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버거 전쟁, Burger War맛있고 건강하고 패셔너블한 프리미엄 버거의 유혹

15센트 햄버거의 파란만장한 출세기

고기의 주재료가 닭 대가리라는 괴담 속에서도 마요네즈와 케첩 맛에 의지해 꿋꿋이 햄버거를 소비하던 시절이 있다. 주방에서 쥐를 보았다는 소문도 '3000원 송'의 신나는 리듬에 묻혀 버리던 그 시절은 사실 아주 옛날 일도 아니다.

이에 통탄하는 이들은 주로 이태원에 서식하는 정통 햄버거 집들이었다. "진짜 햄버거 맛은 그게 아닌데…" 그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안타까워했지만 그저 통탄만 하는 데 그쳤다.

그러다 몇몇 똑똑한 기업들이 햄버거에 건강을 덧씌워 돈 벌기에 나서면서 전쟁은 시작됐다. 출처가 분명한 고기, 반질반질한 빵, 흐물거리지 않는 양상추를 먹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예상보다 컸지만(갈비탕 한 그릇을 훌쩍 뛰어넘는), 건강을 앞세운 프리미엄 버거의 등장은 너무나 지당한 시대의 요구였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햄버거를 천박하게 소비했던 과거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민족을 대표하는 음식이 다른 지역에 정착했을 때 왜곡되거나 혹은 타락하는 원인은 대부분 그 생소한 맛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용자들에게 있지만 햄버거는 건너올 때부터 정크 푸드였다.

햄버거의 천박함은 그 본토에서부터 왔다. 미국문화역사가인 조시 오저스키가 "햄버거에 대한 생각을 미국 시민권 시험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할 만큼 햄버거에는 지난 100년간 미국이 겪은 자본주의와 대량화, 산업화의 흔적이 노골적으로 스며 있다. 한 계절씩 음식을 묵혀 먹는 우리 눈에, 아니 입에 천박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어쨌거나 '햄버거도 건강해요' 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셰프들이 햄버거에 손대기 시작한 것이다. 자존심을 건 재료 선정, 맛을 위해서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 마인드, 방대한 지식을 토대로 한 기발한 응용이 햄버거에 황송하게 덧입혀졌다. 존 갈리아노가 광부들의 옷인 데님을 런웨이 위에 올렸을 때의 영광이 이만할까? 한우 1++, 유기농 밀가루, 뉴질랜드산 버터 등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재료들이 햄버거집 주방에서 발견됐다.

그리하여 어느덧 버거 전쟁은 2차 국면에 접어 들었다. 그것은 원조 햄버거의 맛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기도 하고, 순수 예술가가 그린 코카콜라처럼 하위 문화의 전형적인 하극상이기도 하며,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저 돈은 충분하니 제대로 만든 음식을 내놓으라는 대중의 요구이기도 하다.

쇠고기 Beef

쇠고기는 음식인지, 정치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치적 이해 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된 식재료다. 이 파란만장한 음식 때문에 햄버거의 인생도 덩달아 꼬이게 됐는데, 이는 미국 쇠고기 산업계의 끝없는 로비의 결과로 1946년 미국 농림부에서 '쇠고기와 쇠기름만이 햄버거의 재료'라는 법령을 제정하면서부터다.

기타 돼지 고기와 돼지 기름, 닭고기는 억울하게도 햄버거로 불릴 수 있는 특권을 잃었고 돼지는 한때 미국을 대표하는 고기의 자리를 소에게 내주어야 했다. 슬프게도 이것은 결과적으로 고기의 타락을 불러 왔다. 살코기가 30%만 함유돼 있으면 무엇이든 쇠고기로 불릴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내일 하는' 젖소부터 병든 가축, 나중에는 콩 첨가물과 부스러기 채소까지, 그저 갈아 넣기만 하면 되었다.

"다른 부재료가 들어가면 패티를 씹을 때 부스러져요. 입자가 너무 작아도 마찬가지고요. 부서지는 정도가 높으면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죠. 그렇기 때문에 고기의 질과 비율도 중요하지만 입자 크기도 중요해요. 한우 등심과 호주 청정우의 목심만 사용해서 스테이크와 패티의 중간 정도 식감을 느낄 수 있도록 갈아 만듭니다."

