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와인' 애칭… 2009년부터 판매 수익금의 일정 비율 후원금으로 전달

비나 산 에스테반 와이너리의 호스 이그나시오 루이스 테이글 수출담당 이사가 서울 송파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인시투' 앞에 걸린 한국 봅슬레이팀 후원 플래카드앞에서 응원포즈를 취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선전한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 일본을 누르고 올림픽 첫 결선까지 오른 봅슬레이 대표팀의 저력 뒤에는 무엇이? 특이하게 '와인'도 있었다.

우리나라 봅슬레이팀과 인연을 맺어 온 와인은 칠레산 '인시투(In Situ)'. 인시투 와인 판매 수익금의 일정 비율을 봅슬레이팀 후원기금으로 전달해 오고 있어서다.

그간 인시투 와인을 마신 이들로서는 알게 모르게 한국 봅슬레이팀 후원에 참여해 온 셈이 된다.

봅슬레이팀과 인시투의 첫 인연은 지난 2009년 초 맺어졌다. 인시투 와인 수입사인 와인프린스가 봅슬레이팀 후원에 나서면서부터다. 이강근 와인프린스 대표는 한국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과 조인식을 갖고 연말에는 후원의 밤을 열어 조성한 후원 기금 3000여만원을 전달했다.

"경기장 및 훈련 시설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국가 위상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봅슬레이 대표팀의 노력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스키 점프를 주제로 개봉된 '국가대표'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비인기 동계 종목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도 싶었습니다."

레스토랑 인시투에서 열린 봅슬레이대표님 후원의 밤 행사(사진제공=와인프린스)
이강근 와인프린스 대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며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한다. 후원의 밤 행사에는 국내 체육계, 연예계, 정관계, 재계, 교육계, 종교, 법조계 등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높은 경사도의 언덕에서 가파른 코스를 쏜살같이 달리는 봅슬레이 종목. 공교롭게도 높이라는 측면에서 봅슬레이와 인시투 와인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남미 최고봉으로 꼽히는 아콩카과의 높이는 해발 6960m. 인시투 와이너리 또한 높디 높은 아콩카과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인시투 와이너리가 위치한 곳은 해발 900m의 파이다흔 언덕. 이 곳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로만 포도주를 빚는다. 그래서 인시투는 칠레산 와인 중 가장 높은 고지에서 생산되는 와인 축에 속한다. 인시투란 의미도 라틴어로 '바로 여기'라는 뜻이다.

때마침 올림픽에서 한국 봅슬레이팀이 선전을 마친 최근 인시투 와인의 유력 인사가 한국을 찾아왔다. 비나 산 에스테반 와이너리의 호스 이그나시오 루이스 테이글 수출담당 이사. 그는 "칠레는 동계 스포츠가 한국보다 활발하진 못한 편이지만 대신 와인을 통해 후원하고 있는 한국 대표팀이 좋은 경기를 펼쳤다는 얘기를 듣고 기뻤다"고 말한다.

고지대라는 점 말고도 인시투 와인은 칠레에서 가장 문화 역사적인 와인이란 얘기도 듣는다. 와이너리와 포도밭이 위치한 지역 곳곳에 옛 잉카 유적이 산재해 있어서다. '인시투=잉카 와인'이란 애칭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봅슬레이 대표팀 김광배 선수(왼쪽에서 네번째)와 이강근 와인프린스 대표(오른쪽에서 세번째) 등 선수들이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인시투 와이너리의 포도밭 중앙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있습니다. 이 바위에는 도장 처럼 생긴 둥근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바로 잉카 유적이죠.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는 곳들이 여러 곳에 걸쳐 있습니다."

테이글 이사는 와이너리 지역 전체가 원래는 사유지였는데 지금은 정부에 의해 문화유적지로 지정돼 있다고 설명한다. 대신 와이너리로서는 더 이상 포도밭을 넓히거나 더 많은 포도나무를 심을 수 없는 핸디캡을 안게 됐다.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인시트 와인은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elegant & smooth) 테이스팅을 자랑한다. 이는 수확되는 포도의 껍질이 얇아 1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오크 숙성 기간을 거친 덕분이기도 하다. 보통 포도 껍질이 두꺼우면 더 오래 숙성을 해야만 탄닌이 우러나고 구조감이 갖춰지지만 오크 때문인지 너무 강하고 진해진다는 평도 듣는다.

물론 적당한 두께의 포도 껍질은 고도 덕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지대가 높아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대낮에는 뜨거운 태양볕이 포도밭 경사면을 정면으로 내리쬔다. 밤에는 서늘해져 벌어지는 일교차 또한 와인의 풍미를 더해준다.

포도밭 지형이 기울어져 있다 보니 기계 수확이 안되고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된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일하는 사람은 더 힘들어지고 일꾼을 더 쓰면 돈이 더 들지만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야… 또한 외부 지역에서 부족한 포도를 추가로 사오는 일은 전혀 없이 오로지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로만 와인을 담근다.

인시투 라그나델인카
마치 부르고뉴 와인처럼 연한 듯 깊은 맛을 내는 인시투 와인은 와인 칼럼니스트 로버트 파커로부터도 '대단하다(outstanding)'는 호평을 받았다. "어느 음식에나 잘 어울릴듯한 와인"이라는 것이 그의 평. 뛰어나지만 너무 튀지 않으니 웬만한 메뉴와도 잘 맞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된다.

인시투 와인은 역사가 길진 않다. 1974년 창업했지만 자신들의 브랜드로 와인을 생산한 것은 1998년부터다. 매우 젊은 와이너리에 속하지만 칠레 전체 256개 와이너리 중 50위권으로 벌써 도약했을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빠르다.

"인시투 와인은 기업이라기 보다는 패밀리 비즈니스형 와이너리입니다. 오너가 직접 와인을 양조하는 와인 메이커라 믿을 만하고 보증이 된다는 것이죠." 가족 중에서 모두 3명의 와인 메이커가 있는데 아버지는 프랑스의 샤또 무똥 로칠드에서, 아들은 미국에서 와인 양조를 배우고 기술을 도입했다.

때문에 인시투 와인은 국제화된 와인을 지향한다. 맛에서도 그렇고 실제 수출 실적도 그러하다. 26개 국에 수출 중인데 가장 큰 수요처는 아일랜드와 미국. 국내에서는 풀무원이 운영하는 유기농숍 '올가'와 대명 리조트내 마트에서만 한정 판매중이다. 송파동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인시투'와 W워커힐서울호텔과 오크우드호텔, 코엑스인터콘티넨탈, 밀레니엄서울힐튼 카지노, KB국민은행의 MVP용 와인으로도 만날 수 있다. 인시투 아래 클래스로 와인메이커 셀렉션 리제르바와 리오 알토 브랜드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글·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