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주방] (14) 베트남향채, 쌀, 느억맘이 빚어내는 진짜 베트남의 맛, 종로 '사이공'

베트남 아래 쪽에 위치한 호치민 시에서 북동쪽으로 200km 정도 올라가면 국도 1호선이 처음으로 바다와 만나는 곳이 나온다. 어업이 성한 이 지역의 이름은 판티엣으로, 푸꿕섬과 판티엔 거리는 1년 365일 생선 삭는 비린내로 가득하다. 베트남 식탁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느억맘의 본고장이기 때문이다.

느억맘은 일종의 젓갈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국제 결혼으로 인해 '사돈의 나라'가 된 베트남과 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생선 발효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던 셈이다. 우선 독 안에 멸치와 비슷한 작은 생선 까껌(ca com)과 소금을 잔뜩 넣는다.

장독의 모양은 놀랄 만큼 우리와 비슷한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독 뚜껑의 모양이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처녀가 쓴 삿갓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삿갓 쓴 장독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놓고 최소 4개월에서 1년간 잘 숙성시킨 후 이것을 천에 거르면 투명한 붉은 액체가 나온다. 이것이 바로 느억맘이다.

젓갈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쌀국수 프랜차이즈를 통해 국내에 베트남 음식이 처음 소개됐을 때 느억맘의 존재는 희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느억맘의 가공할만한 냄새는 베트남 현지에서도 일부 고급 호텔에서는 사용을 금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향수를 일깨우는 것이 결국 김치와 청국장의 고약한 냄새인 것처럼 느억맘도 베트남의 맛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월남 쌈과 라이스 페이버
"한국 사람들이 처음에는 느억맘을 싫어해요. 하지만 나중에는 더 달라고 하고 모든 음식에 넣어서 먹고는 해요."

종로구청 근처에서 베트남 식당 '사이공'을 운영하는 황비남씨는 베트남 사람이다. 부인과 함께 3년 전 사이공을 열어, 쌀국수와 볶음밥, 월남쌈, 짜조(스프링 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식을 오리지널 베트남 식으로 만들고 있다. 순박한 인상의 그는 서툰 한국어로 진짜 베트남 맛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한국에는 베트남 음식을 파는 곳이 많아요. 저도 많이 다니면서 먹어 봤어요. 맛있는데 국물이 좀 연해요. 베트남 사람들은 더 진하게 먹어요."

황비남씨의 집안은 그의 아버지 대부터 베트남에서 쌀국수 집을 운영했다. 그에 따르면 베트남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느억맘은 이제 어느 정도 유명해져서 베트남 현지에서 쓰는 것과 똑 같은 제품을 한국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럼 다른 쌀국수집과 차별화 된 점은 무엇일까?

"국물을 낼 때 사골을 넣고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끓여요. 처음 우러나온 나쁜 성분을 따라내고 또 다시 끓여요. 그럼 국물이 진해지거든요. 그런데 진짜 베트남 맛과 똑같아지려면 여기에 향채를 넣어야 해요. 이건 한국에 없어요. 고향에서 아버지가 보내준 것을 넣어 만들어요."

파인애플 볶음밥
그에 따르면 향채 선호 정도는 곧 쌀국수 마니아를 가르는 기준이다. 향채의 맛을 아는 이라면 진짜 쌀국수 맛을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는 것. 현지에서는 당연히 향채에 대한 선호도가 한국보다 훨씬 높다.

면도 중요한 요소다. 쌀국수에 쓰이는 면은 100% 쌀로 만드는 것이 정석인데 한국산 쌀로는 이것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밀가루가 들어간다. 젓가락에 힘만 조금 줘도 톡톡 끊어지는 베트남 쌀면과 달리 찰지고 탄력 있는 것이 한국 쌀면의 특징이다.

베트남 문화를 소개하는 한 책에서 '한국에서는 베트남 식 쌀면을 구할 수 없고, 베트남 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식당 사이공에서도 국내산 쌀면을 쓴다'고 소개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사이공에서는 100% 쌀로 만든 면을 베트남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칼국수 반 정도 너비의 면은 온전히 쌀로만 빚어 한국 면 특유의 질겅거리는 느낌이 없고, 하루 세끼를 전부 쌀국수로만 먹어도 위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약처럼 달여진 쌀국수 국물이 뿜어내는 향은 '얼큰'이나 '담백' 등 한국의 단어로는 설명할 길 없는 그야말로 매혹적인 향이다. 김이 무럭무럭 날 때 재빨리 생 숙주를 넣어 익히고, 따라 나오는 소스를 작은 원을 돌리면서 뿌린 뒤 청양고추 3~4 조각을 넣으면 베트남 거리 한복판에서 파는 쌀국수와 똑 같은 맛을 즐길 수 있다.

김이 펄펄~ 매혹적인 이국의 향

쌀국수 다음으로 대중적인 베트남 음식은 볶음밥. 식당 사이공의 명물 중 하나는 파인애플을 통째로 반으로 갈라 그 위에 볶음밥을 얹어서 내주는 이다. 동남아의 과일 인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화려한 비주얼이 첫째, 그리고 7000원이라는 싼 가격이 두 번째 인기 요인으로, 주인의 말에 따르면 소위 미끼 상품이다.

"베트남에는 파인애플이 많고 그 맛이 꿀처럼 달아요. 에는 파인애플이 반이나 들어가기 때문에 이 음식은 팔아도 남는 게 없어요(웃음)."

담백한 맛보다는 중국 음식을 연상케 하는 기름진 볶음밥으로, 길다란 안남미 대신 한국식 쌀을 써서 적당히 찰기가 있다. 파인애플의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밥을 담는 다른 식당들과 달리, 파인애플 위에 밥을 얹어주기 때문에 다 먹은 뒤 후식으로 과일을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볶음면, 월남쌈, 짜조, 에그롤, 춘권, 웨딩 쇼마이 등 베트남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가 모두 구비돼 있으며 어혈교(안에 샥스핀을 넣은 딤섬), 수정교도 있다. 황비남씨는 여기에 국내 일반 베트남 식당에서 취급하지 않는 베트남 대중 음식을 또 하나 추가할 예정이다. 반짱(bahn trang)이 그것으로, 반짱은 월남쌈에 쓰이는 라이스 페이퍼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라이스 페이퍼에 고기를 싸먹는 만두 같은 음식을 지칭하기도 한다.

"사실 반짱은 베트남에서 쌀국수 다음으로 많이 먹는데 한국에는 없어요. 왜냐하면 반짱에 쓰이는 라이스 페이퍼는 가공품 대신 식당에서 직접 만들어야 하거든요. 면으로 치면 가공면이 아닌 생면인 거에요. 베트남 쌀을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연하게 풀어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요."

라이스 페이퍼에 싸먹는다는 점에서 월남쌈과 비슷하지만 월남쌈이 각종 야채와 새우 등 10여종에 이르는 재료를 넣어 먹는 다소 복잡한 음식이라면, 반짱은 싱싱한 라이스 페이퍼에 고기만 싸서 간단하게 먹는다. 쌈 재료들에 밀려 엑스트라로 분류되곤 하는 라이스 페이퍼의 참 맛을 즐길 수 있는 음식이자, 세계 2위의 쌀 생산국인 베트남의 쌀 맛을 느낄 수 있는 메뉴다.

사장부터 종업원까지 전부 베트남인이라 복잡한 의사 소통은 힘들지만 간단한 이야기는 충분히 주고 받을 수 있다. 아침 9시에 열어 밤 10시 반에 닫으며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쉬는 시간이다. 휴일은 없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