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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사랑

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심리학에 '페르소나'라는 용어가 있다. 원래는 연극을 할 때 배우가 쓰는 가면을 가리키는 말인데, 심리학에서는 개인이 사회생활을 할 때 필요한 역할기능을 의미한다.

즉 페르소나는 한 개인이 주변 세계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이 페르소나가 기능적 역할을 넘어서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할 때에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페르소나는 그 개인의 고유한 인격과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가정의 아버지가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에 지나치게 결합되어 있으면 가정에서의 역할에 소홀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가족들에게는 '돈을 벌어주는 사람' 이상의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또 아버지라는 위치에만 머물러 있어도 아내나 자녀와 '눈 높이 대화'를 하지 못하고 권위만을 내세우는 '메마른 인간'이 될 수 있다.

여성도 아내나 어머니의 역할에만 충실하며 살다 보면, 갱년기 이후처럼 아내나 어머니의 역할이 덜 중요해질 때 갑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깊은 우울에 빠지거나 때 아닌 불륜의 유혹에 휩쓸리기도 한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 드라마 <민들레 가족>의 맏사위는 집안 좋고 실력 있는 치과의사다. 그는 좋은 매너와 후한 돈 씀씀이로 처가의 환심을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가정에 돌아가면 심한 결벽증으로 아내를 괴롭힌다.

그는 페르소나에 충실하여 사회가 바라는 역할을 수행할 줄은 알지만, 자기 자신으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따라서 그의 외면은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한 개인으로 돌아와 자신의 내면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에는 공허감과 불안을 피할 수 없다. 자기 내면에 생명력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 역시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모범생으로 살면서 부모에게 만족을 줄 만한 상대와 결혼을 했다. 그녀는 배우자의 선택에 있어서도 '착하고 자랑스러운 딸'이라는 페르소나에 충실했던 것이다. 이런 커플의 결혼은 상호 애정에 의한 선택이 아닌 '페르소나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이들의 사랑 없는 결혼은 오랜 결혼생활에도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것으로 상징화된다. 이 부부가 자신들의 결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도 여전히 겉으로 보여지는 부모의 역할에만 충실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도 부모와 같은 길을 따르거나 '대책 없는 방황'에 빠졌을 것이다.

이들은 페르소나로 위장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매우 우호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마음'은 아주 단단한 껍질에 쌓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어느 정도 이상은 다가서기 어렵다. 하지만 그 껍질 내부에 있는 '속마음'은 지극히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숨어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그 자신도 잘 모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대개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필요한데, 그 과정에는 '자신이 깨어지는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그런 과정을 통하여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충고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방법 외에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딱딱하게 굳은 딱지를 걷어내고 예민한 속살을 드러내야만 효과적으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문제의 해결이 반드시 순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드라마의 부부도 진정한 화해에 이르기 위해서는 각자 상대에게서 받은 상처를 탓하기 전에 상대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상처를 치유하도록 서로를 도와야 한다.

그런 후에야 '그토록 문제가 많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한 자기 자신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대를 선택한 것이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귀중한 기회'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그런 후에야 비로소 '페르소나 역할로서의 사랑'이 아닌 진정한 사랑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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