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연문화 마케팅… 항공사, 주류, 레이싱서 잇달아

'희대의 호색가였던 돈 지오반니는 도시 곳곳에서 여인들을 유혹하다가 결국 그녀들의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마을사람들에 쫓기게 되는데…' '동화 같은 마을 로텐부르크를 점령했던 틸리 장군이 와인 3.25리터를 단숨에 마시면 마을을 살려주겠다고 하자 누쉬 시장은...'

올 여름 휴가 시즌 TV, 지면 등에 자주 모습을 비친 대한항공의 '동유럽 귀를 기울이면'이라는 광고 문안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한 그 이야기들의 다음은? 한 동안 얘기가 없다.

대한항공은 호기심과 궁금증을 한껏 증폭시킨 이들 티징(Teasing) 광고의 후속 이야기들을 최근 공개했다. 그러나 광고를 통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다. 최근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플로팅 스테이지에서 열린 '클래식과 함께 하는 동유럽 여행' 콘서트가 그것이다.

'음악으로도 말한다.' 고객에게 얘기하고 싶은 내용을 광고와 콘서트 등을 통해 음악으로 전하려는 시도가 최근 활발하다. 항공사만이 아닌, 주류, 레이싱 등 여러 장르에서도 '스토리'가 있는 콘서트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체코 프라하‐스타보브스케극장, 카를교-교정, 체코 사운드 투어, 오늘은 프라하의 스타보브스케 극장과 카를교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1783년, 네오 클래식 양식으로 지어진 스타보브스케 극장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가 초연된 곳으로 유명한데요, 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희대의 호색가였던 돈 지오반니는 도시 곳곳에서 여인들을 유혹하다가 그녀들의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마을사람들에게 쫓겨 묘지로 달아나게 됩니다. 그때 묘지에서 만난 석상이 그에게 천벌을 내리고, 결국 돈지오반니는 지옥에 떨어지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게 되지요."

"프라하에서는 <돈 지오반니>를 인형극으로도 만날 수 있는데, 이렇게 체코에서 인형극이 발달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오스트리아 지배 하에서 독일어만을 쓰도록 강요받았던 시기에, 인형극에서만은 체코어를 쓸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체코 사람들은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인형극을 발전시킨 것이죠."

'서울의 여름 밤을 장식한 동유럽의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라는 타이틀로 마련된 대한항공의 콘서트에서 수 천명의 관람객들은 베토벤 에그먼트 '서곡',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 드보르작 '유모레스크' 등 동유럽의 아름다운 선율을 2시간 여 동안 감상했다. 연주된 곡들은 일반 선곡이 아닌 모두 지난 여름 한 시즌 광고에 등장했던 지역과 테마의 음악들이다. 헝가리, 독일, 체코 등 동유럽 각국의 역사와 지역을 표현하는 음악으로 짜여졌다.

대한항공이 동유럽 클래식 공연을 선보인 취지는 고객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동유럽 명소의 숨겨진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전달하는 CF '동유럽, 귀를 기울이면…'과 연계해 고객들에게 문화 체험의 장을 마련해 준다는 뜻도 담겨 있다.

연주회와 함께 동유럽 국가별 전시존ㆍ포토존ㆍ사운드 투어존 등을 마련해 운영한 것 또한 동유럽 스토리 광고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공연 및 전시라는 형식을 빌어 지난 광고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완성해 전달한 것이다.

페르노리카 코리아가 '자칭타칭 No. 1 울트라 프리미엄' 스카치 위스키 발렌타인의 뉴패키지 출시를 기념해 9월초 여의도 한강공원 플로팅 스테이지에서 '발렌타인 타임리스 클래식 콘서트'를 펼치는 것도 우선 스토리를 테마로 한다.

이 콘서트는 발렌타인의 의미 있는 패키지 변화를 기념함과 동시에 200여 년을 이어온 오랜 역사 속에서 최고의 프리미엄 스카치 위스키의 변치 않는 품격을 지켜온 발렌타인의 가치를 소비자들과 공유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발렌타인을 주제로 국내에서 공연이나 콘서트가 열리는 것은 유례가 없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온 발렌타인의 가치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해석한다는 새로운 문화마케팅 시도의 일환이다.

