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주방] (13) 체코굴라쉬, 콜레뇨, 정통 체코 맥주 만드는 캐슬 프라하

족발요리 '콜레뇨'
쇠고기 안심을 망치로 두드려 편다. 그 속에 큼직한 수제 소시지를 넣고 치즈와 피클, 그리고 윤기가 잘잘 흐르는 베이컨을 넣어 김밥처럼 돌돌 만다.

고기 속의 고기, 고기 위의 고기. 체코 음식은 육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구멍에 꽉 찬 육류를 내려보내는 것은 맥아 향이 100% 살아 있는 맥주 한 잔. 유럽의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 매혹적인 나라의 식탁은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바다에 접해 있지 않은 체코에서 신선 식품은 사치다. 철마다 새록새록 자라는 아삭한 야채 대신 체코의 주방은 묵지근한 육류와 푹 절인 저장 식품, 그리고 진한 맥주가 지배한다. 해산물 역시 진귀하다.

민물 고기를 양식해 먹는 것이 해산물 섭취의 전부로,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거의 모든 가정에서 잉어를 잡아 스프와 튀김을 만들어 먹는다. 때문에 성탄절 며칠 전에는 본의 아니게 시장의 한 구석이 피로 물든다.

한국 맥주는 싱겁다? 물보다 맥주가 익숙한 나라

클라쉬
한국에서 체코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다. 체코뿐 아니라 동유럽 음식 자체가 흔치 않은 편이다. 그러나 국내 최초로 체코라는 나라에 집중한 캐슬 프라하에서는 이 먼 나라의 주방을 조금이나 엿볼 수 있다. 2003년 강남역에 오픈한 캐슬 프라하는 처음엔 세계 최고의 맥주 대국인 체코의 맥주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취지에서 맥주에 주력해 왔다.

맥아, 홉, 효모 일체를 체코에서 수입하고 식당 지하에 대형 맥주 양조장을 만들어 브루 마스터(맥주 제조의 전 공정을 관리하는 양조 전문가)가 관리하게 해 오리지널 체코 맥주를 만들어 낸 것.

그러다가 최근 음식 부문을 보강하면서 다양한 체코 메뉴를 맛볼 수 있는 보헤미안 비스트로로 발전했다. 현재 캐슬 프라하에서 선보이는 체코 음식은 6~7종. 고객들의 반응을 살피며 호응을 얻은 것들만으로 추려 현재의 메뉴를 완성했다.

"지점마다 조금씩 음식이 달라요. 홍대앞은 정통 체코 맥주를 마시러 오는 젊은 친구들이 많으니 안주로 먹을 수 있는 소시지 같은 음식이 인기죠. 항상 다이어트를 걱정하는 날씬한 여자들이 다니는 가로수길에서는 육류 중심의 무거운 체코 음식을 부담스러워 해 조리법을 살짝 조정합니다. 반대로 이태원은 외국인도 많고 덩치가 큰 사람도 많아 체코 음식에 활짝 열려 있어요. 정통성으로 따지면 이태원의 음식이 가장 현지에 가깝습니다."

체코 음식은 고기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을 것 같지만 의외로 사소한 부분에서 어긋난다. 사라진 메뉴 중 하나인 우또벤찌를 예로 들면 맥주와 식초에 절인 차가운 소시지 요리인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시지를 기대한 한국인들의 입에는 너무 차고 시큼하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캐슬,프라하에서 제조한 정통 체코 맥주
선별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메뉴 중 최고 인기를 누리는 것은 단연 콜레뇨다. 독일식 돼지 족발로 학센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요리는 돼지 족에 갖은 양념을 해 오랫동안 삶아낸 것. 장충동식 족발과 모양도 냄새도 비슷하지만 껍질의 바삭함에서 차이가 난다.

"만드는 데 3일 정도 걸립니다. 소금과 허브, 각종 채소, 그리고 체코 맥주를 넣은 물에 이틀 정도 담가 연하게 만들었다가 3일째 되는 날 건져서 2시간 가량 푹 삶아냅니다. 그리고 다시 1시간 정도 오븐에 바삭하게 구워내면 완성이죠."