수제 버거 패티패티를 총괄하는 현정 셰프의 말이다. 살코기와 기름의 가장 맛있는 비율은 일반적으로 8 대 2로 알려져 있지만 각 식당의 장맛처럼 구체적인 비율은 대외비다.

번 Bun

햄버거의 빵은 햄버거냐 아니냐를 가리는 데 있어서 어쩌면 쇠고기보다 더 중요한 지표일지도 모른다. 이게 아니고서는 그 수많은 고기 샌드위치들과 햄버거를 어떻게 구분 지을 것인가? 햄버거의 패티에서 빠져 나오는 그 수많은 육즙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얄팍한 토스트 조각이 아니라 두툼한 번이다.

마더스 오피스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버거'
햄버거의 창시자를 가릴 때 늘 거론되는 몇몇 인물들 – 위스콘신 주의 찰리, 뉴욕 햄버그 시의 멘치스 형제, 텍사스 주의 데이브 등 – 이 모두 번이 아닌 자른 식빵에 고기를 끼웠음에도 불구하고 번은 햄버거의 주요한 정체성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 의미에서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빌비가(家)는 좀더 엄격한 의미에서의 햄버거 창시자다. 빌비가는 1933년 햄버거 가게 '베버스'를 열기 전 그 윗대인 오스카 빌비부터 가족 소풍에서 햄버거를 먹었다고 주장했다.

"1891년 7월 빌비는 쇳조각으로 석쇠를 만들어 의미심장한 사회공헌을 했다. 그는 구덩이를 파서 히코리 나무로 석쇠에 불을 붙였다. 그의 아내인 패니가 시큼한 밀가루 빵을 만드는 동안 오스카는 검은 앵거스 품종으로 순 쇠고기 패티를 만들어 석쇠 위에서 구웠다."

보통 쇠고기 패티와 가장 잘 어울리는 빵은 입에 착 감기는 브리오쉬 번으로 알려져 있지만 햄버거의 화려한 변신 앞에서 정해진 공식이란 없다. 버거 프로젝트 최현석 셰프는 에 오징어 먹물로 만든 검은색 번을 사용한다. 해물이라는 공통 분모 외에도 아귀살의 흰색을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카멜색보다는 검은색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워진 선명한 푸른색 오이까지. 이른바 햄버거에도 패션이 도입됐다.

크기 Bigger and bigger

'est 1894'
점점 커지는 최근 버거의 트렌드는 '모든 재료를 한 번에 씹는다'는 햄버거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사실 맛뿐 아니라 햄버거가 가진 사회 문화적 정체성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모든 사람이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이라는 미덕은 햄버거의 끈질긴 생명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햄버거가 커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가 있다. 바로 햄버거 계의 영원한 숙적인 맥도널드와 버거킹의 한판 승부에서다. 버거킹 창립자인 제임스 맥라모어는 1957년 새로운 야심작을 발표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큰 햄버거'로 이미 몇몇 경쟁업체에서 인기가 검증된 것이었다.

그는 '크기'가 인기 요인임을 간파하고 그를 강조할 수 있는 이름 '와퍼(엄청 큰 것)'라는 이름을 붙여서 팔았다. 놀랍게도 맥도널드는 거의 20년간 맞불작전은커녕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않았고 버거킹은 '푸짐한 버거'라는 독보적 지위를 오랫동안 누리며 버거계의 양대산맥으로 등극하는 데 성공했다.

