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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태스킹 시대, 몰입은 왜 필요한가.

겉으론 여러 일 동시에 하는 것 같지만 집중력 결핍과 동일한 상태
"인간은 몰입할 때 가장 행복"… 하루에 30분쯤 뇌에게 휴식을
매일 자정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정지되고 이전까지의 기억은 모조리 포맷된다. 그러면 어디선가 검은 무리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내키는 대로 옮겨둔다. 아침이 밝는다. 사람들은 원래부터 자신이 그곳에 있었던 양 익숙하다. 마치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착각'한 사람들은 대도시의 미칠 듯한 분주함 속으로 또다시 파묻힌다.

1998년에 개봉한 SF영화 <다크시티>는 사람들의 잃어버린 기억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환기시킨다. 영화가 개봉된 12년 전보다 2010년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삶은 한층 더 바빠졌다. 이 삶을 간편하고 즐겁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스마트한' 디지털 기기들이 쉴새 없이 공급되지만 오히려 이들은 점점 더 사람들을 어둠 속으로 내몬다. 뇌가 잠시도 쉴 수가 없는 탓이다.

러닝머신을 타면서 눈으로는 TV를 보고, 귀로는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업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 오래다.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의문이 생길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한다. 지하철에선 DMB를 꺼내 들고, 자가용만 타면 집에 가는 길에도 내비게이션으로 손이 간다.

디지털 기기를 늘 옆에 끼고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가히 멀티태스킹의 달인처럼 보인다. 멀티태스킹은 본래 한 대의 컴퓨터로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을 칭하는 단어였지만, 이제 이것은 사람에게 옮겨져 현대인들이 갖추지 않으면 안 될 필수능력처럼 여겨진다. 우리가 기계를 닮아가는 셈이다.

디지털 의존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가진 독특한 행동이 이것으로 집약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은 과연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마법의 능력일까?

멀티태스킹이 앗아간 것들

<박스>의 테스트에서 해당 항목이 많을수록 당신이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나의 일을 진득하게 할 수 없는 상태,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어디엔가 끌려가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늘 무언가에 쫓기고 바쁘지만 생각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 극심한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 같지만 이는 집중력 결핍과 동일한 상태인 것이다. 현대인들이 말하는 멀티태스킹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조급증에서 오는 불안증세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항목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환자(ADHD)'의 자가 테스트 항목과 적지 않게 겹친다는 점이다.

'ADHD항목'엔 이런 것들이 있다. '외부 자극에 쉽게 산만해진다 / 장시간 앉아 있기 힘들다 / 질문이 끝나지 않았는데 대답을 한다 / 한 가지 일이 끝나기 전에 다른 일을 한다 / 해야 할 일이나 놀이에 계속 집중하기가 어렵다' 등이다.

병적으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적지 않은 현대인들이 주의력 결핍과 집중력 저하를 경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2005년 2만 1695명이던 ADHD 환자는 매년 크게 늘어 2009년 5만702명에 이르렀다.

사실 인간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란 쉽지 않다. 한 손으로 세모를, 다른 한 손으로 네모를 그려 보라. 세모는 어느새 동그라미가 되어 있고, 양손의 움직임은 거의 비슷하게 닮아간다. 멀티태스킹의 환상은 이같이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서도 알아챌 수 있다. 두 가지 일을 할 때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만큼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더구나 끊임없는 외부의 자극에 혹사당하는 뇌는 창조적 활동과 기억력에 상당한 침해를 당한다. 미국 UCSF의 연구자들은 "뇌가 정보를 받아들인 후 처리하는 시간 없이 다른 정보에 끊임없이 노출될 경우 응용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한다. 뇌는 쉬는 동안 그간의 경험을 응용해 창조적 으로 활동하고, 장기 기억력을 강화시킨다.

테크닉이 아닌, 개성을 가진 음악가들이 사라지는 것을 염려한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알바로 피에리(빈 국립음대 교수)는 한 평론가와의 사적인 대화에서 "요즘 학생들은 음악을 슈퍼마켓에 물 사러 가는 것처럼 생각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만의 우물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절박하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제 그 음악조차도 마트의 대형 냉장고에서 언제든 꺼내 마실 수 있는 물과 같다는 것은 끈질기게 한 가지 일에 몰입할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또 한번 확인시켜준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사람이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중단하게 한다. 생각을 멈추는 것은 기억을 멈추는 것이고, 이는 과거를 잊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없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현재 자신의 삶을 온전히 유지해갈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몰입은 왜 필요할까.

