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기독교에서는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이 전해온다. 이것은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본성에서 벗어나 상대를 위해 자신이 먼저 노력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훌륭한 잠언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 말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인격의 발달이 미숙한 사람은 부부관계에서 배우자가 기울이는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배우자를 위해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노력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로 회피하려 하면서, 자신의 이런 부족한 점을 상대가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을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여긴다. 이들은 배우자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거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쉽게 삐치고 배우자가 달래줄 때까지 기다린다. 위에서 말한 기독교의 황금률은 이런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지만, 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편리를 위해서 배우자에게만 '네가 받고 싶은 대로 나를 대접하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이 기독교 황금률은 부부 사이가 지나치게 좋은 경우에도 잘못 적용될 수 있다. 본디 사랑은 '상대와 하나됨'을 목표로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은 상대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경험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또 우연하게라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되면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배우자에 대한 이런 '동일시'가 지나치면 그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상대도 원할 것이며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상대도 싫어할 것'이라는 환상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이런 예는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와서는 부인이 그 일정에 맞추지 못하면 아주 심하게 화를 내는 남편에게서 볼 수 있다. 이들은 내가 대접받고 싶은 것과 상대가 대접받고 싶은 내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한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한편 불교의 '내게 해로운 것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말이나 유교의 '자기가 원하지 않은 것은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말도 각각의 황금률로 여겨진다. 이런 말들은 대인관계에서 조심해야 할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끼리 생활하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의도로만 상대를 대하지 못하고 때로는 상대가 낭패를 겪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를 괴롭히는 것은 물론 상대를 괴롭히지 않는 것만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아질 수 없다는 점이다.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사이가 나빠진 부부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상대에게 돌려주고 싶은 충동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바탕에는 상대가 직접 고통을 체험해서라도 자신의 심정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의도가 숨어있지만, 아무래도 보복의 의미가 너무 두드러져서 상대에게서 바람직한 반응을 이끌어내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된 경우에는 분노가 사그라질 때까지 배우자가 충분한 반성의 기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부부가 다시 좋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충분한 처벌이나 일정한 자숙기간이 아니라 '잃어버린 사랑의 회복'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부부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한 첫째 원칙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한 노력이 먼저 필요하고 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둘째 원칙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상대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잘 전달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그 후에는 그것을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배우자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는지,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자에게 잘 전달했는지를 우선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