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백두대간 명당 구마동

태백산 남쪽의 깃대배기는 경북 봉화군 소천면과 석포면, 강원도 태백시와 영월군 상동읍의 경계를 이루면서 백두대간상에 우뚝 솟은 해발 1,370미터의 준봉이다. 깃대배기 남쪽 기슭의 구마동은 현동천 상류의 오지 골짜기로 백두대간의 정기가 가득 담겨 있다. 이 계곡에 아홉 필의 말이 한 기둥에 매어 있는 구마일주(九馬一柱)의 명당이 있다고 해서 구마동이라고 불린다.

구마동계곡의 원류는 깃대배기 동쪽의 두리봉에서 발원한 덕터골과 굴골이지만 청옥산 기슭의 자생골, 벌바위골, 박달골, 우등실골과 각화산 기슭의 새꾸미골, 가는골, 중봉골, 거지미골 등 숱한 계류가 모여들어 항상 물이 철철 넘친다.

고선교에서 간기에 이르는 약 11km의 현동천계곡은 고선계곡이라고도 불린다. 드문드문 민가가 흩어져 있는 이 계곡에는 한여름에 피서객이 제법 찾아든다. 좁으나마 계곡을 따라 찻길(시멘트 길이 간간이 섞인 비포장도로)이 드리운다는 편리함 때문이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 피서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쥐죽은 듯 고요해진다. 이듬해 여름까지 이곳을 찾는 외지인은 거의 없다. 마방마을에 있던 고선초등학교도 1992년 폐교되어 쓸쓸하기만 하다.

고선계곡이 이러할진대 간기마을 상류의 구마동은 말할 나위도 없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어서 극성스러운 피서객도 구마동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로지 깊고 그윽한 산수만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뿐이다.

터벅터벅 걷기에 그만인 오솔길

구마동에서 토종꿀을 치고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구마동은 어수선했다. 춘양목을 베어내는 벌채의 현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광산까지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자연의 자생력은 경이로운 것. 개발이 중단되자 기적처럼 자연은 스스로 숨통을 트기 시작했고 이윽고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을 되찾았다. 인간에게서 받은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베풀 줄만 아는 자연이 고마울 따름이다.

구마동은 상류로 오를수록 심산유곡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늘이 한 뼘도 채 안되는 적막강산이라는 표현이 도무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빽빽한 수림과 맑디맑은 계류가 속삭일 뿐이다. 계곡물을 그냥 떠 마셔도 될 만큼 오염과는 담을 쌓았다.

간기에서 도화사까지는 길이 잘 나있다. 옛날에 광산과 춘양목 벌채를 위해 만든 산판도로 흔적이다. 하지만 차량 통행을 통제하는데다 여러 차례 계곡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차를 끌고 갈 수는 없다. 대신 산악자전거라면 오를 만하다.

명상하며 산책하기에 좋은 낙엽송 숲길도 있고 늘어지게 낮잠 자기에 그만인 너른 잔디밭도 있는 평탄한 오솔길을 1시간 30분 남짓 헤치면 도화사에 다다른다. 다만 큰비가 내리면 계곡을 건너기 위험하므로 비가 그치고 나서 하루쯤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걷기에 안성맞춤인 구마동 오솔길은 아무 때나 찾아도 좋지만 가을철이 가장 좋다. 계곡과 길을 따라 오색영롱한 단풍이 곱게 물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을에는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유명한 단풍 관광지와는 달리 호젓하게 가을의 낭만을 가슴 깊이 담을 수 있다.

구마동의 단풍
인근 각화사의 가을 풍광도 일품

아담한 암자인 도화사는 일반 민가처럼 보이며 간판 같은 것도 없다. 이곳 도화동 일대는 제법 터가 넓어 옛날에는 집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때는 분교까지 있었다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근래 들어선 도화사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도화사부터는 본격적인 등산로가 이어진다. 오른쪽 덕터골 길로 2시간쯤 오르면 두리봉이고, 다시 20분 남짓 가면 백두대간 깃대배기에 올라선다. 그러나 이 등산로는 도중에 길 흔적이 사라지는 곳이 많고 키 큰 나무가 우거져 위치 파악도 어렵다. 반드시 경험자와 동행해야 헛수고하지 않는다.

오가는 도중 지나치게 되는 각화사도 들러볼 만하다. 각화산(1,177m) 남쪽 기슭의 각화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보물급 문화재는 거느리지 않았지만 짙은 숲에 파묻혀 산사의 정취가 그만이다.

각화사의 가을은 길다. 아름다운 단풍이 오래도록 물들어 있는 까닭이다. 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략 10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단풍이 곱게 물든다. 그러다가 10월 하순이 지나면 빨간 단풍은 대부분 시들거나 떨어지고 노란 색조의 단풍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이때가 바로 각화사의 가을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오솔길 따라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 단풍과 계곡 위로 소복소복 쌓인 낙엽……. 그이와 함께라면 사랑이 더욱 깊어지리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신라 고찰 각화사
찾아가는 길

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38번 국도-영월-88번 국지도(국가지원 지방도)-춘양-울진 방면 36번 국도-현동-태백 방면 31번 및 35번 공용국도를 거친다. 현동에서 태백 방면으로 2.9km쯤 가다가 왼쪽의 작은 다리 고선교를 건너면 고선계곡을 거쳐 구마동으로 이어진다. 남부 지방에서는 중앙고속도로-영주 나들목-영주시-36번 국도-봉화-현동을 거친다.

대중교통은 동서울터미널에서 봉화로 가는 버스를 탄 다음 현동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탄다. 현동에서는 고선교까지만 버스가 다니므로 택시를 타거나 지나는 차에 편승해야 한다.

맛있는 집

오가는 길에 영월 고씨동굴 입구를 지나게 된다. 이곳에는 칡국수를 내는 식당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강원토속식당(033-372-9014)이 유명하다. 칡국수는 보통 따뜻한 국물에 말아내는데 여름에는 칡콩물국수가 시원해서 인기다. 비빔 칡국수는 김, 오이 무침, 달걀지단 등을 고명으로 얹고 다진 양념을 넣어 비비며 국물이 따로 나온다. 채친 묵에 김, 달걀지단, 야채와 양념장을 넣어 후루룩 떠 마시는 채묵도 별미다.



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