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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세월이 빚어낸 진중한 퓨전

[타국의 주방] (6) 홍콩
싱싱한 활어로 광동 음식의 정수 보여주는 '채운'
  • 칭쩡위
8, 9성을 넘나드는 시끄러운 언어로 거리는 조용할 날이 없다. 4계절 촉촉한 습기와 더위로 인해 홍콩인들의 피부는 미끈하기가 이를 데 없고 남녀를 무론하고 동안에 여자들은 50kg만 넘어도 호들갑을 떨며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감행한다.

아무데서나 붙어 열렬히 키스하는 연인을 보면 여기가 유럽인가 싶다가도, 속옷만 입고 당당히 활보하는 남자들에게서 중국의 피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

홍콩은 한국 입장에서는 충분히 부러워할 만한 음식의 천국이다. 아시아에서 도쿄와 함께 손꼽히는 미식 도시로, 미슐랭 별을 받은 스타 셰프들이 잔뜩 포진해 있어서 사천 요리, 북경 요리, 광동 요리는 물론이고 최고의 프렌치와 이탈리안 요리, 인도, 중동, 일본, 한국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세계 모든 음식들이 모인 격전지에서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가장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 광동 요리다. 광동성을 포함 중국 남부 지역의 음식을 가리키는 광동식은 일반적으로 '중국 요리답지 않은', '기름기가 없고 담백한'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장면과 베이징 덕의 그늘이 너무 큰 것일까? 중국 음식은 이제 지겹도록 친근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광동식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에 그 진정한 맛을 궁금해 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러나 딤섬만 알고 넘어 가기에 광동 음식의 세계는 너무나 방대하고 매력적이다.

  • 삐펑탕차오샤
해산물의 천국, 홍콩

5년 전 가로수길에 문을 연 채운은 처음부터 광동 요리 전문점을 표방했다. 자장면을 없앤 것은 그 굳은 각오의 일환이었다. 시간이 흘러 결국 '자장면 귀신'이 씌운 한국 사람들을 이기지 못해 광동식으로 재해석한 '채운표' 자장면을 내놓았지만 다른 것들은 한층 현지의 맛에 가까워졌다.

"홍콩은 해산물의 천국이에요. 채소도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합니다. 오리지널 광동 요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재료에 달려 있는 거죠."

김남수 사장의 말처럼 홍콩의 해산물은 크고 실하고 저렴하기까지 하다. 생선을 간장으로 양념해 찌는 광동식 생선찜 '칭쩡위'의 경우, 홍콩이라면 인근의 바닷가에서 다금바리나 능성어 같은 고급 생선도 번쩍번쩍 잡아 올려 싱싱한 그대로 쪄낼 수 있지만 국내에서 능성어 찜을 내려면 접시 당 기본적으로 20만원은 훌쩍 넘어가게 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신선도도 보장할 수 없다.

채운이 홍콩의 싱싱함을 식탁까지 가져오기 위해 고안한 방법은 활어다. 모든 생선찜에는 활어만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이는 꽃게와 랍스터도 마찬가지다. 물론 주방에 대형 수조를 갖추지 않은 이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요가 파악되고 예약 시스템을 구비하면서 가능해졌다.

  • 중국식 간장과 흑미 식초
"손님들이 점점 홍콩 현지에서 먹던 음식 맛과 비슷해진다고 하는데 채운의 셰프나 메뉴에는 큰 변화가 없어요. 다만 손님들과 점점 손발이 맞아가면서 재료 수급이 용이해지고 이게 곧 음식 맛을 좌우했던 것 같아요."

채운에서 칭쩡위를 시키면 크고 싱싱한 우럭을 생강, 파와 함께 쪄낸다. 접시 아래 자작하게 깔린 간장은 전혀 짜지 않아 담백한 흰살 생선과 어우러져 전형적인 광동 음식의 슴슴한 맛을 낸다.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젊은 층보다는 어른들이 더 선호할 맛이다. 고명으로 올린 파와 고수는 취향에 따라 빼고 먹을 수도 있고 더 시켜서 먹을 수도 있다. 랍스터, 꽃게, 장어 등 다소 고가의 재료를 이용한 찜의 경우 이틀 전에 예약하면 갓 잡은 해산물의 싱싱한 맛을 볼 수 있다.

광동식이라고 해서 모두 맛이 심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고추와 마늘로 게를 맵게 볶은 '삐펑탕차오샤'는 홍콩의 명물로, 흙더미에 묻혀 있는 듯한 독특한 외관과 마늘의 바삭한 식감, 고추의 화끈한 매운 맛, 그리고 게의 풍미가 어우러진 별식이다. 국내에서는 게의 수급이 어려워 보통 새우로 대신하는데 채운에서는 예약 주문을 하면 게로 만든 삐펑탕을 맛볼 수 있다.

물에 넣어 매운 맛을 뺀 뒤 탈수해 다져서 센 불에 튀긴 마늘은 크리스피한 식감이 일품으로 어느덧 정신 없이 숟갈로 퍼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고추와 함께 튀겼지만 크게 맵지 않아 다른 담백한 음식들과도 잘 어울린다. 새우로 만든 삐펑탕차오샤도 있는데 입 안에서 살아 몸부림 치는 듯한 홍콩 새우만은 못하지만 크고 통통하고 탱글탱글한 새우 맛을 볼 수 있다.

뼈가 없으면 향이 없다?

현지의 맛을 가져오는 데 또 하나 든든한 지원군은 홍콩인 셰프들이다. 주방에는 6명의 요리사가 있는데 그 중 3명의 홍콩인 셰프가 음식의 대부분을 관리하고 있다. 그들은 쌍노두, 홍식초, 흑미 식초 등 광동식 양념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야채를 최대한 아삭하게 볶는다거나 고기에 반드시 뼈를 함께 내는 홍콩의 취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한국에도 예전에는 라조기와 깐풍기에 뼈가 그대로 나왔으나 순살을 발라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내국인들의 습성 때문에 점차 사라졌던 기억이 있다. 홍콩인들은 고기 요리에 뼈가 없으면 향이 없어진다고 믿으므로 거의 대부분의 고기에 반드시 뼈를 함께 낸다. 간혹 국내에 없는 양념이나 향신료가 있더라도 수시로 고향에 들르는 길에 어렵지 않게 사가지고 올 수 있다.

광동 음식에 쓰이는 간장과 식초는 한국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덜 짜고 순하다는 특징이 있지만 사실 그들과 우리 식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케첩과 우스터 소스, 마요네즈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다. 메뉴에는 토마토 볶음밥과 마요네즈 소스로 만든 새우 튀김이 동파육과 부추잡채 사이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들에겐 케첩과 마요네즈가 퓨전이 아니고 정통이에요. 150년간 이런 것들을 써왔으니 굳이 서양의 것이라고 구분 지을 생각이 없죠. 우리 나라 사람들이 고추를 한국의 맛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아요. 하지만 사실 임진왜란 전까지 한국에는 아예 고추가 없었죠."

푹 찌고 고아서 만드는 동양적 요리법에, 오랜 세월을 거쳐 완벽하게 체화된 서양의 향, 여기에 바다가 선물한 싱싱한 재료가 더해지면 광동의 맛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단품 요리 외에 코스로 먹을 수도 있으며(1만8천원부터 9만원) 점심은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 저녁은 5시 반부터 10시까지 영업한다. 구정과 추석 당일은 휴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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