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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바람이 분다

실용적이면서 감각적인 북유럽 패션, H&M 등 한국 상륙
호수가 전국토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에서는 어떤 옷을 입을까?

여름철이 시작되는 5월말부터 50일 동안 해가 지지 않고 12월부터는 40일 동안 밤이 이어지는 곳. 봄ㆍ여름이 한꺼번에 찾아오고 가을ㆍ겨울이 명확한 구분 없이 겹쳐 오는 곳.

반년 가까이 햇빛을 구경하기 힘들어 어쩌다 잠깐 태양이 얼굴을 내밀라치면 길가의 벤치나 건물 벽 어디든 기대 눈을 감고 볕을 흡수하는 곳.

북부 유럽이라고 하면 지구의 정수리로부터 서남쪽으로 길게 뻗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5개의 국가 –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핀란드를 말한다.

사람의 성정을 바꿔 놓을 만큼 춥고, 눈 돌리는 곳마다 호수와 암석으로 덮여 있으며, 상상할 수 없는 때에 해가 지고 뜨는 신기한 땅이다.

  • H&M
스웨덴 중부 이남의 스톡홀롬에서는 여름철 밤 10시가 되어야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지고 자정 무렵에 동이 터 새벽 2시경에는 찬란한 아침 햇살이 들이닥친다. 그 유명한 백야다. 이 신비한 땅이 빚어낸 패션은 그 모태를 꼭 닮았다.

패션에도 사회주의?

북유럽 스타일, 일명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은 패션 이전에 이미 가구로 널리 알려졌다. 스웨덴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가 된 이케아가 중요한 이유는 싱글들을 안달하게 만드는 싸고 예쁜 디자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북유럽을 상징하는 모든 코드가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이케아의 TV 광고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리, 낡은 램프가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길가에 버려져 있다. 시청자들의 동정심이 발하려는 순간 한 남자가 나타난다. 말끔하게 우산을 썼고 별로 우수에 젖어 있지도 않다. 그는 뚜렷한 스웨덴 억양으로 말한다.

"이 램프가 안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램프는 감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새 램프는 훨씬 좋습니다."

  • 아크네
단순할 것, 기능에 충실할 것, 그리고 합리적일 것. 이케아 가구에는 군더더기란 없다. 새빨간 철제 캐비닛이나 철제 파이프로 이루어진 침대는 우아함이나 세월의 흔적, 전통의 무게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밝고 심플한 가구들은 수납하고, 자고, 쉬는 기능에 전적으로 충실하다. 가격도 저렴해 닳으면 미련 없이 버리고 새 가구를 살 수 있다. 이케아는 대대손손 물려줄 작정을 하고 옷장을 구입하며 닳아서 반들반들한 소파 팔걸이를 자랑스러워하는 유럽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영국의 여류 작가 엘렌 루이스는 이케아가 2년마다 한번씩 세련된 저가 가구로 인테리어를 바꾸는 '체인징-룸-제너레이션'을 탄생시켰다고까지 이야기 한다.

이런 철학들은 북유럽의 패션과 신기할 정도로 잘 부합한다. 스칸디나비안 패션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거의 바람 색깔을 표현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튀지 않는 존재감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마치 중국인이나 유대인처럼 어디를 가든지 꼭 한 명씩 있어요. 하지만 별 특징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밝히기 전에는 몰라요. 특출 난 기량을 발휘하지는 않지만 전 분야에서 고루 재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없으면 빈 자리가 커요. 그들의 옷도 그런 식이에요. 북유럽 브랜드를 사는 사람들은 그게 북유럽 브랜드인 줄도 모르고 그저 가격 대비 품질이 훌륭하기 때문에 사요. 명품보다 싸면서 같이 매치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거든요."

  • 헨릭 빕스코브
압구정동에 있는 편집숍 프로젝트 민트 이현식 바이어의 말이다. 스웨덴 브랜드인 아크네와 다그마, 와이레드를 판매하는 프로젝트 민트는 올 봄ㆍ여름을 위해 북유럽 몇몇 브랜드의 옷을 더 들여왔지만 봄이 채 오기도 전에 이미 다 팔렸다.

파리의 패션을 대표하는 것이 샤넬 같은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인 반면 북유럽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아크네, H&M, 누디진 등 캐주얼 브랜드라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데님의 성공으로 여성복, 남성복, 가방으로까지 영역을 넓힌 스웨덴 브랜드 아크네의 티셔츠는 10만 원대, 바지는 30만원 정도다. 코펜하겐 패션위크에서 쇼를 여는 덴마크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도 아우터 종류가 100만원을 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술, 문화, 사회 전반에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사회주의 정신은 패션 신에서도 어김없이 발견된다. 그들이 숭상하는 복지와 평등 이념은 비싼 옷을 만드는 한 명의 천재 디자이너 대신 합리적인 가격의 매스티지 브랜드를 여러 개 낳았다.

스웨덴 예술 노조 위원장인 그레고르 파울손은 그의 저서 <아름다운 일상 용품>에서 "디자인은 그 디자인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패션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했다.

  • 와이레드
세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작업복

평등이라는 가치는 가격뿐 아니라 젠더에도 영향을 미쳐 섹시한 옷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것도 특징이다. 스웨덴 브랜드 다그마는 론칭한 지 5년이 채 되기 전에 각종 협회와 매체로부터 인정 받으며 슈퍼 루키로 떠올랐다.

