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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와인도 잔 따라 맛과 향 다르네

명품 와인글라스의 대명사 '리델' 한국서 글라스 테이스팅
  • 소믈리에 레드잔들
그는 여러 형태의 와인 잔들을 갖고 다닌다. 그리곤 몇 가지 와인을 이 잔, 저 잔에 따라 보며 맛을 본다.

"이 유리 잔 맛은 왜 이래!" 아니, 와인 맛을 본 것이 아니었나? 사람들은 그를 '글라스 테이스터(Glass Taster)'라고 부른다.

'유리 잔을 맛 보는 사나이' 게오르그 리델이 최근 '한국에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클래스를 가졌다.

세계 최고의, 아니 유일의 글라스 테이스터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직접 진행하는 글라스 테이스팅. 그가 하는 것처럼 여러 와인 잔에 다른 와인들을 따라 보고 맛을 시음, 비교해 보는 자리다.

리델 하면 떠오르는 것은 와인 잔. 이름 그대로 그는 리델 가문의 10대 손이자 현 리델사의 회장이다. 명품 와인 글라스의 대명사로도 통하는 리델은 전세계 100여개국에 수출되면서 한 해 매출만 2억2000만 유로(약 3300억원)에 달한다.

  • 게오르그 리델(사진제공=와인리뷰)
""자, 길다란 보르도 글라스에 담긴 레드 와인을 짧다란 길이의 몽라셰 글라스에 따라 보세요. 아까의 향과 맛이 그대로인지, 어느 잔에서 더 향이 좋은지 비교가 될 겁니다."

그가 보통 '사용하는' 와인 잔은 기본적으로 3가지. 아담하면서도 야트막한 모양의 몽라셰 글라스에는 화이트 와인인 샤도네이를 따르고 계란형으로 길이가 길고 속이 깊어 보이는 보르도 잔에는 주로 카베르네 쇼비뇽을 담는다. 그리고 이 둘의 중간 크기로 '입' 부분이 'S'자로 꺽인 버건디(부르고뉴) 잔은 피노노아 품종의 와인 전용 글라스.

왜 굳이 이 와인, 저 와인을 이 잔, 저 잔에 수고스럽게 따라볼 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똑 같은 와인이라도 글라스에 따라 와인 맛과 향이 전혀 다르다. 그의 클래스에서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미처 예상도 못한 경험을 해보게 된다. "옷은 옷걸이라더니만 와인 역시 '잔 걸이'였네!"

실제 조금 전까지 몽라셰 글라스에서 꽃다운 향기를 내뿜던 샤도네이 와인은 보르도 잔으로 '둥지'를 옮기고선 향과 맛이 예전만 못하다. 반대로 보르도 잔에 담겨 '강한 탄닌'을 자랑하던 카베르네쇼비뇽 레드 와인은 몽라셰 글라스에선 도통 힘을 못쓴다.

"왜 레드 와인 글라스가 화이트 와인 글라스 보다 더 큰 줄 아십니까?" 그러고 보니 보르도 잔이 샤도네이 잔 보다 더 길고 크다.

와인의 구성 성분 중 85%는 물, 14%는 알코올, 그리고 나머지 1%는 풍미를 내는 향(Flavour)이다. 이 1%의 향이 복잡다기하고도 다양한 와인의 풍미를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낸다.

"리즐링이나 쇼비뇽 블랑 같은 화이트 와인은 2가지 부분에서 풍미가 결정됩니다. 발효 과정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스트, 즉 효모입니다. 그리고 샤도네이는 한 가지 더 풍미를 좌우하는 요소가 더해지는데 그건 오크 숙성과정입니다."

그런데 레드 와인은 이 보다 결정 요소가 더 많다. 모두 4가지. 침용추출과정(Maceration)이 하나 더 추가된다. 리델 회장은 "이는 레드 와인을 만드는데 포도 껍질(Skin)이 커다란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껍질은 항산화작용을 하는 탄닌 생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까지의 실험은 약과.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은 색깔이라도 다르니 그러려니 싶다. 하지만 같은 색상인 레드 와인끼리에서는 더 극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보르도 잔에 담긴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 와인을 버건디 잔에 따라 보세요."

아까 길다란 보르도 글라스에 있던 와인은 드라이하면서도 탄닌 맛이 강했다. 그런데 버건디 잔에서는 왠지 예전만 못하다. "보르도 잔이 왜 더 길고 둥근지 아십니까?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이 가진 강렬한 탄닌의 향과 맛을 더 잘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부르고뉴 와인으로 상징되는 피노노아 품종 와인은 잔에 더욱 민감하다.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실크처럼 섬세한 맛이 원래 잔에서는 살아난다. 하지만 카베르네 쇼비뇽 잔으로 옮기고선 웬걸, 향과 맛 모두 밋밋하기만 하다.

"버건디잔의 모양을 보면 입술과 혀에 닿는 림(Rim) 부분이 약간 꺽여 있죠. 이는 와인을 들이킬 때 와인이 혀 중간 부분이 아닌 끝부분에 떨어지도록 해줍니다. 와인이 혀와 더 빨리, 먼저 접촉하면서 향과 맛이 더 오래 혀를 타고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죠.."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이 특징인 부르고뉴 와인이 '잔을 가리는' 가장 큰 이유이다.

반면 보르도 잔은 와인을 들이킬 때 입안 더 깊숙히 혀의 중간에 떨어지도록 '디자인'돼 있다.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의 와인은 아무래도 강한 탄닌이 처음부터 강하게 들이대지 않아도 맛과 향이 충분히 입 안에 전달된다는 이유 때문.

이처럼 같은 와인이라도 글라스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이유는 와인 향의 입자 차이 때문이다. 와인 마다 각기 다른 향을 내는 입자가 있는데 이들 입자의 크기나 무게가 각각 다르다는 것. 잔의 형태와 크기에 따라 어떤 입자는 살아나고 다른 입자는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와인 글라스가 주는 다양한 변화상은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그가 시켜보는 것처럼 이리저리 와인을 '이동'시켜 가며 따라 해 보면 하나의 와인이라도 다른 잔에서는 같은 맛을 느끼기가 어려움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 "(차이를) 확신하진 못하더라도 놀라셨죠. 무척 인상적인 경험이었을 겁니다." 와인을 옮기느라 잠시 따라 놓게 되는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잔, 조커잔으로 마실 때는 심지어 후회되기 까지 한다.

그가 말하는 대로 '와인 잔은 와인이 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다. 세계를 다니며 그자신이 직접 이런 실험을 해 보이는 것도 "아름다운 와인은 '올바른 와인 잔'으로 마셔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세가지 와인 잔을 사용하지만 종종 2개의 와인 잔을 보태기도 한다. 쉬라 등 드라이한 와인용 글라스와 리즐링 품종용 잔 등. 하지만 5개로 하면 너무 복잡하지 싶다. 글라스 3잔 만으로도 당혹스럽고 어지러웠는데…

그가 한국에서 글라스 테이스팅 클래스를 가진 것은 이번이 공식 방한을 시작한 이래 18년 동안 단 4번째다. 이번 일정은 아시아 투어의 중간 행사.

세계를 누비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만 하는 그는 "이젠 아들 막시밀리안에게 이 일을 넘겨줘야 할 것 같다"고 20년 지기 친구인 유안근 까브드뱅 대표에게 운을 띄웠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번이 서울에서의 마지막 공식 클래스. 어쨌든 그의 '가르침'대로 앞으로는 와인 잔을 가려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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