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U의 "건강은 선택이다"

제가 이 난을 통해 '은퇴자의 남은 선택은 자살?'이라는 글을 쓴 것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일에서의 은퇴는 특히 남자들의 삶에서는 커다란 위기로서, 적절히 대비해 놓지 않으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취지이었지요.

한편, 일을 하고 있는 여자들의 직장에서의 은퇴는 남자들만큼의 위기를 초래하지는 않습니다.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모든 여성이 겪는 진정한 의미의 은퇴는 따로 있습니다. 이 여자의 은퇴는 남자의 사회적 은퇴와 같은 심각성을 가지는 바로 그런 은퇴이지요.

대부분 한국 남자들의 자아실현은 일과 사회적 성취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한국 여자들의 자아실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자녀양육과 가족관리입니다.

자녀를 낳고 키우고, 좋은 대학에 보내 훌륭한 직장을 갖게 하고, 결혼을 시켜 다시 다음 세대를 이루게 하는 것이지요. 또한 남편의 사회적 성취를 돕고 일가의 화목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자아실현의 하나입니다. 이런 역할에서의 은퇴가 바로 여자의 진짜 은퇴라는 것이지요.

사실 과거의 대가족 시대에는 여자에게 은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자녀 양육이 손자와 손녀로 이어지고, 대가족 관리는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평생의 일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한국사회의 최근 핵가족화 경향이 바로 여자의 은퇴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사회적 은퇴가 60세 전후라면, 여자의 은퇴는 자녀가 다 출가를 하는 시기인 50세 전후가 되지요. 여자의 이 은퇴 시기는 몸에 일어나는 폐경기와도 맞물려 있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여자들을 보면 건강상태가 대체로 나쁩니다. 자녀양육과 가족관리에 헌신하느라 자신의 몸을 돌볼 여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지요. 체중은 인생 중 최고조에 달해 고혈압, 당뇨, 콜레스테롤의 만성질환과 관절염 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또한 '아파 죽겠는데 안 죽는 병'인 신체기능의 병도 이 시기에 더 많이 발생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 정립해야 하는 요구입니다. 자녀들의 관리를 계속하고 싶지만, 이미 핵가족화된 자녀들은 이를 반기지를 않지요. 그래서 다시 남편을 찾지만, 남편은 사회적으로 최고점에 올라 일에 여념이 없어 정작 자신의 자리가 그리 크지 않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빈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되는 것이지요.

대비하지 않은 여자의 은퇴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질병으로의 회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녀, 남편과의 갈등이지요. 자식과 남편에 대한 실망은 질병과 고통을 가중시키고, 그러면 주로 하는 일이 병을 생각하고, 병원을 찾아 다니고, 검사받고 약을 먹는 일로 삶이 대체되는 것이 질병으로의 회피입니다.

삶과 병이 한 덩어리가 되어 악순환을 하는 것이지요. 더 심해지면 질병이 관계에 이용되어, 자식과 남편의 관심을 되찾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자녀와의 갈등은 고부관계에서 주로 나타나고,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는 점점 더 관계가 나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여자의 은퇴를 슬기롭고 행복하게 넘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첫째는 부부관계를 더 돈독히 하면서 부부가 함께 하는 활동을 늘리는 것이지요. 둘째는 딸 또는 친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거나, 교회 등의 공동체 생활에 더 헌신하는 것입니다. 봉사활동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지요.

셋째는 자녀와 남편이 아닌 자신만의 자아실현을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잠재해 있던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가는 것이지요. 사실, 여자는 은퇴 이후에도 거의 이미 산 만큼 더 살게 되기 때문에, 진짜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남자의 은퇴가 가족의 도움을 필요로 하듯이, 여자의 은퇴도 가족이 관심을 갖고 도울 때 본인과 가족 모두 더 행복하게 됩니다.



유태우 신건강인 센터 원장 tyoo@unh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