 주머니 가벼운 젊은 이들에게 더욱 환영받는 요소다. 금세 차 버리는 좌석 때문에 손님들 3명 중 1명은 테이크 아웃을 해간다. 오니기리의 가장 혁신적인 점은 들고 먹을 수 있는 최초의 밥, 그것도 공장에서 찍어낸 밥이 아닌 바로 만든 밥이라는 점이다.

보통 어른 주먹만한 사이즈 때문에 들고 먹기가 쉽지는 않지만 김밥에 비하면 모양새가 크게 나쁘지는 않다.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케밥이나 와플 먹듯이 길거리에서 오니기리의 껍질을 벗겨 바로 먹는 이들도 꽤 된다.

오니기리와이규동 마케팅팀 김은혜 과장은 간편함과 건강함을 동시에 잡은 오니기리가 앞으로는 더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일본 프랜차이즈 협회 모임에 참가했었는데 혼자 먹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제 4인용 식탁은 점점 사라질 거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도 곧 그런 문화가 확산되지 않을까요? 오니기리는 바뀐 라이프 스타일에 딱 맞는 음식이에요."

한국인 입맛을 가장 잘 아는 건 역시 한국인. 일본 음식인 오니기리를 우리가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비결을 알아낸 3곳의 오니기리 집.

국내 유일의 수제 당고를 판매하는 곳이자 다섯 종류의 오니기리를 맛볼 수 있는 곳. 가쓰오 맛이 1000원, 제일 비싼 쇠고기 오니기리가 1700원으로, 그 실팍함에 비해 엄청나게 저렴해 여기서 한 번 오니기리를 먹고 나면 억울해서라도 편의점 삼각김밥을 못 먹게 되는 후유증이 있다.

모든 오니기리에 후리가케를 솔솔 뿌려 적당히 간이 돼 있는 것이 우리 입 맛에 잘 맞는다. 자극적인 업소용 후리가케가 아닌 아가들이 먹는 후리가케라 더 좋다. 햅쌀로 지은 밥을 쫀쫀하게 뭉쳤기 때문에 젓가락으로 파먹기보다 손으로 쥐고 베어 먹는 것을 추천한다.

오니기리 하나에 거의 밥 한 공기(220g)가 다 들어가고 미소 시루와 피클을 같이 내주기 때문에 여자들에게는 충분히 한끼가 되지만 아쉬우면 사장의 모친이 직접 만드는 당고를 맛보는 것도 좋다. 일본식의 죽죽 늘어나는 떡이 아니라 한국식으로 적당히 찰지게 바꿨다. 홍대 극동방송국 옆 골목으로 50m 들어가면 나오는데 곧 장소를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오니하나

쉽게 질리지 않는 담백함을 내세우는 오니기리 전문점. 명란, 연어, 칠리 새우, 멸치호두를 넣은 총 9종의 큼직한 오니기리가 쇼윈도에 진열돼 있다. 흔히 사용하는 후리가케를 이곳에서는 넣지 않는데 대신 갈은 우엉과 치자 단무지, 깨, 소금, 참기름으로 밥을 버무려 간을 맞췄다. 덕분에 맵고 짠 맛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약간 싱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살짝 조미한 김이 밥 전체를 싸고 있어 위에서부터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것이 편하다. 쌀은 일본 품종인 추청벼를 쓰며 속 재료로 들어가는 명란도 백명란으로 고급품이다. 모두 사장이 노량진 시장을 돌며 직접 사오는 것들.

틀로 찍지 않고 손으로만 쥐어서 만들기 때문에 밥알이 탱글탱글 살아 있어 떡처럼 뭉친 밥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적당하다. 인기 메뉴인 참치 샐러드는 1500원, 달콤한 칠리 새우는 2000원. 175g짜리 오니기리 1개와 세트로 구성된 미니우동을 같이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압구정 역에서 한남 IC 방향으로 가는 길가에 있다.

지난해 3월 시작한 프랜차이즈 오니기리와이규동의 홍대 지점. 카페처럼 깔끔한 내부에 바가 설치돼 있어 혼자 밥 때를 놓쳤을 때 눈치 보지 않고 배 채우기에 좋다. 밥맛을 중시하는 일본 오니기리의 정통을 살리기 위해 본사에서 쌀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으로, 국내산 쌀에 혼합미가 아닌 단일미를 고집하고 밥에는 양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속재료는 불돼지, 훈제핫닭, 달콤숯닭 등 한국 젊은이들 입맛에 맞는 것들로 다양하게 변형시켰다. 프랜차이즈답게 밥의 된 정도나 간의 강하기, 가격 모두 딱 평균이다. 중량은 약 150g으로 국내 오니기리 집 중에서는 작은 편. 튀김과 유부가 가득 들어간 미니 우동을 곁들이면 충분히 한끼 식사가 된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경우만 아니라면 오니기리든 규동(쇠고기 덮밥의 일종)이든 2분 안에 서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오니기리 외에 규동 맛을 보러 오는 사람도 꽤 있는데 전 지점 중 가장 맛있다고 자부한다. 서교 푸르지오 상가 1층.


오니기리와이규동 홍대점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