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재패니즈 & 아메리칸 차이니즈뉴욕식 두부 디저트 '교토푸' 상륙, 미국식 중국음식 배달형으로 진화도

교토푸의 뉴욕식 두부 디저트 '토푸'
모든 음식은 방랑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베트남 쌀국수는 보트 피플들에 의해 미국으로, 이탈리아의 피자는 미군 부대를 통해 한국으로, 인도의 커리는 영국에서 일본으로. 정신 없이 돌다 보면 떠나온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생긴다. 머리를 염색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돌아온 영희를 우리는 신기한 눈으로 바라 보며 달려가 묻는다. "너 어디에 갔다 온 거니?"

1탄. 두부의 여행

"두붓물이 가마에서 몹시 끓어 번질 때에 우윳빛 같은 두붓물 위에 버터빛 같은 노란 기름이 엉기면 (그것은 두부가 잘 될 징조다) 우리는 안심한다. 그러나 두붓물이 희멀끔해지고 기름기가 돌지 않으면 거기만 시선을 쏘고 있는 아내의 낯빛부터 흐려지기 시작한다. 초를 쳐보아서 두붓발이 서지 않게 매캐지근하게 풀려질 때에는 우리의 가슴은 덜컥한다. 젖을 달라고 빽빽 우는 어린 아이를 안고 서서 두붓물만 들여다보시는 어머니는 목 메인 말씀을 하시면서 우신다. 이렇게 되면 온 집안은 신산하여 말할 수 없는 울음ㆍ비통ㆍ처참한 분위기에 싸인다."

최서해의 <탈출기>에서 두부는 너무 슬픈 음식이었다. 일명 빈궁 문학과 체험 문학의 대표주자인 그는 직접 두부를 만들어 판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대구를 팔아 남은 차익으로 두부를 만들기 시작한 주인공은 산에서 땔감을 줍다가 순사에게 들켜 두드려 맞고, 그렇게 만든 두부도 쉬어 버려 팔지 못하게 되자 분노를 느끼고 집을 나와 xx단에 가입한다.

작가의 활동 시기로부터 거의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0년 10월. '외국인들의 청담동'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태원 근처, 제일기획과 한강진역 사이 어디쯤에 교토푸라는 가게가 문을 열었다. 핫핑크와 화이트로 깜찍하고 세련되게 꾸민 매장에서 파는 것은 뉴욕식 두부 디저트, 그들의 발음대로 하면 토푸(tofu)다.

뉴욕식 두부 디저트 '교토푸'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두부는 푸딩처럼 촘촘하고 말캉하다. 커드형 요구르트보다 아주 조금 더 단단할 뿐인 두부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면 스르르 녹아 없어진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비릿한 두부의 맛은 없다. 달콤하고 고소한 맛 뒤에 살짝 여운처럼 남는 정도? 팝 아트를 연상시키는 최신식 인테리어에는 울음도 비통도 처참도 찾아볼 수 없다. 두부가 토푸가 되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두부의 발생지는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의 왕자가 도를 닦다가 8명의 신선을 만나 "이 음식을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네"라는 말과 함께 레시피를 전해 들었다는 두부 설화는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지만, 중국에는 두부를 가리켜 백흘불염(百吃不厭·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이라 칭송할 만큼 두부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종류도 다양하다. 단단한 북두부, 부드러운 남두부, 눌러먹는 두부건, 얼려먹는 동두부, 비지와 흡사한 두사.

한국 역시 두부에 일가견이 있다. 두부 유입 시기는 삼국시대 말기로 알려졌지만 콩 재배가 중국보다 앞섰다는 이유로 '두부 독자설'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곤 한다. 본격적으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 말 이색의 <목은집>이다.

"나물국 오랫동안 먹어 맛을 못 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 주네. 이 없는 이 먹기 좋고 늙은 몸 보신에 더없이 알맞네. 물고기 순채는 초나라 객을 생각케 하고 양락(치즈)은 북방 되놈 생각케 한다. 이 땅에서는 이것이 좋다고 하니 하늘은 알맞게 먹여주네."

중국과 한국 중 어느 나라가 일본으로 두부를 전파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식성이 바꿔 놓은 두부의 질감이다. 뭐든 푹 끓여 먹는 한국과 달리 찬 음식에 익숙한 일본인들은 그들만의 두부를 탄생시켰는데 바로 비단 두부라고도 불리는 기누고시 두부다. 콩물을 85~90도에서 가열한 뒤 응고제를 넣어 3~5초간 저어준 다음 20~30분간 방치해 냉장시켜 얻는 기누고시 두부는 보들보들하기가 거의 요구르트에 가깝다. 여기에 간장이나 기타 양념을 해서 먹는 것이 히야약꼬다.

2000년대 중반 뉴욕에 사는 마이클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홀연히 교토를 방문한다. 친구의 아버지는 두부 장인이었는데, 그는 일본 두부의 부드러운 질감에서 고향에서 먹었던 푸딩을 떠올리고 두부를 디저트로 만들어 뉴욕에서 팔 결심을 굳힌다.