성인이 되기까지 남녀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중성적으로 꾸미고 다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그마는 드물게 여성스러운 옷을 내놓지만 그 옷조차도 남자의 옆자리를 비워 놓고 노골적인 유혹의 손짓을 뻗치는 섹시함이 아니다.

그들이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스타일은 섹시하지 않은 페미니티"임을 밝힌 것처럼 아르데코 등 각종 예술 사조에서 영감을 받아 여성스러움을 창조하고 그 자체로서의 미학을 즐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패션을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동복, 즉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이 유난히 많다는 것. '옷은 눈길을 끌기 위한 것이기 전에 입고 생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지만 노동복이라니, 그것도 공장장님들이 주로 애용하시는 '잠바'가 패션 아이템이라니, 생소하다 못해 신선한 풍경이다.

  • 다그마
편집숍 애딕티드에서 볼 수 있는 던더돈은 스웨디쉬 워크 웨어를 표방하는데 한 마디로 스웨덴 식 작업복이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일할 때 입는 투박하고 활동에 무리가 없는 편안한 스타일이 콘셉트로, 카고 팬츠에 워커를 신고 위에는 무채색의 니트 카디건이나 캐주얼한 점퍼를 입을 것을 제안한다. 이런 트렌드는 일을 통해서만 삶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의 근면성과도 이어진다.

이쯤 되면 북유럽 패션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가 경멸한 이지 캐주얼의 천국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다. 런웨이에서 내려와 백화점과 로드숍을 거쳐 거의 1년이 다 되어서야 할인점 가판대로 내려온, 섹시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으며 싸기만한 옷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크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니 요한슨은 자신들의 깔끔한 커팅과 자연스러운 실루엣에 열광하는 편집숍 바이어들을 향해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것은 '아크네의 옷을 반드시 슈퍼 브랜드의 옷들과 같은 옷걸이에 걸 것'이다.

"실제로도 아크네는 꼼데갸르송과 마틴 마르지엘라 사이에 있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어요. 만약 이런 브랜드들 사이에 리바이스가 걸려 있었다면 멈칫 했겠지만 아크네는 그냥 술술 넘어가죠. 자신들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어요."

스팽글이나 지퍼로 화려하게 장식하지도 않았고 상표가 전면 배치되어 있지도 않지만 특유의 미니멀한 디자인은 콘셉츄얼한 럭셔리 브랜드들 사이에서 완급을 조절해가며 무난하게 매치된다. 입어 보면 그 진가를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 우드우드
스웨덴 자동차 브랜드 사브가 벤츠나 BMW보다 시장 점유율은 낮지만 한 번 구입하면 되파는 사람이 없어 중고를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과 같다. 그들의 내구성, 투박하지만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특징은 덴마크 브랜드 우드우드에서도 드러난다.

청바지와 면바지, 티셔츠, 바람막이 등 전형적인 스트리트 패션을 선보이는 우드우드는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들로도 쇼에 오를 만한 감각적인 룩을 만들어 낸다.

몸에 붙지 않는 배기 팬츠, 헐렁하다 못해 펑퍼짐한 점프 수트는 편안하면서도 패셔너블하다. 일 할 때는 물론이고 일을 마친 후 모임이 있는 날 그대로 입고 나가도 후줄근하다는 느낌이 아닌 전하고 싶은 이미지가 확실하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햇볕을 못 받아 하얀 얼굴에 키가 큰 북유럽 사람들의 외모가 한 몫 했다는 것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패션으로 가까워지는 북유럽

그들의 패션 철학에 동의하는 사람들에 의해 북유럽의 옷들은 한국에서 야금야금 영역을 넓혀 왔다. 프로젝트 민트와 톰그레이하운드 다운스테어즈, 데일리 프로젝트, 애딕티드 등 스트리트 패션에 강세를 보이는 편집숍들이 중심이었다.

  • 던더돈
지금까지는 이곳들을 거점으로 소수의 소비자들만 향유했다면 올해부터는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북유럽 패션이 알려질 예정이다. 그 결정적인 역할은 스웨덴 발 글로벌 브랜드 H&M이 하게 된다.

지난 해부터 들어온다, 안 들어온다 말만 무성했던 H&M은 드디어 논란을 일단락하고 구체적인 날짜를 잡았다. 오는 2월27일 명동 눈스퀘어에 첫 매장을 여는 H&M은 총 960평으로, 4개 층을 전부 쓴다.

비슷한 콘셉트인 자라나 유니클로와 비교했을 때 크기 면에서 압도적이다. 갭처럼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톱숍(영국의 SPA 브랜드)처럼 트렌디한 북유럽 패션을 체험할 수 있다.

"단순하고 웨어러블하다는 점에 있어서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은 한국인들의 취향과 잘 맞는 면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원래 파티 문화가 없는 나라잖아요? 대충 입다가 파티 갈 때만 한껏 꾸미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으면서 너무 캐주얼하지 않은 옷들이 인기죠. 아마 북유럽 패션이 득세한다면 잠깐 유행했다가 금방 식지는 않을 겁니다."

* 도움말: 프로젝트 민트, 톰그레이하운드 다운스테어즈, 애딕티드
* 참고서적: 이케아, 뤼디거 융블루트, 미래의 창
핀란드 디자인 산책, 안애경, 나무수
복지 국가 스웨덴 사람들, 변광수, 문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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