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지구 상의 많은 생물 종(種)들 중에서 거의 인간만이 성(性)을 번식이 아닌 쾌락을 위해서 이용한다. 하지만 이처럼 성의 쾌락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일세기도 채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교와 도덕의 오랜 억압에서 벗어난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표현함으로써 '인간화'가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해방된 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당시에 확대되던 상업적 자본주의였다.

상업주의는 사랑 없는 성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성적 환상을 사랑과 교묘하게 혼합하여 광고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사랑을 책임지지 않으면서 성적 만족을 추구하고, 또 성적 충동과 사랑의 감정을 혼동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매우 빠른 기간에 근대화를 이루면서 성적 해방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의 강점에 이은 내전과 군사 정권의 영향으로, 성은 자연스러운 인간 감정의 표현 통로로 인정되기보다는 동물적 충동의 해소 수단으로 잘못 받아들여졌다.

더구나 문화개방으로 일본을 통한 왜곡된 성 문화의 침입은 올바른 성 가치관의 수립을 저해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남성들 중에는 결혼한 후에도 직장이나 사업을 핑계로 외도를 저지르면서 '남자는 그럴 수도 있다'는 남성중심적 성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깨달은 부인들은 이런 소위 '생계형 외도' 주장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성들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또는 재미나 자극을 위해서 사랑 없는 성 매매를 즐긴 대가가 부인의 분노와 자녀의 존경심 상실 그리고 이혼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게 되면 이런 모험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근래에는 잘못된 성 문화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전염되어 건전한 성적 가치관의 발달과 가정의 안정성을 해치고 있다.

'성적 자유'에 대한 근거 없는 주장이 늘어남에 따라 결혼한 사람들도 보다 자극적인 성적 경험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틀에 박힌 성 행위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때 부부가 합의에 의해서 여러 방법을 시도하여 서로 만족하고 또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다행한 일이다.

구강 성교나 항문 성교 또 여러 성 기구들을 사용하여 이런 만족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 관계를 결혼한 배우자에게만 한정하는 것에 염증을 느껴서 개방 결혼이나 부부 교환 같은 성적 모험을 감행하는 집단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이 이런 행위를 통하여 얻고자 하는 목표가 성적 쾌감뿐이라면, 그 결말이 어떠할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음식에 대한 탐닉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성적 쾌락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것이라서 결국에는 개인적인 영혼과 마음의 상실과 함께 가정의 파괴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또 만약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러한 모험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그 외의 방법은 없는 것인지를 먼저 재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쾌감에 대한 끝없는 추구의 대가로 참담한 결말을 감수하게 되는 경우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성 행위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외의 대상과 깊은 연애 감정에 빠져있다면, 또 소위 '사이버 섹스'처럼 사람이 아닌 대상을 성적 만족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라 해도 부부 관계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설령 배우자가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해도, 당사자 개인의 삶과 인격에는 적잖은 영향을 주기 마련이며 나아가 가정의 행복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

결혼생활은 연애기간과 다른 일상의 연속이므로 이전에 느꼈던 행복감을 계속해서 느끼기는 어렵다. 일부일처제가 개인적인 사랑의 감정을 충분히 발휘하기에는 부자연스러운 사회적 장치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결혼 후에 배우자 이외의 상대와의 연애나 성 경험이 흥분을 주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 상대와도 오랜 일상을 함께 한다면 결국 마찬가지의 무료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발달심리학적 견해에서는 여러 상대와 짧은 성적 경험을 가지는 것보다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되더라도, 한 사람을 오랫동안 사랑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자기 자신과 상대를 잘 알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서로의 성적 만족을 높이며 사랑을 깊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적 억압에서 벗어난 성적 자유는 무분별한 욕구 충족이 아닌 자발적인 헌신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사랑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박수룡 편한마음 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