거대한 돼지 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박력이 느껴져 조리장인 이상복 셰프는 가능한 그대로 내려고 하지만 썰어 낸 족발에 익숙한 손님들이 자꾸 잘라달라고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그에 따르면 큼직한 돼지족을 일단 눈으로 즐기고 과자처럼 바삭거리는 겉껍질을 벗겨 낸 후 그 아래 촉촉한 살점과 풍부한 비계를 칼로 썰어 먹는 것이 콜레뇨를 제대로 맛보는 법이다.

쇠고기 스튜인 굴라쉬도 장소 불문하고 인기가 좋다. 굴라쉬는 체코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 전반에서 즐겨 먹는데, 헝가리 굴라쉬가 파프리카 가루 등을 더해 매콤한 맛을 낸다면 체코 굴라쉬의 특징은 양념을 많이 하지 않고 오직 고기만으로 진한 맛을 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8일 내내 끓여 만든 브라운 스톡에 이틀 간 절인 고기를 넣고 2시간 동안 끓인다. 완성된 굴라쉬의 고기는 포크로 슬쩍 누르는 것만으로도 으스러질 정도로 부드럽다.

"현지식 그대로 한다면 채소조차 빼는 것이 맞아요. 하지만 채소 없이 고기를 먹지 않는 한국인들의 특성상 일부 채소를 첨가합니다. 이태원 점에서는 좀더 무겁고 진한 굴라쉬를 먹을 수 있습니다."

보헤미안 스터프트 미트로프와 크네들릭
3일 내내 만드는 체코 족발, 콜레뇨

본격적인 육의 향연을 즐기려면 비프 롤업을 시키는 것이 좋다. 고기 속에 소시지, 베이컨, 계란, 피클 등을 두둑이 넣어 말은 비프 롤업은 육질의 씹는 맛과 무거움이 제대로 살아 있어 저절로 맥주를 부른다. 여기에 절인 양배추인 사우어크라우트와 크네들릭이라는 빵이 곁들여지는데 크네들릭은 밀가루 반죽에 으깬 감자를 넣어 쪄낸 빵으로 체코인들의 주식이다.

육의 잔치가 부담스러운 초보자에게는 보헤미안 스터프트 미트로프가 제격이다. 다진 고기에 시금치와 치즈를 넣어 롤처럼 말고 그 위에 과일 소스를 뿌린 음식으로, 비교적 씹기가 편하고 고기 맛 외에도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 입에 잘 맞는다.

이 모든 요리에는 캐러웨이라는 향신료가 들어간다. 코리앤더나 커민 이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대단히 향이 강한 허브로, 메인 디시는 물론이고 사우어크라우트, 크네들릭 등 사이드 디시에 이르기까지 체코의 모든 요리에 이 캐러웨이가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한국인들이 체코 음식에 느끼는 장벽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나치게 짠 맛, 그리고 이 캐러웨이입니다. '화'한 맛이 나기 때문에 많이 넣으면 굉장히 독해져요. 소금을 조금 줄이고 캐러웨이 양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체코 음식을 즐길 수 있어요."

이렇듯 국내 입맛에 맞춰 조금씩 변형을 시도했지만 캐슬 프라하의 음식들은 현재 체코 대사관에서 케이터링을 의뢰할 정도로 신뢰를 받고 있다. 웰빙 시대에 맞추어 지나치게 고칼로리 음식으로 비춰지는 것을 염려해 경기도 의왕시의 자체 농장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채소를 매일 아침 실어 나르고, 밀가루를 전혀 넣지 않은 소시지도 직접 만든다.

며칠을 들여 삶아낸 진한 육수,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풍부한 육질, 그리고 탄산에 가려지지 않은 진한 맥주 맛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체코 음식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을 준다. 캐슬 프라하 홍대점 3층에는 체코문화정보원이 있어 며칠 전에는 체코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정오에 열어 새벽 2시에 문을 닫고, 금토에는 새벽 3시에 닫는다. 일요일은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은 없다.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