"교토푸가 맨해튼에 문을 열 당시 뉴욕에는 일본식 디저트가 하나도 없었어요. 교토푸의 성공 이후 '디저트 바'라는 개념이 흔해졌죠. 수제 두부로 만든 일본식 디저트를 중심으로 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주류를 같이 파는 콘셉트에요."

교토푸 한국 지점의 사장인 유주동 씨는 뉴욕 교토푸가 뉴욕 매거진이 선정한 '베스트 뉴 레스토랑'에 들며 입지를 굳히자 한국에 지점을 열었다. 동양 음식을 동양에 소개하는 것에 그도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두부가 흔한 음식이잖아요. 저열량 음식임을 강조하는 것도 별로 새롭지 않고요. 뉴욕에서 교토푸의 인기 요인 중 하나가 동양의 신비함이었다면, 한국에서는 반대로 뉴욕의 힙한 느낌과 새로운 식문화가 눈길을 끌 거에요."

교토푸 한국 지점에서는 매장에 들리는 고객들에게 달콤한 디저트에 사케를 곁들일 것을 제안한다. 단 것과 술이라는 요상한 조합은 뉴욕에서 최근 자리잡은 트렌드다. 미소초콜릿케이크 한 입에 달콤한 스파클링 사케 한 잔은 색다른 미식 경험이다. 주말에는 브런치 카페로 변신한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샌드위치 등의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여기에 모던한 인테리어, 핫핑크 네온 사인,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하우스 뮤직, 미니멀한 사케 병 등 다시 돌아온 두부에는 먼 나라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다.

홍대 기린아
"한국에 들여오면서 약간의 변화를 줬습니다. 한국인들 입맛에 맞게 매운 맛을 가미한 안주를 추가했고요, 언양에서 매일 50병만 빚는 유기농 막걸리로 만든 셔벗도 있어요."

전세계를 떠돌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두부의 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탄. 짱깨에서 팬시 푸드로

한국 내 중국 음식이라고 하면, 탕수육과 자장면, 짬뽕으로 구성된 '탕수육 세트 B'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미국 차이나 타운에서 발생한 '아메리칸 차이니즈'가 있다. 차이나 타운은 약 200년 전 중국인들이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생겨났다.

타국에 정착한 중국인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이 음식들이 오랜 시간 동안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화를 거듭하면서 아메리칸 차이니즈라는 이중국적의 음식이 탄생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각자 택한 중국 음식에는 중복되는 것이 거의 없다. 양국 모두 중국 음식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중식에서 떠올리는 맛과 이미지는 완연히 다른 것.

서양과 동양의 결합이어서 그런지, 아메리카 차이니즈는 어쩐지 영국령 아래 있던 홍콩의 음식을 연상케 한다. 바삭하게 튀긴 닭에 상큼한 레몬향, 오렌지향을 가미한 것이나 새우를 튀겨서 달짝지근한 마요네즈 소스로 버무린 음식 등 동양의 식재료에 서양의 소스와 입맛이 아무렇지 않게 가미돼 있다. 양도 바뀌었다. 아무리 중국인들이 대식가라고 해도 세계 제 1위의 비만국인 미국을 따라 잡을 수 없었던 모양인지, 모든 음식의 양이 2인분에 가까울 정도로 푸짐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 아메리칸 차이니즈가 소개된 것은 약 10년 전으로 홀리차우의 성공 이후에 칸지고고, 상하이 그릴, 락앤웍 등이 생겨났다. 국내에 상륙하면서는 한바탕 기름기가 빠져 나갔다. 미국과 중국이 공통적으로 사랑한 기름기가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과했던 것. 대신 짭쪼름한 간과 후끈한 매운 맛이 더해졌다. 미국식 중국 식당들이 일괄적으로 사용하는 빨간 간판에서는 중국의 냄새가, 벽에 걸린 미니멀한 액자 장식에서는 미국의 흔적이, 차분한 원목 바닥에서는 한국의 감성이 느껴진다.

아메리칸 차이니즈의 최신 트렌드는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솔로들의 간단식, 배달형 아메리칸 차이니즈를 국내에서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린아에서 판매하는 메뉴는 브로콜리 치킨과 몽골리안 비프, 스파이시 누들 등 4가지.

주문을 하면 밥과 반찬을 하얀 종이 상자에 각각 담아 포장해 준다. 밥이 나오는 시간은 5분에서 7분 정도.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로 배달도 해준다. 화학 조미료는 전부 빼버렸고 주방을 훤히 오픈해 조리 과정을 다 공개했다. 간단함과 건강, 퓨전, 팬시한 모양, 지금 한국 다이닝 씬이 원하는 키워드가 작은 상자 하나에 다 담겼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 홍대에서 뜨고 있는 픽시(무기어 자전거) 문화가 더해졌다.

"기린아는 픽시 라이더를 위한 가게로 만들어졌어요. 일단 주인들이 모두 픽시 마니아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픽시 전용 주차장을 만들어서 픽시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먹거나 포장해 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에요."

주방벽에 튄 기름, 매장 한 켠에 붙어 있는 비틀즈 포스터, 그리고 가게 앞에 세워진 픽시 자전거. 중국 음식은 앞으로 또 어떤 여행을 하게 될까?

참고서적: <잘먹고 잘사는 법-두부>, 채경서 저, 김영사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