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주방] (5) 이집트이집트 국민 음식 쿠샤리 파는 유일한 식당, 알리바바

고대 문명과 현대 문명이 물리적으로 혼재해 있는 나라. 승용차가 내뿜는 매연 옆으로 당나귀가 걸어 다니고, 새로 솟은 빌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피라미드는 너무나 이질적이라 어지럽기까지 하다.

역사적으로나 거리 상으로 한국과는 거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먼 나라지만 이집트의 음식에는 우리의 식탁과 비슷한 점이 꽤 많이 발견된다.

먼저 밥을 중심으로 반찬들을 한 상에 차려 놓고 먹는다는 점, 그리고 한 가지 맛이 아닌 재료의 혼합으로 인한 복합적인 맛을 선호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마늘, 콩, 깨, 가지, 달걀 등 낯익은 식재료들이 그렇다.

형식이나 재료뿐 아니라 맛도 친근하다. 역사적으로 이집트인을 비롯해 그리스인, 로마인, 아랍인들이 융합하며 살아온 까닭에 문화적으로 포용력이 크고 개방적이어서 그런지, 인도나 다른 중동 지방에 비해 향신료를 강하게 쓰지 않는 이집트 음식은 맛이 소박하고 무난한 편이다. 따라서 이국적인 분위기는 즐기지만 진짜 이국의 향에는 좀처럼 적응을 못하는 이들에게 이집트 음식은 특히 매력적이다.

한국 내 이집트 음식점은 10년 전에도 한 곳, 지금도 한 곳이다. 이태원의 알리바바는 흔해 빠진 이름만 보면 무슨 음식을 파는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실은 동화에서 따온 것이 아닌 사장인 알리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알리바바는 알리의 아버지란 뜻이다). 주한 이집트대사관 상공회의소에서 근무하던 칼리드 알리 씨는 2001년 알리바바를 열었다. 사장과 매니저 한 명이 요리도 하고 서빙도 하며 소박하게 운영하는 알리바바에서는 이집트를 대표하는 음식들과 함께 주인의 소장품인 다양한 장식품들을 만날 수 있어 눈이 즐겁다.

이집트의 국민음식 '쿠샤리'
전부 넣고 싸서 드세요

"에이시는 이집트 인에게는 삶이다"

한국인들이 밥심으로 살아 간다면 이집트인들의 힘의 원천은 에이시다. 누룩을 넣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구운 빵인 에이시는 인도의 난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작고 모양이 둥글다.

게다가 난이 주로 뭔가를 발라 먹는데 쓰인다면 에이시는 발라 먹고, 찍어 먹고, 싸 먹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집트의 모든 음식과 어우러지기 때문에 에이시 없이는 이집트 음식을 먹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카이로 시내에 가면 아침마다 이 에이시를 광주리에 가득 담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알리바바에서는 피타빵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데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푼 원조의 모양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부드럽고 담백한 맛은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에이시를 적당한 크기로 떼어 내서 벌리면 두 겹으로 된 빵 안에 쌈처럼 싸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오는데 이 속에 고기든 야채든 취향대로 넣어서 먹으면 된다.

이집트 음식에 많이 들어가는 병아리콩(우)과 브라운 렌틸콩(좌), 커민
알리바바의 매니저 에이샤가 추천하는 것은 피타빵을 뜯어내 그 안에 펠라펠 반쪽을 넣고 매운 가지 요리인 타잔 마사카 한 숟갈, 그리고 야채 샐러드, 그 위에 요거트로 만든 화이트 소스를 듬뿍 뿌려 먹는 것이다. 마늘과 커민, 고추의 스파이시한 향과 튀김의 바삭한 식감, 신선한 야채, 요거트 소스의 시큼하고 기름진 풍미가 어우러져 비빔밥의 오감 못지 않은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펠라펠은 콩을 갈아 동그랗게 튀긴 것으로 이집트인들이 즐겨 먹는 스낵이자 시리아, 요르단 등 중동 지역의 주식이다. 이집트는 콩 요리의 천국이지만 병아리 콩, 렌틸 콩 등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품종을 쓰기 때문에 수입 재료상에서 사와야 한다.

펠라펠은 병아리 콩의 껍질을 벗겨 밤새도록 물에 불린 뒤 갈아서 마늘, 커민 등과 함께 고로케처럼 튀겨서 만드는데 알리바바 식당에서는 팔라펠로 표기하며 위에 깨를 듬뿍 뿌려 낸다. 그냥 먹으면 다소 뻑뻑하기도 하고 단 맛도 매운 맛도 아니라 쉽게 매력을 알 수 없지만 소스를 찍어 먹거나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먹다 보면 어느새 중독성이 느껴진다.

