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메 2010'한식의 영감, 월드 셰프의 향연' 음식의 질 논란 미숙한 서비스 불만

서울은 미식가의 도시인가, 호구의 도시인가.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한식의 영감, 월드 셰프의 향연'이라는 주제로 '서울 고메 2010' 행사가 개최됐다. 작년 말 열린 '어메이징 코리안 테이블'에 이은 미식 축제 2탄이다.

지난 번에 이어 6명의 정상급 셰프와 1명의 요리 과학자가 초대됐다. 이번에는 특별히 노량진 수산시장 투어 및 한국 발효 음식 포럼 등을 구성해 세계적인 셰프들에게 한국 식자재와 한식의 매력에 대해 알리는 것에 주력했다.

1회 행사에서 셰프들이 사는 곳으로 한식 재료를 보낸 것에 비하면 이번에는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며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행사 기간 내내 셰프들은 돌아가며 한식에서 영감을 받은 자신의 디너를 서울 시내 주요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선보였고, 28일에는 모든 셰프가 한 자리에 모여 각 1개의 코스를 맡아 하나의 풀 코스 만찬을 완성하는 갈라 디너쇼를 열었다. 낮 시간 동안에는 셰프들의 노하우와 요리 철학을 공개하는 요리 클래스가 계속 이어졌다.

이번 행사에서 특히 주목을 받은 셰프는 벨기에의 상훈 드장브르다. 한국에서 태어나 4살 때 벨기에로 입양된 그는 현재 벨기에 유일의 미슐랭 스타 셰프로, 그 사실만으로도 벨기에와 한국, 양국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17세에 소믈리에로 경력을 쌓기 시작해 분자 요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1000개 이상의 분자 요리 매뉴얼을 보유하고 있다.

모국의 음식에 깊은 관심을 보인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간장, 고추장은 한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양념으로 국제적 경쟁력이 있다. 한국인들은 한국 고유의 음식 문화를 알리는 데 너무 겸손하고 수줍어하기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바란다"고 말해 그의 디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드장브르 셰프가 영감을 받은 한식 재료는 쌀밥과 깻잎, 오미자, 배추, 간장, 고추장, 그리고 막걸리. 싱싱한 배추로 굴을 감싸 고추장을 곁들인 아뮤즈 부쉬(식전 입맛을 돋우는 요리)는 굴 김치를 연상시켰고, 그의 특기인 분자 요리 기법도 유감 없이 발휘돼 간장과 막걸리를 각각 젤리와 거품으로 변신시켜 조개 스프와 랍스터에 곁들였다. 밥과 간장, 고기와 깻잎처럼 익숙한 궁합을 유지하면서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바꾼 드장브르의 창의성에 이번 행사를 통틀어 최고의 찬사가 쏟아졌다.

향수 디저트의 선두주자인 조르디 로카의 음식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자 '2010 레스토랑 톱 50' 중 4위로 선정된 '엘 셀레르 데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의 3형제 셰프 중 막내다. 캘빈클라인 이터너티 등 잘 알려진 향수와 자신의 디저트를 매치하는 감각적인 아이디어로 유명해졌다.

젊은 나이답게 음식의 맛뿐 아니라 색감, 모양, 온도를 총동원해 향을 이미지화하는 트렌디한 셰프다. 이번 행사에서는 랑콤의 미라클을 디저트로 구현해냈다. 노랑, 빨강, 초록 등 발랄하고 상큼한 색깔을 내는 과일과 셔벗에 장미향을 더해 흔히 '꽃다발에 파묻힌 것 같다'고 표현되는 미라클의 향을 만들어냈다.

셰프들의 시연회인 마스터 클래스에서는 해외 요리사들뿐 아니라 사찰 요리의 대가인 선재 스님과 전 웨스턴조선 호텔의 이민 조리사, 레스토랑 콩두의 헤드 셰프인 김진래 등도 참여했다. 그 중에서도 한식 조리사이자 전통 음식 연구가인 조희숙 셰프는 한식의 변형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공유해 주목을 받았다.

"한식 세계화를 놓고 무엇은 바뀌어야 하며, 무엇은 바뀌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담는 모양이나 간의 정도만 조금 바꿔도 외국인들이 느끼는 생소함을 줄일 수 있어요,"

조 셰프는 된장찌개의 두부를 메인 디시로 승격시키고 찌개 국물을 소스로 곁들이는 과감한 방식으로 정통 한식을 변형시켰다. 뉴욕 등 트렌디한 미식 도시에서 두부가 건강식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아이디어로 평가받았다. 잡채 역시 불고기 양념한 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당면 위에 올림으로써 나물과 당면을 스테이크의 가니시(곁들임 야채)처럼 활용했다.

50만원 코스에 동네 식당 서비스라니?

다양한 시도와 찬사가 이어진 가운데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첫 회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음식의 질이 논란이 되었다. 프랑스 오뜨 퀴진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미셸 트와그로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이번 행사에서 선보인 디너에서는 불만족스러운 반응을 얻었다.

행사의 주요 취지인 '한식의 영감'을 찾아볼 수 없는 메뉴와 해당 레스토랑의 미숙한 서빙이 모두 문제로 거론됐다. 실제로 그가 선보인 7가지 코스 중 반 정도는 그의 레스토랑 메뉴를 그대로 가져온 것.

한 유명 미식 블로거는 "맛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40만 원치고는 코스의 길이도 짧고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이 돈을 주고 먹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평했다. 또 다른 이는 디저트 전문 셰프가 선보인 코스 요리를 두고 "국내 톱 셰프들의 반도 못 미치는 실력"이라고 비판했다.

국산 캐비어와 질 낮은 송로버섯을 사용한 일부 셰프들에 대해서는 "한식에서 영감을 받으라는 것이지, 국산 식재료가 서양의 그것에 못 미치더라도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최소 30만 원 이상의 고가 코스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디너의 메인 메뉴가 한우 안심 일색이었다는 것도 불만의 이유가 됐다.

모든 셰프가 힘을 합쳐 만드는 갈라 디너에 대한 평도 좋지 않았다. 별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만큼 국내의 내로라 하는 미식가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가격도 그에 상응해 50만 원으로 책정됐다. 그러나 모집 인원이 350명으로 혼잡한 분위기와 미숙한 서비스는 이미 각오된 일이었고 여기에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이 실망감을 더했다.

심지어 메인 디시를 맡은 셰프는 자신의 디너에 올렸던 것과 완전히 같은 요리를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셰프보다는 행사 운영진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았다. 재료비를 형편 없이 적게 책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부터 디너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는 빡빡한 스케줄까지 문제로 언급됐다.

갖은 잡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셰프들을 앞세운 미식 축제의 성과는 뚜렷하다. 이번에 초대된 셰프의 대부분은 한식과 한식자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였고 새벽 재래시장과 마트에서 발견한 각종 재료와 음식에 흥미를 보였다. 특히 채소의 발효, 사찰 음식, 다양한 요리 기법 등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상훈 드장브르 셰프는 단 3번의 칼질로 생선을 완벽하게 손질하는 법을 알아 너무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굴지의 셰프들에게 한식 경험치를 올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미식 축제인 만큼 세계화를 향한 진지한 토론 외에 맛으로 인한 흡족함이 넘쳐나야 함은 물론이다. 갈수록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한국인들의 수준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행사가 더욱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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