햄버거의 가격이 15센트, 기껏해야 18센트를 넘어가지 않던 시절 와퍼의 가격은 거의 두 배인 29센트였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은 '더 좋은 것(또는 더 큰 것)'을 원하며 기꺼이 비용을 치를 용의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재료가 흐드러지게 올라가는 최근의 프리미엄 버거가 참고할 만한 희망이기도 하다.
내용 참고: <햄버거 이야기> 조시 오저스키

셰프의 버거 / 주목할 만한 프리미엄 버거집 4선

기본으로 돌아간 한입 버거 - 패티패티

'패티패티'
"왜 햄버거를 한 입에 먹을 수 없는 것인가!"
SG다인힐이 최근 오픈한 수제 버거 패티패티는 버거의 기본기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며 단 4 종류의 버거만 선보인다. 층층이 쌓아 올린 부가 재료와 소스를 다 빼버리고 한 입에 먹을 수 있도록 날씬하게 만든 것. 대신 패티의 맛으로 승부한다는 일념 아래 씹었을 때의 입자 크기와 지방의 비율, 굽는 방식 등을 치밀하게 계산했다.

적당한 크기로 갈은 한우 등심과 호주산 목심을 야구공만하게 뭉쳐 1차로 팬에서 굽고 2차로 참나무 그릴에 훈연해서 굽는데, 이렇게 나온 패티에 양파와 피클, 치즈만 올려 만든 것이 가장 기본인 BRB 버거다.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한 패티에는 육즙과 향미가 풍부하게 살아 있어 소스의 빈자리를 느낄 틈이 없다.

여기에 야채가 더 필요하면 를, 색다른 맛을 즐기고 싶으면 바비큐 소스를 넣은 바비 베이컨이나 버섯과 고르곤졸라 치즈를 넣은 졸라 머쉬룸 버거를 시키면 된다. 졸라 머쉬룸 버거는 치즈의 녹진한 맛과 따뜻한 버섯의 조화가 일품이다. 부드럽게 구운 브리오쉬 번은 버거 맛을 살리는 숨은 공신.

가격은 5000원에서 8000원대로 프리미엄 버거 중 최저가다. 계열사인 삼원가든의 고기와 블루밍 가든의 빵이 있어서 가능해진 낮은 가격이다. 버거 말고도 버팔로 윙, 치즈 범벅 나쵸, 그릴 소시지 등도 구비돼 있으며 오후 5시 이후에는 캐주얼한 맥주 펍으로 변신한다. 오전 11시 반에 열어 밤 12까지 영업한다. 문의: 02-511-3763

와인과 즐기는 유럽식 버거 - 마더스 오피스

ASAP 버거
청담동에 이제 막 오픈한 따끈따끈한 버거집. 정통 아메리칸 테이스트를 찾아 나서는 최근 트렌드에 역행해 유럽 가정식 버거를 선보인다. 훈연향 가득한 패티 대신 와인에 재운 패티, 폭신한 브리오쉬 번 대신 치아바타 느낌의 약간 단단한 빵을 쓴다.

블루베리와 생크림을 풍부하게 넣은 프렌치 스타일의 버거부터 이탈리아 정통 요리인 카포나타를 올린 버거, 프로볼로네치즈와 프렌치블루치즈 등 4가지 치즈를 넣어 만든 버거 등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유럽식 재료와 음식들을 버거에 녹여내 서유럽의 향미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버거를 시키면 패티 위에 속재료를 수북하게 올리고 빵을 덮지 않은 채 내오기 때문에 들고 먹기보다는 나이프로 썰어 먹는 것이 편하다. 달 는 이탈리아 가정식인 카포나타를 활용했는데 토마토를 졸여 만든 시큼달큼한 소스와 담백한 빵, 곁들여 나오는 블랙 올리브와 바질 드레싱의 궁합이 환상적이다.

버거의 맛이나 분위기 모두 맥주보다는 와인이 더 어울리는 편. 건강한 가정식을 모토로 하기 때문에 빵과 소스, 모두 핸드 메이드가 기본이다. 매일 굽는 빵에는 유화제를 과감히 빼버렸고, 설탕 대신 당도 높은 와인으로 단 맛을 내며 (디저트는 제외), 소의 정강이 뼈를 우려 만드는 데미글라스 소스까지 직접 만든다.

