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 민통선 습지 생태여행임진강따라 습지·논·웅덩이… 개발로 생태계 위협 아쉬워

초평도습지
국제습지협약에서는 2월 2일을 '세계 습지의 날'로 정해 생태계의 보고이자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습지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있다

'2010 세계습지의 날'을 맞아 국토해양부가 습지를 테마로 한 다채로운 생태여행을 개최했다. 그 중에서 특히 기대를 모은 것은 '서부 민통선 습지 생태여행' 이다. 파주시 군내면, 장단면, 임진강, 초평도 일대의 서부민통선 지역은 대규모 습지가 형성돼 있다.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는 민간인 통제 구역이어서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겨울 철새들의 낙원으로 탐조여행에도 제격이다. 기나긴 겨울을 견디고, 서서히 날아갈 채비를 하는 철새들. 그들을 만나러 서부 민통선 습지로 떠났다.

에서 월동 중인 독수리 탐조

살을 에일 듯한 매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의 끝자락, 생태여행에 관심 있는 내·외국인 20여 명과 함께 찾아간 서부민통선 일대는 황량한 겨울의 모습 그 자체였다. 하지만 황량한 자연을 감상하는 것이야 말로 겨울여행의 별미다. 쓸쓸하고 적막한 풍경에서 겨울만이 내뿜는 어떤 고요함과 숙연함, 기다림의 향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흰꼬리수리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지나 검문소를 통과한 후 임진강 건너편에 있는 로 들어섰다.

는 조류의 낙원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특히 천연기념물인 로 유명하다. 독수리는 매년 10월 경 우리나라에 와서 이듬해 3월에 서식지인 몽골 초원지대로 날아가는 겨울철새다. 모든 철새는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망원경으로 관찰해야 한다. 저 멀리 독수리 무리가 보였다. 조심스럽게 망원경 앞으로 다가가 먼 발치에 있는 독수리 무리를 지켜봤다. 독수리는 맹금류이지만 사냥을 하지 않고 죽은 돼지나 소 등 시체만 먹는다. 망원경으로 보니, 커다란 독수리 수십 마리가 떼지어 있다. 몸을 좍 피면 날개의 크기가 3m, 몸무게 10kg 이상 나가는 거대한 새다.

그 육중한 몸으로 하늘을 나는 일이 가능할까? 물론 독수리는 너무 무겁고, 날개가 커서 날갯짓을 할 수 없다. 대신 상승기류를 타고 이동한다.

과거엔 에 1200마리 정도의 독수리가 와서 겨울을 나고 갔다. 월동시기에 파주 지역의 죽은 가축들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성공단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만든 전신주가 생긴 후부터 개체수가 400~500마리로 줄어들었다.

초평도에선 물새와 기러기 관찰…개발 이후 두루미·는 점점 사라져

독수리 월동지
이어 물새를 관찰하기 위해 임진강의 유일한 섬인 초평도로 향했다.

서부민통선 지역의 습지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임진강의 특성 때문에 겨울에도 강이 완전히 얼지 않고, 빙하처럼 군데군데 덩어리진 모습을 보이며, 강 바닥에는 바다에서 올라온 뻘층이 있다. 초평도 인근 양수장에서 청둥오리를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임진강 위에 둥둥 떠다니는 얼음을 타고 사냥을 다니는 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임진강을 따라 습지, 논, 둠벙으로 이어지는 비무장지대(DMZ)는 겨울철 두루미와 가 찾아 든다. 두루두루 울어서 두루미라고 이름 지어졌다는 이 새는 월동 시작 전에는 무리를 지어 다니지만 월동시작 후에는 가족단위로 다닌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날 두루미와 가족은 보지 못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0여 마리가 이곳에 와서 겨울을 지냈지만, 2000년 이후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개체수가 현저히 줄고 있다는 게 현지 안내인의 설명이다. 현재 10마리의 두루미가 월동 중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철새인 기러기는 개체수가 가장 많아 하늘 위로 비행하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현지 안내인은 철새 이동기인 봄가을에는 200여 마리의 기러기떼가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장단습지
서부민통선 습지로 떠났던 탐조여행은 '예전처럼 보다 많은 새들이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분단내륙습지와 자연하천이 어우러져 있으며, 충분한 먹잇감 때문에 다양한 생물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주는 곳. 더구나 분단으로 인해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 생태계가 잘 보존돼 왔다.

그러나 서부민통선 일대는 더 이상 생태계의 보고가 아니었다. 개발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고, 철새들을 비롯한 이 지역 생물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이다.


재두루미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