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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 전 백제혼 살아나다

[테마여행] 부여 사비궁과 능사
백제문화단지 개관, 백제 왕궁·사찰, 박물관 등 선보여
  • 5층목탑의 위용
부여는 유난히 가을 정취와 딱 맞아떨어지는 여행지다. 고대왕국 백제 패망의 역사가 깃든 곳이어서인지 백마강 흐르는 물줄기를 타고 실타래 풀어지듯 너울대는 아릿한 전설을 호젓이 즐기 수 있었다. 그러나 올 가을의 부여는 다르다.

흔적조차 없던 고대궁궐을 짓고, 백제 불교문화의 백미인 능사의 목조탑을 세웠으며,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춘 리조트까지 마련하고 세계를 향해 백제의 부활을 선언하는 축제를 펼친다.

해서 다른 이들보다 한걸음 먼저 예전과 달라진 부여, 백제의 영광을 재현 복원한 백제문화단지에 자리한 사비궁과 능사를 돌아보기로 했다.

재현 복원된 사비궁과 능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합정리 일원에 조성된 백제문화단지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1993년부터 구상이 시작되어, 1998년에 착공을 하고 올해 9월 17일 완공과 동시에 일반인에게 개방을 하게 되니 공사기간만 12년이나 걸린 대역사의 산물이다.

하기에 1000년 만에 다시 살아난 백제의 궁궐을 사부작사부작 거닐며 올올이 촘촘히 담겨 있는 고대궁궐의 신비함과 능사의 휘황한 아름다움을 보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벗삼아 특별한 궁궐 나들이를 시작했다.

  •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
국내 최초로 고대궁궐이 복원되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찾아간 날,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 아래 사비궁과의 첫 대면은 긴 담장을 거느린 정양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양문은 문루가 설치된 2층 구조이고 사비궁과 능사의 출입문으로서 장대한 규모가 적이 놀랍고, 간결한, 그러나 조금은 낯선 느낌을 지닌 지붕을 이고 있는 모습은 그동안 보아 온 조선시대의 궁궐과는 차이가 있음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정양문 안에 들어서니 사비궁 전경과 햇살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휘황한 능사 5층목탑의 황금빛 상륜부가 오롯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그 사이로 며칠 남지 않은 대백제전 개막식에 맞추느라 막바지 바쁜 손길을 움직이는 인부들은 흙을 고르고 전돌을 정리하는 자신들의 역할에 담담히 몰입하고 있었다.

정양문의 그늘 아래서 잠잠히 천정전을 바라본다. 용마루에 치미를 올린 채 왕궁으로서의 위용을 드높이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천정전은 일자로 이어진 회랑으로 둘러싸인 사비궁의 중심 건물인데, 동쪽의 문사전, 서쪽의 무덕전을 비롯해 좌우로 14개의 동을 거느린 채 외국 사신 접견이나 신년하례식, 국가나 왕실의 공식적인 행사를 치루는, 의전행사에 사용된 상징적인 공간으로서 외관부터 남다른 위엄이 서려있다.

"사비궁과 능사의 모든 건축물은 수많은 고증과 자문을 거쳤습니다. 그중에서도 칠장, 번와장, 각반장, 단청장등 6명 명장의 손길과 현존하는 최고의 서예가가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기와 한 장, 전돌 하나, 글씨 한자, 문양과 무늬 등을 그동안 발굴된 고분벽화와 유적 유물을 기초로 고증 과정과 자문을 통해 재현했고, 단청과 칠 등은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밟고 가기엔 너무도 아름다운, 연꽃무늬와 용문양 전돌이 마치 땅을 수를 놓듯 연결되어 있는 어도를 걷는 영광을 누렸다.

육중한 천정전의 문을 밀고 들어서니 한껏 고개를 젖혀 올려다봐야 하는 높디높은 천정엔 안내자의 설명을 증명하는 백제시대의 고유한 문양으로 장식한 단청이 마치 비단 위에 만개한 꽃잎들을 흩뿌려 놓은 듯 화사하고 화려하게 채색되어 넋을 놓게 하더니 하염없이 감탄사만 터뜨리게 했다. 그렇다. 천정전은 건물의 위용만이 아니라 내부의 채색까지도 세심한 손길로 다듬어 낸 명품다운 품격과 왕의 위엄을 드높이는 고아함이 서려 있었다. 불쑥, 유홍준 박사의 백제 미술품에 대한 일갈이 귓전을 때린다. "모든 명품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감동을 준다!"

  • 사비궁 전경
왕의 공간인 천정전의 감동을 품고서 아름드리 소나무 둥치로 기둥을 세운 회랑을 따라 능사로 걸음을 뗐다. 능사는 유구가 발굴된 부여읍 '능산리사지'를 줄여 부르는 이름으로 능침사찰이었던 능사가 유명해진 이유는 바로 유명한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와 국보 288호 창왕명석조사리감이 발굴된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사비궁 옆의 능사는 원래의 자리에서 10km 정도를 이동해 현존하는 초석을 근거로 백제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일본의 법륭사를 모델 삼아 대목장 최기영님이 5층목탑을 재현 복원했다. 능사 5층목탑은 내외부 할 것 없이 눈부시게 화려한 단청부터 높이가 38m에 달한다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규모로 탑만으로도 당시 성성했던 백제불교 문화의 영광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목조탑은 석탑과 달리 실내로 출입이 가능하고 그만큼 볼거리도 많다. 통나무 세 개를 5층까지 연결한 심주목을 보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건만 대백제전 개막에 맞춰 삼존불을 모시고 점안식을 한다고 하니 탑의 크기와 위용은 보지 않고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터다. 그러나 사비궁과 능사를 돌아보며 담았던 뿌둣함의 이유는 달리 있었다.

바로 재현, 복원 된 천정전과 5층목탑이 백제의 유적 유물이 그러하듯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백제 철학이 깃든, 백제의 문화유산임을 스스로 천명하듯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이치를 올곧이 지켰다는 것이다.

사라졌던 궁궐, 흔적조차 남지 않은 목조탑과 사찰을 천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재현 복원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품은 사비궁 능사 관람은 문화재의 계승, 발전, 보존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여행은 준비한 만큼 즐길 수 있다고. 그중에서도 호기심과 상상을 자극하는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찾는 여행은 사전에 학습과 준비를 한 방문자만이 오롯이 제 몫을 찾는, 진정 아는 만큼 얻을 수 있는 여행이다.

  • 능사
하기에 올 가을 백제의 고도 부여를 방문 여행을 계획 했다면 한류의 본류로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지녔던 잃어버린 왕국, 백제의 역사에 대해 한번쯤 눈동냥,귀동냥이라도 하고 나서자. 그리고 이왕지사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행지가 있다면 그곳으로 성큼 발길을 돌려보자. 더욱 값진 가을여행이 되리라.

  • 사비궁 정문인 정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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