페르노리카 코리아는 9월 2일, 한강을 배경으로 화려한 미디어 아트쇼, 20인조 빅밴드 Jazz park의 공연, 그리고 재즈 싱어 남예지의 무대 등을 펼친다. 특히 쉽게 접할 수 없는 대형 워터스크린을 사용한 미디어 아트는 웅장한 스케일과 환상적인 영상으로 발렌타인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표현한다.

페르노리카 코리아 프랭크 라뻬르 사장은 "이번에 선보인 발렌타인 뉴패키지는 오랜 역사를 이어온 정통 스카치 위스키 발렌타인이 17, 21, 30년 전 제품에 대하여 보다 세련되고 품격 있는 패키지로 변화한 것"이라며 "이번 콘서트는 발렌타인의 변치 않는 품격과 가치를 한국 소비자들과 함께 공유하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올 가을 한국 땅에서 사상 최초로 펼쳐지는 레이싱의 향연 '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FORMULA 1 KOREAN GRAND PRIX)'의 화려한 무대도 우선 음악으로 포문을 연다. 경기장이 될 전남 영암의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orea International Circuit, KIC)에서 대회 개최 D-50일을 기념하는 콘서트다.

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 대회운영법인 KAVO(Korea Auto Valley Operation, 대표 정영조)가 주최하고 엠넷미디어가 주관하는 이번 M슈퍼콘서트는 9월 4일 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 대회 개최 D-50일을 맞아 마련됐다. 정식 개장에 앞서 경기장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도록 9월 4, 5일 양일간 치러질 '서킷런 2010(Circuit RUN 2010)' 행사의 일환이다. 페라리,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등 호화 슈퍼카 50여 대가 한데 모여 모터쇼를 방불케 하는 스케일을 자랑하는 슈퍼카 전시회도 함께 마련된다.

KAVO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의 공식 개장에 앞서 서킷의 위용을 국민들에게 선보이고, 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 대회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콘서트를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가 국민적인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대회 전 다양한 공연 행사를 갖겠다"고 말했다.

광고와 홍보, 음악 공연이 어우러진 문화 마케팅은 인터넷으로까지 이어진다. 대한항공은 홈페이지를 통해 미처 광고에서 못다 한 스토리의 후반부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덧붙여 음악까지 들려 준다. 물론 해당 여행 지역의 스토리와 연관된 음악들로 광고의 배경음악으로도 잠깐씩 사용됐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사운드 투어', 소리로 여행의 스토리를 전달한다는 의미다.

"할슈타트라는 마을 이름에서 '할'은 고대 켈트어로 '소금'이란 뜻인데요, 이는 기원전 2000년경 형성된 세계 최초의 소금광산이 있는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빙하시대 이전에 침수된 지반이 해수면이 상승되면서 산골짜기까지 올라오게 되었고, 그 후 시간이 흘러 바닷물이 모두 빠져 나가거나 증발해서, 땅속, 동굴, 골짜기 같은 곳까지 소금이 스며들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다흐슈타인산에 오르면 가장 오래된 소금광산과 얼음동굴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의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진주'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너무나 물이 깨끗해서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 보인다. 맑고 투명한 호수가 많은 잘츠카머구트는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슈베르트의 '송어'가 태어난 장소적 배경이다.

"스물 두 살의 청년 슈베르트는, 어느 여름날 친구들과 함께 이 지역으로 연주여행을 오게 됩니다. 그리고 호숫가를 산책하던 중 한 낚시꾼을 보게 되지요. 물이 너무 맑아 송어가 잡히지 않자, 일부러 물을 흐려놓은 낚시꾼! 그리고 그런 낚시꾼의 속임수에 걸려든 가여운 송어! 순수한 마음의 슈베르트는 낚시꾼의 교묘한 꾀에 걸려 잡혀가는 송어를 바라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이 곡을 지었다고 합니다."

콘서트 연주에서 들려준 슈베르트의 '송어'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간단한 클릭만으로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강릉 및 청주시청, 인천공항공사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9~10월 강릉, 인천, 청주에서 '클래식과 함께 하는 동유럽 여행'콘서트를 가질 계획이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