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정선 단임골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은 그때까지만 해도 마지막 남은 청정 하천 가운데 하나로,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디맑은 물을 자랑했다. 너비가 좀 넓다뿐이지 깊은 산중 계곡이나 다름없었고 막동폭포, 장전계곡 등의 비경도 품었다.
그러다가 오대천 맑은 물은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먼지 폴폴 날리는 흙과 자갈을 아스팔트가 덮으면서부터다. 도로가 포장되자 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방도 405호선은 국가지원지방도 33호선으로 승격되었고 곧 이어 국도 59호선으로 다시 격상되었다. 길도 사람처럼 지위가 높아질수록 초심을 잃고 탁한 세파의 유혹에 휩쓸리기 쉬운 것인가.
이 길 따라 흐르던 오대천은 관광객들의 사랑의 대가로 순수성을 내놓아야 했다. 한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며, 물고기들의 산란탑은 래프팅 보트 아래 무참하게 허물어졌다. 그러나 '오대천 비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수중 생태계는 아랑곳없었다.
오대천으로 흘러들어가는 30리 심산유곡
이곳은 본디 가을 단풍 숲이 고와 단림골(丹林谷)이라고 했다가 발음하기 어려워 단임골로 바뀌었다. 때로는 듬성듬성 놓인 바위 사이로, 때로는 골짜기를 꽉 메운 집채만한 바윗덩어리 사이로, 하늘빛을 받아 더없이 푸른 물이 이리저리 굽이돌아 돌돌 흐르는 계곡이 있어, 단임골 가는 길은 언제나 정겹다.
단임골은 고깔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지형에 들어앉은 골짜기다. 1200~1300미터급 준봉들이 빙 돌아 둘러치고 있다. 그 높은 봉우리들이 박지산(1394미터)을 빼고는 마땅한 이름조차 갖지 못한 것은 이곳이 얼마나 소외된 오지인지를 반증한다.
단임골은 무명의 1341미터 봉우리 남쪽 기슭에서 발원해 30리 가까이 흘러내리다가 큰터에서 오대천과 인사를 나누는 심산유곡이다. 그 중간에 장재터와 우동골에서 내려온 계류를 받아들이면서 계곡의 아름다움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근래 들어 피서객들이 종종 찾아들지만 민박집들이 있는 하류 쪽에서나 외지인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하룻밤 신세졌던 안단임의 마지막 민가
단임골은 건강을 회복하기에 그만인 곳이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숲 좋으니 병을 앓을 일이 없다. 그래서 어느 귀순 용사는 전국을 샅샅이 뒤진 끝에 이 마을에 정착하기도 했다. 바깥단임, 우동골, 장재터, 안단임 등으로 이루어진 단임골에는 한때 60여 가구가 모여 살았으나 하나하나 도회지로 떠나 이제는 10여 가구가 남았을 뿐이다.
바깥단임에서 약 2.7킬로미터. 계곡 위로 걸린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안단임의 마지막 민가가 나타난다. 약 20년 전 몇몇 지인과 함께 찾았을 때 그 집에는 김완택 씨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족은 그 후 저 아래 숙암 마을로 내려갔고 이제는 다른 사람이 벌을 치며 살고 있다.
그와의 만남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캄캄한 밤이었다. 밤하늘에는 여백 하나 없이 별이 촘촘히 박혀 있었고 은하수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서울 하늘엔 별이 없다'는 말을 그들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밤하늘에 이토록 별이 많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부엌의 둥근 나무 탁자에 저녁 밥상이 차려졌다. 당시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과 손전등으로 불을 밝히고 허기진 배를 채우던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부엌 한쪽에서 황소가 이방인들을 멀뚱멀뚱 바라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황소의 굵은 눈빛을 뒤통수로 받으며 쑥스럽게 식사하던 우리는 붉은 머루술이 목구멍을 따스하게 적시자 그깟 시선 따위는 곧 잊었다. 집주인이 손수 담근 달콤하고 진한 머루술은 피로에 지친 심신을 녹이고도 남았다. 술에 약한 순서로 하나하나 곯아떨어졌으나 우리 모두는 이튿날 새벽안개 속에서 벌떡 일어나 산뜻한 새아침을 맞았다.
찾아가는 길
진부 나들목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정선 방면 59번 국도를 따라간다. 27km 남짓한 지점에서 왼쪽 숙암교를 건넌 다음 좌회전, 10.8km 가량 가면 안단임이다. 대중교통은 진부나 정선에서 버스를 타고 숙암리에서 내려 3시간쯤 걷는다. 맛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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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