버거 가격은 7900원부터 1만1000원대까지. 버거 외의 메뉴도 충실하다. 가지를 층층이 쌓아 올린 그리스 전통 요리 무사카와 뉴질랜드산 버터로 만든 풍기, 시라쿠사 특산 앤초비를 넣은 시저 샐러드 등 최상급 재료들을 사용해 신경 써서 만들었다.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문의: 02-3444-2141

시칠리아 버거
거대한 그릴이 빙글빙글 - EST 1894

지난 해 말 삼청동 근처 재동에 문을 연 EST 1894. 햄버거가 처음 나온 1895년에서 1년을 빼 햄버거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재미있는 작명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매장 맨 앞에 자리 잡은 대형 로타 그릴인데 무형 문화재인 장인이 3개월을 들여 만든 주물 석쇠다.

아래에는 제주도산 화산석을 깔아 온도를 220도로 유지하고 이 위에 패티와 번, 양파를 모두 올려 굽는다. 둥근 그릴이 13바퀴를 돌면 패티 하나가 다 구워진다. 호주산 목등심과 1++급 한우의 우지를 8 대 2로 배합한 패티는 거친 불맛이 약간 아쉽지만 대신 촉촉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여기에 무안 양파, 유기농 밀로 만든 번, 남원 수제 치즈 등 국내산으로 까다롭게 고른 재료들이 맛을 보장한다. 머스터드와 직접 만든 타르타르 소스만 넣어 재료 맛을 살리는 데 치중하지만 아주 매운 파이어리 버거와 를 고르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는 기본 버거에서 모든 재료를 업그레이드한 럭셔리 버전으로서, 체다 치즈 대신 임실 모짜렐라 치즈와 고르곤 졸라 치즈를, 생 토마토 대신 선 드라이드 토마토를, 양상추 대신 루꼴라를 넣었다. 버거를 주문하면 탄산 음료와 피클이 함께 제공된다.

구어메 버거
2층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가파른 편이라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그냥 테이크 아웃하는 편이 낫다. 가격은 8500원에서 1만2000원선. 매주 월요일은 쉬며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 저녁 8시 반에 닫는다. 문의: 02-765-1894

크레이지 셰프의 크레이지 버거 - 버거 프로젝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 지하에 자리잡은 버거 프로젝트는 스타 셰프 최현석의 버거집으로 유명하다. 크레이지 셰프로 불리는 그답게 실험적인 재료, 의외의 맛의 조화가 돋보이는 버거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쇠고기 대신 통아귀살을 패티로 쓴 버거에는 와사비 크림 소스를 곁들여 마치 스시를 먹는 것 같은 색다른 느낌이 나고, 이탈리아 국기처럼 빨강, 하양, 초록색으로 만든 고추 젤리 버거는 모양새부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전반적으로 백화점 지하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창의성과 마주하는 느낌.

메뉴는 종종 바뀌는데 가장 최근에 나온 '매콤한 토마토 소스로 맛을 낸 버거'는 토마토 소스를 살짝 맵게 끓인 뒤 그릴에 구운 야채를 잔뜩 넣고 여기에 쫄깃하게 구운 표고 버섯과 모짜렐라 치즈, 튀긴 가지를 풍성하게 올렸다. 한 번 먹으면 10시간 정도는 공복감을 잊을 정도로 푸짐하지만 양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4000원을 추가하면 2단 버거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통아귀살 버거
셰프의 버거라고 해서 실험적인 시도만 넘치는 것은 아니다. 300일 된 호주산 블랙 앵거스와 한우 알등심의 지방을 혼합해 만든 패티는 참나무 톱밥을 얹은 그릴에 구워내 불맛과 육즙이 박력 있게 살아 있다. 좁은 공간이지만 빵도 매일 직접 반죽해서 굽고, 햇감자보다 더 팍신팍신한 아이다호 감자로 ?지 포테이토도 만든다.

탄산 음료가 구비돼 있지만 추천하고 싶은 것은 알코올 프리 모히또다. 시소잎을 갈아 넣은 시소 모히또는 시원 쌉싸름한 맛으로 기름진 버거와 최고의 조화를 이룬다. 가격은 8500원부터 1만 원대까지. 백화점 개폐장 시간에 맞춰 영업을 한다. 문의: 02-3467-8430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