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또 페트뤼스' vs '샤또 페트루스'이건희·정명훈이 선택한 최고급 와인, 페트뤼스 분쟁 스토리 유명세 더해

Ch. Petrus Gaia Bordeaux No.2
이건희 삼성 회장이 최근 전경련 회장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레드 와인 2가지와 화이트 와인 1가지를 내놓았다.

그 중 레드 와인 하나가 샤또 페트뤼스로 알려졌는데 엄청난 고가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지휘자 정명훈은 최근 언론 매체를 통해 자신의 와인 취향이 중간 정도라고 밝혔다. 그가 리스트에 올린 추천 와인은 샤또 페트뤼스와 로마네 콩티 등이었다.

샤또 페트뤼스(Petrus)는 당대 최고급 와인 중 하나이다. 시내 특급호텔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면 한 병에 500만~600만원 정도 나간다. 빈티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지만 와인숍에서 구입하더라도 평균 200만~300만원대를 호가한다. 어쨌든 최근 유명 인사들과 자리를 함께 한 덕분에 페트뤼스는 가뜩이나 높은 명성을 더했다.

그리고 또 하나, 올 여름 국내 와인 시장에서 페트뤼스란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이복 형제'의 등장 때문이다. 이름은 샤또 페트루스-가야. 영문으로는 Petrus-Gaia 이다. '가야'가 추가로 붙은 것 말고는 페트뤼스와 철자가 같다.

샤또 페트루스 가야 2007
와인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이라면 갖고 싶어 하거나 또 마셔 봤다면 뽐내고 싶어하는 페트뤼스. 프랑스 명품 10대 와인인 페트뤼스는 사실 지난 10년 가까이 상표권 분쟁에 시달려 왔다.

페트뤼스가 소송에 처음 휘말리기 시작한 것은 2001년께.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인 로랑 궤랑이 프랑스 보르도의 슈페리어 지역에 있는 샤또 페트루스-가야의 새 소유주가 되면서다. 그가 같은 페트뤼스 상표의 와인을 생산해 내자 이미 유명한 프랑스 뽐므롤의 페트뤼스 측에서 상표권 관련 소송을 프랑스 법원에 냈다.

사실 페트뤼스란 이름을 둘러싼 법적 분쟁 스토리는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슈페리어 지역에 샤또 페트뤼스란 이름을 가진 와이너리가 있었는데 역사가 근 800여 년이나 된다. 여러번 샤또의 주인이 바뀌어 오다 20세기 들어 2차대전 중에는 프랑스 정부가 와이너리 대신 무기 보관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전쟁 후에도 그대로 방치돼 오던 이 땅이 비로소 다시 와이너리로 돌아오게 된 것은 로랑 궤랑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샤또 페트뤼스란 이름을 잃어 버린 지 50여 년 만이다.

그러자 발끈한 것은 이미 시장에 페트뤼스란 이름으로 큰 성공을 거둔 무엑스(Moueix) 가문. 이들은 다른 와이너리가 페트뤼스 브랜드를 사용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한다. 엄청난 변호사 비용과 인맥을 동원했지만 결과는 패배. 결국 2003년 법원은 새로운 페트뤼스에 '가야'라는 별칭을 추가하는 조정안을 내고 결론을 지었다.

세계적 명성과는 달리 예상 외로 '쌍둥이 페트뤼스'가 승리한 데는 역사적 증거들이 크게 작용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건축하고 태양의 왕으로도 불리는 루이 14세의 지시로 만들어진 17세기 당시 보르도 뽐므롤의 지도에 샤또 페트뤼스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그 당시 슈페리어 지역에는 샤또 페트뤼스란 이름이 그대로 등장한다. 슈페리어 지역의 샤또 페트뤼스가 12세기부터 이미 존재했고 15세기부터는 샤또로서의 명실상부한 역사를 갖고 있었다는 얘기.

여기서 드러나는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세계적 명성의 샤또 페트뤼스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와이너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1960년대까지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샤또 페트뤼스는 1980년대부터 미국 상류층을 중심으로 지명도가 급상승했다. 80년대 국내에서도 몇몇 와인 애호가들은 불과 20만~30만원 대에 이 와인을 구입해 마셔봤다고 증언한다.

어쨌든 무엑스 가문은 2006년 2차 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 역시 패배. 1930년대 보르도 슈페리어 지역의 샤또 페트뤼스에서 생산한 Chateau Petrus라고 인쇄된 라벨의 와인이 증거 자료로 제출된 때문이다. 2009년 말 뽐므롤의 페트뤼스 변호팀은 결국 휴정을 요청한다.

페트뤼스 분쟁은 프랑스 언론에서도 큰 화제다. 2010년 6월 10일자 포도주 잡지 라레뷰뒤뱅드프랑스(LA REVUE DU VIN DE FRANCE)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아… 이 작은 보르도 슈페리어 지역의 와이너리가 이제 자신의 고유 이름인 PETRUS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0여 년간의 힘든 싸움을 뒤로 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 이름 PETRUS…"

그리고 지금 시장에 나온 것이 샤토 페트루스-가야 와인이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6년 동안 생산한 와인들을 시장에 내놓지 못해 오다 2007년 산부터 비로소 판매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유명 양조 컨설턴트 드롱크르 스테판과 함께 고급 품질의 와인을 만드려는 노력은 계속돼 왔다.

샤또 페트루스 가야는 파리의 최고급 호텔 조르지 생크에 들어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다만 프랑스에서는 철자가 똑같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구형은 페트뤼스, 신형은 페트루스라고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샤또 페트루스 가야는 샤또 페트뤼스보다는 값이 싸다. 프리미엄급이 35만원, 세컨드 와인인 샤또 페트루스 가야 넘버투(No.2)는 17만원 대. 법원의 권고로 붙여진 이름 '가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 신을 의미하며 땅의 풍요를 상징한다.

아쉬운 점은 이 와인 역시 생산량이 그리 넉넉치 않다는 점이다. 한 해 불과 2만 2000병. 국내에도 겨우 2007빈티지 5케이스(60병)만이 할당돼 수입돼 있다. 이마저도 유명세를 타고 매진 상태이고 서울 강남의 몇몇 백화점에만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라고 한다. 2008년산 세컨드 와인 수입량도 30케이스(360병)에 불과하다.

그래서 요즘 어떤 사람들은 와인바에서 이렇게 주문한다. ''샤또 페트뤼스 주세요. 페트루스 가야로요."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레드와인 테이스팅 결과 페트뤼스 특유의 '멜로' 품종이 내는 부드러움이 특징적이다. 맛도 맛이지만 우선 향이 일품이라는 촌평도 곁들여진다.

페트뤼스와 페트루스 간 블라인드 테이스팅이 벌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누가 그 비싼 페트뤼스를 내놓겠냐는 것이 문제이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