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지어 입어보고 전문 컨설턴트와 1:1상담 피팅룸이 '후끈'

"고개를 숙인 채로 이렇게 가슴을 쓸어 모으듯 컵에 담는 거예요."
"아… 이렇게요?"
"아뇨, 이쪽 손으로는 겨드랑이 살을 끌어 모으고 다른 한쪽으로 가슴을 힘껏 받쳐서 이렇게!"
"아, 이렇게요?"
"휴, 됐어요. 보셨죠? 없던 골이 생겨났어요."

좁은 공간. 두 여자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한 명의 가슴은 완전히 풀어헤쳐진 채, 다른 한 명은 완벽한 성장 차림이다. 둘은 초면이다. 그런데 지금 뭐 하는 중인지?

속옷을 구매하기 전에 먼저 입어보는 것은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풍경이다.

"입어보지 않고 자기에게 완전히 딱 맞는 속옷을 고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일본과 유럽에서는 브래지어는 물론이고 팬티까지 전부 입어보고 구매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어요. 한국에서는 아직 팬티까지는 무리이지만 브래지어의 경우에는 점차 입어보고 사야 할 필요성에 눈뜨고 있죠."

지금까지 란제리 쇼핑이라 하면 가판대에 수북이 쌓여 있던 브래지어를 눈짐작으로 고르거나 최악의 경우 쇼핑 나온 엄마가 딸들 몫까지 무더기로 사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딱 맞는 브래지어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해본 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피팅룸이 구비된 백화점의 비싼 속옷 매장으로 향해야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6월 19일 서울 명동에는 속옷 브랜드 에블린의 체험형 란제리 매장이 문을 열었다. 피팅룸만 3개에 란제리 전문 컨설턴트가 상주해 일대일로 상담을 해준다. 중저가 속옷 매장으로는 처음이다. 생생한 체험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잃어버린 나의 반 컵을 찾아서

"위 가슴이 없으면 컵이 떠서 옷 태가 살지 않아요."

위 가슴이라니? 가슴이 위, 아래로 나뉘어져 있던가?

"모든 여성들의 가슴이 위에서부터 풍만하지는 않아요. 가슴이 작아서 그럴 수도 있고, 처져서일 수도 있죠. 이럴 경우 브라의 컵이 가슴에서 뜨지 않도록 더욱 신경 써서 골라야 해요."

줄자를 집어 든 컨설턴트는 피팅룸으로 이동해 가슴 둘레부터 측정했다. 여기서부터 에러가 발생했다. 20년 동안 굳게 믿고 있던 사이즈가 사실과 다른 것. 유두를 지나쳐 잰 가슴둘레를 A라 치고 가슴 바로 아래를 잰 밑 가슴둘레를 B라고 치면 A에서 B를 뺀 수치가 필요한데, 줄자를 얼마나 팽팽하게 잡느냐에 따라 가슴둘레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피부색과 취향을 고려해 3종류의 브래지어를 골라 피팅룸으로 들어간다. 은밀하고도 민망한 토론의 시작이다.

"일단 입으시고 저를 불러 주세요."

내내 같이 있을 줄 알았던 컨설턴트는 피팅룸에 들어서자 커튼 뒤로 들어갔다. 그에 따르면 속옷 입혀주기 문화에 익숙지 않은 한국 여성들을 위해 3단계의 스킨십(?)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단계는 말로 설명하기. 사춘기 이후로 엄마 앞에서도 가슴을 드러내기 부끄러워하는 여자들을 위해 마치 실로 왕후의 병세를 진단한 어의처럼 커튼 뒤에 숨어 말로 지시한다.

두 번째 단계는 고객의 손을 잡고 조종하기. 보여주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으나 닿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그녀들을 위해 컨설턴트가 고객의 손을 잡고 움직여 자기 몸을 스스로 만지도록 한다. 세 번째는 직접 손을 넣어 매무새를 다듬어 주기다.

명동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반 정도는 외국인인데 그들의 90%는 들어와서 입혀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반면, 국내 고객의 경우 50% 정도만 서비스를 원한다. 그리고 그 50%의 절반은 3단계까지 허락(?)한다고. 물론 1단계, 2단계를 거친 이들은 금세 적응을 하며 답답해서라도 3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다 입었는데요."

커튼을 젖히고 나온 컨설턴트가 눈을 빛내며 매무새를 체크한다. 제일 먼저 보아야 할 것은 옆 선. 옆 선이 위로 들려 있으면 컵이 가슴에 밀착되지 않고 뜨게 되어 있다. 그 다음은 끈의 길이. 손가락 두 개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한다. 끈이 헐거울 경우 역시 컵이 뜬다. 마지막으로 비장의 겨드랑이 살 끌어 모으기. 겨드랑이 쪽 임파선 주변의 살을 가슴 쪽으로 밀어 컵 안으로 쓸어 넣어야 한다.

"그런데 살을 끌어 모은다고 해서 그게 모아진 채로 유지되나요?" "그럼요. 반지도 오래 끼고 있으면 손가락이 푹 파이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에요. 와이어를 반지라고 생각하고 그 안으로 살을 끌어 모으는 거에요. 이렇게 입는 법을 습관화하면 겨드랑이 주변의 보기 싫은 살들이 사라지고 가슴에는 볼륨감이 더해지게 되죠."

가슴을 다 드러낸 채 나누는 토론은 어느새 어색함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점점 열기를 띠기 시작해 피팅룸이 후끈 달아오른다. 수술도, 운동도 없이 가슴 사이즈가 한 단계 볼륨 업 된다는데 부끄러워할 새가 없다.

올 여름 최고의 액세서리는 클리비지

"가슴이 너무 커서 고민인 여성들에게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요?"

빈약한 가슴을 지닌 이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풍만한 여인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자기 사이즈와 맞지 않는 브래지어를 할 경우 하중으로 인해 아래로 처지거나 가슴이 눌려 4개가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 처짐을 막기 위해서는 가슴을 감싸는 형태보다는 받쳐주는 기능에 충실한 1/2컵이 좋다.

단, 너무 큰 가슴을 아래에서부터 받치면 걸을 때마다 '출렁출렁' 할 수 있는데 개인의 가치관이 이를 허용하지 못할 경우 넓게 감싸면서 안정감 있게 받쳐주는 풀컵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브래지어 선택은 체형뿐 아니라 취향이나 가치관과도 이어지기 때문에 길고 신중한 상담과정이 필수다. 신혼 여행을 앞둔 고객의 경우 색깔 선택에 있어서도 신중해진다. 하얀 피부는 블루가 들어간 색을 입으면 창백한 시체처럼 보이기 쉽고 중간 피부톤은 노란색과 함께 있으면 칙칙해 보이므로 피해야 한다.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은 옅은 파스텔 컬러를 소화하기는 어렵지만 대신 채도가 높은 오렌지나 핑크, 빨강이 아주 섹시하게 어울린다. 매장에서는 브래지어뿐 아니라 뷔스티에, 가터벨트 등 팬티를 제외한 다른 속옷들도 직접 입어보고 살 수 있다.

"이제는 속옷이 패션의 연장이 됐죠. 브라 끈이나 슬립의 레이스도 코디네이션의 일부가 됐고 특히 클리비지(cleavage: 가슴 사이의 골)는 트렌드의 중심에 있어요.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기만 해도 가슴 라인이 예뻐지는데 이런 건 단순한 다이어트나 운동으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아직도 속옷에 무신경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란제리 매장을 쇼핑 공간이 아닌 놀이터로 생각하고 그 안에서 마음껏 놀라고."

도움말: 에블린 란제리 컨설턴트 임지인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