타잔 마사카는 튀긴 가지와 감자, 매운 고추에 토마토 소스를 뿌린 것으로, 기름지고 매콤한 것이 한국 사람들 입에 잘 맞는다. 샐러드는 야채를 썰어 레몬 소스 등으로 새콤하게 맛을 냈는데 오이, 토마토, 모두 우리에게 친숙한 야채들로 이루어져 있다.

요거트를 재료로 만든 화이트 소스는 시큼하면서 달큰한 맛이 일품이지만 좀 더 이국적인 맛을 느끼고 싶으면 후머스(또는 홈무스, hummus)를 따로 시키면 된다. 병아리 콩과 마늘, 커민 등을 갈아 넣고 올리브 오일을 첨가한 후머스는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소스로 빵에 발라 먹기도 하고 샌드위치에 넣어 먹기도 하며 전천후로 쓰인다.

야채설리드
예배당보다 흔한 쿠샤리 가게

이집트에 다녀온 이들이 못 잊는 음식 중 하나로 쿠샤리가 있다. 에이시가 한국의 밥이라면 쿠샤리는 마치 떡볶이처럼 온 국민이 즐겨 먹는 간식이자 스낵이요, 간단한 한끼 식사다. 이집트 거리 어디에서나 쿠샤리를 만들어 파는 가게를 볼 수 있어 '이집트에는 모스크(이슬람 예배당) 수만큼 많은 쿠샤리 가게가 있다'는 말도 있다.

쿠샤리는 에이시나 펠라펠과 달리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집트 고유의 음식이다. 다른 음식들이 에이시에 곁들이는 반찬 개념이라면 쿠샤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일품 요리로 면이나 덮밥처럼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다. 마카로니, 파스타, 쌀, 콩에 토마토 소스와 양파 튀김을 얹어 비벼 먹는데, 넣는 재료나 배합하는 양, 먹는 방식을 조금씩 달리해 자신만의 쿠샤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알리바바에서는 밥과 마카로니, 브라운 렌틸 콩과 병아리 콩을 삶고 그 위에 토마토 소스를 뿌린 뒤 까맣게 튀긴 양파를 얹어 준다. 간혹 맛이 슴슴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이럴 때는 맵게 해달라고 주문하면 된다.

이집트는 이슬람교가 국교이기 때문에 그 영향이 음식 곳곳에 미쳐 있다. 돼지 고기를 먹지 않고 대신 그를 제외한 다양한 고기들을 먹는데 그 중에서도 닭, 비둘기, 펠리칸 등 조류 고기가 발달했으며 낙타 고기도 흔하게 먹는다. 특히 이집트의 닭은 한국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튼실하고 맛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쫀득쫀득한 비둘기 고기 역시 이집트의 명물로 한국에서는 식용 비둘기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 (지하철 역의 수많은 비둘기들은 물론 식용이 아니다) 상상으로 그쳐야 한다. 알리바바에서 맛볼 수 있는 고기류는 소와 양, 닭으로 닭가슴살을 향신료에 절인 쉬시타욱은 추천 메뉴다.

음식에 술을 곁들이지 않는 것은 이집트 식문화의 특징이나 알리바바 식당에서는 무슬림 외의 손님들을 위해 간단한 주류도 판매한다. 무슬림들은 술 대신 이집트 차나 이집트 커피를 마시는데 보통 쓴 맛을 싫어해 차나 커피에 설탕을 잔뜩 넣어서 달게 마신다. 이집트의 디저트 역시 지독하게 달고 칼로리가 높기로 유명하다.

쌀로 만든 디저트의 일종인 마할라베하는 쌀과 우유, 설탕을 졸여서 만든 라이스 푸딩으로 한국인들의 단 맛과는 차원이 다른 맛을 자랑한다. 알리바바에는 없지만 바클라바라고 하는 후식도 유명한데, 얇은 밀가루 반죽에 견과류를 갈아 넣고 구운 다음 시럽에 푹 적셔 나오는 음식으로 이가 흔들릴 정도로 달다고 한다.

낮 12시에 문을 열어 밤 11시까지 영업하며 가끔 밸리댄스 파티를 위해 통째로 대관할 경우 밤늦게까지 문을 열기도 한다. 한 달에 2번 쉬는데 월요일이나 화요일 둘 중 하루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미리 문의하고 가는 것이 좋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