'몰입은 곧 행복'이라고 설파한 시카고대 심리학과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인간은 언제 가장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평생 쫓아 결국 '몰입'이란 답을 발견했다. 사전적 의미에서 몰입이란 깊이 파고들거나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 느낄 수 있는 깊은 희열과 만족감이다.

하지만 몰입에 우선할 것이 있다. '마음이나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힘', 곧 집중력이다. 일반적으로 집중력이 좋은 사람들은 일상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덜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금방 주의를 돌려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집중력 저하를 우려하며 이대로 가다간 문화 쇠퇴기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하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매기 잭슨은 저서 <집중력의 탄생>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중세 시대의 암흑기와 닮아있다고 말한다.

"암흑기는 역사에서 일종의 전환점의 역할을 한다. 이 시대는 물질적 풍요가 넘쳐 안경, 유리창, 난로, 풍차, 나침반 등 위대한 기술과 여타 방면의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종국에는 문명이 쇠퇴하면서 집단 기억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매기 잭슨은 이어 "집중력이 분산되는 삶이 발달될수록 지혜를 얻고 보존하는 능력은 점점 더 상실하고 점차 무지의 시대로 빠져들게 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우리가 기계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최근 <무한도전>에서는 텔레파시만으로 서로를 찾는 '무모한 실험'을 했지만 이는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단지 핸드폰 하나 없었을 뿐이었지만 그것이 없는 시대는 이제 소통불능의 암흑 시대임을 보여주었다. 기계가 주는 편리함을 충분히 누리는 지금, 이 같은 부작용만을 들추며 이들을 몰아내자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일상을 살아가면서 하루에 30분쯤은 뇌에게도 휴식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몰입이 주는 쾌감

알고 보면 심리학에서 확장시킨 몰입이란 개념은 동양에서의 '선'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 불교에서의 명상을 가리키는 선은 원래 종교가 아닌 우리 삶 속에 있는 것이었다. 말이나 생각, 행동이 하나로 일치되는 것, 그것이 선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시쳇말로 '따로 논다'.

잘 때나 깨어있을 때, 몸은 먹고 자고 걷고 있지만 마음은 끊임없이 다른 것을 향해있다. 불가에서는 참선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이 완벽히 하나가 된다고 말한다. 비단 종교적인 명상이 아니어도 실제로 집중력을 기르고 몰입에 달하는 과정은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을 바탕으로 <몰입>이라는 책을 쓴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의 황농문 교수는 몰입적 사고를 통해 두뇌를 최대로 활용할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임을 몸소 확인시켜 준다. 그는 몰입으로 향하는 과정을 5단계로 나누고 단계별 연습을 요구한다.

가령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상하기', 오로지 '목표만 생각하기', '느긋하게 문제에 대해 명상하기' 등이다. 주의할 점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깊은 몰입 상태가 되면 높은 빈도로 기발한 생각들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몰입이 주는 쾌감에 빠져들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 시간이 길어지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규칙적인 운동과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할 것을 주문했다.

조용히 앉아서 잡념을 떨치고 호흡에 집중하는 행위. 몰입하는 순간, 뇌의 활동을 보면 전두엽 오른쪽 부분이 활성화되는데, 이는 승려들과 같이 수행을 많이 한 이들의 뇌파와 같다. 이처럼 몰입의 순간은 명상의 순간과 다르지 않다.

한편 몰입의 대상에 대해서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행동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위니프레드 갤러거는는 <몰입, 생각의 재발견>에서 '삶의 질은 어느 대상에 주목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는 습관은 삶을 전체적으로 더욱 만족스럽게 만들어주며 반대의 경우라면 어두운 세계관을 형성시킨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인생은 우리가 주목한 것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테스트를 한번 해보자. 과연 당신은 이 항목 중 몇 개나 해당되는지 체크해보자.

- 대화 중에 문자를 주고 받다가 핀잔을 듣곤 한다.
- 윈도 창을 평균 5개 이상 열어놓는다.
- 인터넷 로딩시간 때문에 답답하다.
- 책상 위에 늘 서류가 쌓여 있다.
- 다른 사람의 말을 중간에 잘 끊는다.
- TV를 볼 때 쉴 새 없이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린다.
- 에스컬레이터도 걸어서 올라간다.
- 엘리베이터 문이 자동으로 닫히기 전에 닫힘 버튼을 누른다.
- 사람들이 다 내리기 전에 지하철에 올라탄다.
- 하루를 뒤돌아보거나 명상에 잠기는 시간을 가진 적이 없다.
- 오늘 바쁘긴 했는데 뭘 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창조적 단절> (에드워드 M.할로웰 저, 곽명단 옮김)에서 '조급증으로 인한 집중력 결핍도 테스트'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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