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rtorialist전 세계 스트리트 패션 담은 <사토리얼리스트> 한국어판 발간

"뉴욕의 한 행사장에서 을 만난 적이 있다. 아는 척 하고 싶었지만 숨을 죽이고 그가 누구를 찍는지 지켜 보았다. 뉴욕의 모든 '핫'한 사람들이 다 모인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끝날 때까지 그는 누구도 찍지 않았다. 사람들이 빠져나갈 즈음 그가 한 흑인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셔츠와 두르고 있는 스카프가 아주 화려하긴 했지만 왜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 그 남자여야만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사토리얼리스트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나서야 왜 그를 택했는지 이해가 갔다. 은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감각이 남다른 사람이다. 같은 인물을 찍더라도 그는 멋쟁이들에게 내재된 감각을 사진으로 이끌어낼 줄 안다." - 패션 저널리스트 홍석우

스타일에는 정답이 있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를 괴롭힌다. 어떤 패션 리더의 속편한 말처럼 자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모에족의 뽀뚜루를 들어 상대적 미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라면 집어 치워라.

귀납적 사고의 남발은 어떤 의미 있는 견해도 갖지 못하게 만든다. 발전의 정도가 비슷한 동시대 문명을 사는 사람들 중 "와! 정말 멋진데"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이들은 정해져 있다.

스타일에 답이 있다는 걸 전제하고 나면 의 사진은 정답이다. 뉴욕, 밀라노, 파리, 피렌체, 스톡홀름 등 트렌디한 도시를 누비면서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패션을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지 5년 만에 그는 사진 블로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을 들으며 타임지 선정 '디자인 부문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그의 블로그 '사토리얼리스트(The Sartorialist)'는 2년 연속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블로그'에서 1위를 차지했고(style 99 선정),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추려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사토리얼리스트>는 지난해 출간 즉시 미국 아마존 닷컴 패션 부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지난 6월 이 책의 한국어판이 발간됐다.

이 그간 찍은 스냅샷 중 가장 아끼는 사진에 짤막한 칼럼이 곁들여진 이 포토 에세이 북이 특히 좋은 점은 그가 이래라 저래라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세 티셔츠에 아르마니 재킷을 입고 대신 여기에 근육질 팔뚝은 필수라든지, 화이트 셔츠는 두 번째 단추의 위치가 중요하다느니 하는 말로 꼬장꼬장하게 구는 대신 사진을 찍으면서 겪은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혼잣말 하듯이 풀어 놓는다.

그의 말은 대부분 '하우 투(how to)'가 아닌 '하우 뷰티풀(how beautiful)'에 대한 것이다. 심지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차림새를 감상하는 동안에 몸매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무책임하게 읊조린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떤 말보다 강력한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옷과 액세서리뿐 아니라 표정, 자세, 의도, 삶의 태도 등을 통해 무엇이 스타일을 결정짓는지 온 몸으로 강변하고 있다. 그 중에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도, 정신 없이 주렁주렁 매단 맥시멀리스트도 있으며 단정하면서 섹시한 프렌치 시크와 호보 시크(hobo chic: 노숙자 풍의 패션)의 수호자도 있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어떻게 옷을 입을까'에 대한 답을 얻기보다는 스타일을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패션이 개인에 대해 어디까지 설명해줄 수 있는지(또는 어디까지 올려 놓을 수 있는지), 내 삶에 패션을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둘 것인지, 좀 더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한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자답할 수 있다. 슈먼은 일부러 브랜드나 옷을 구입한 매장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자제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옷을 입고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시몬이라는 이름의 이 신사에게서는 뭔가 불길한 섹시함 같은 게 느껴진다. 그는 사고를 칠 정도로 매력적인 미소의 소유자다. 이 일을 한참 하다가 든 생각은 사람들이 무엇을 입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보다 한 차원 넘어선 질문에 중점을 두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저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시몬은 아주 훌륭한 이유를 말해준다. 그건 양복의 맵시와 더불어 남성적인 걸음걸이였다. 때로는 디자이너 브랜드보다 어떤 몸짓이나 서 있는 자세에서 부러울 정도의 고급스러움이 배어 나온다."

그가 이래저래 참견하지 않는다고 해서 스타일에 대한 조언에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그는 착장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사진에 맡겨 놓고 대신 인물을 보고 대화하면서 느낀 차밍 포인트에 대해 기술한다. 그것은 시몬이라는 신사의 경우처럼 표정과 걸음걸이일 때도 있고, 마음가짐일 때도 있으며, 때로는 세상을 대하는 개인의 방식일 때도 있다.

슈먼은 스톡홀름에서 단순하면서 세련된 색감의 코트를 입은 청년을 만나 질 샌더인지 프라다인지 물었다가 벼룩시장에서 5달러를 주고 산 의사 가운이라는 대답을 들은 일화를 소개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이 코트를 입고 그렇게 멋질 수 있었던 이유는 코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의 느긋함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그 가운을 입었다면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훔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에게 깨달음을 준 스톡홀름 청년의 사진을 보며 우리 역시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릴 것이다. 역시 자신감이 최고라든지, 그래도 키가 작으면 다 소용 없다 라든지, 아니면 스톡홀름은 물이 좋다 등 뭐든지 상관 없다. 21세기의 한국을 사는 이들이 자기만의 동기를 가지고 패션을 소비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사토리얼리스트>는 그 역할을 다한 셈이다.
사진 출처: <사토리얼리스트>, 도서출판 윌북


패션계에서 15년간 종사하면서 패션쇼나 잡지에 나오는 옷과 실제 사람들이 입는 옷 사이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끼고 사토리얼리스트(thesartorialist.com)를 시작했다.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한 슈먼은 <보그>, , <판타스틱 맨>, <엘르> 등 세계적인 잡지에 사진을 싣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뉴욕 사진 갤러리인 단지거 프로젝트에서 전시되었고, 2008년 가을 갭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선정되어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스콧 슈먼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