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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폴 스미스, 옷 잘 입는 할아버지가 왔다

<인사이드 폴 스미스>전 기념 방한, 디자이너로 사는 법 강연
15살에 학교를 뛰쳐나와, 처음 판 옷은 아내가 디자인한 옷?

옷 잘 입는 할아버지 폴 스미스가 방한했다.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회 <인사이드 폴 스미스>를 기념해 한국을 방문한 폴 스미스는 <폴스 토크>를 통해 자신이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자신의 첫 번째 컬렉션, 디자이너로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디자인만 아는 디자이너는 빵점?

"직업은 늘 당신을 바꾸지만, 당신은 절대 직업을 바꾸지 못합니다(The job always changes you, you never change the job)."

더 없이 초라한 시작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연 디자이너의 한 마디는 직업과 나이를 불문하고 자리를 메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폴의 10대는 자전거가 전부였다. 그는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사이클 선수가 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패션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18살 때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그는 자동차에 치여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한다. 3개월간 입원했다가 퇴원한 후 병원에서 사귄 친구들과 노팅엄에 있는 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 약속이 '폴 스미스 호'의 키를 돌려 놓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펍은 예술가들과 예술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분위기 좋은 곳이었다. 폴은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며 디자인에 눈 뜨게 됐다. 그는 곧 작은 부티크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밑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한다. 그가 맡은 일은 디스플레이와 매장 관리로, 이 시기에 지금의 아내인 폴린을 만났다. 그녀가 폴에게 제안했다. "당신만의 작은 부티크를 하나 내는 게 어때?"

일을 하며 모아 놓은 약간의 돈으로 폴은 드디어 자신만의 상점을 열었다. 물론 부업이었다. 창문도 없는 작은 방에 매니저라고는 키우고 있는 아프간하운드뿐. 그래도 상당히 인기가 좋아 매장에 들르는 손님들은 폴보다 개와 먼저 인사하곤 했다.

처음 폴 스미스 매장에서 판 옷은 그가 아닌 아내 폴린이 디자인한 옷이었다. 폴린은 영국왕립예술학교를 나와 패션스쿨의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었다. 패브릭 고르는 일만 하던 폴은 점차 디자인에 손을 대게 되는데 점차 자신이 만든 옷이 상당히 유니크하고 좀처럼 주변에서 보기 힘든 옷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이걸로는 돈을 벌 수 없겠구나.'

그 후로 그는 좀 더 팔릴 만한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취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가게를 열고, 주중에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컬러리스트, 스타일리스트,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가리지 않았다. 주중과 주말의 구분, 여기서 폴은 자신의 디자인 인생에 있어서 평생 가지고 갈 철학인 균형을 배웠다.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디자이너는 이 둘 모두 놓쳐서는 안됩니다. 주중에 한 일들은 제게 너무 소중한 경험이 됐어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만 알아선 안됩니다. 옷을 만들고, 가격을 정하고, 팔고, 돈을 받아 정리하고, 홍보하고… 이 모든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해요."

그는 최고의 '균형 전문가'로 알렉시 브로도비치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패션지 하퍼스 바자의 아트 디렉터였던 그는 편집장에게 잡지가 잘 팔리게 해줄 테니 내게 일부 섹션을 할당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그는 이 지면에 젊은 인재들을 소개한다. 당시 무명이던 앤디 워홀의 일러스트도 거기에 실렸고 잡지는 그의 말대로 최고의 패션지로 등극한다.

다시 폴의 이야기로 돌아가 부티크를 연 지 6년 만에 그는 대망의 첫 컬렉션을 열었다. 첫 번째 컬렉션의 무대에 오른 작품은 셔츠 3개, 재킷 2개, 바지 2개. 무대는 파리의 작은 호텔 방이었다. 그는 침대와 욕실에 까만 천을 깔고 옷을 전시했다. 전시 기간 동안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다. 마지막 날인 목요일 5시, 우울한 마음으로 옷들을 정리하기 직전 드디어 첫 손님이 나타났다. 그는 옷들을 둘러 보고 1벌의 옷을 주문했다. 폴 스미스의 첫 번째 컬렉션은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됐다.

배고픈 시기를 거쳐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난 후에도 폴은 여전히 뛰어난 디자이너이자 뛰어난 사업가였다. 영국에 있는 폴 스미스의 쇼룸에는 옷은 한 벌도 없고 'We ♡ customer'라고만 쓰여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테이블 보 대신 씌운 재킷, 깃발 대신 걸린 셔츠가 노신사의 지치지 않는 재기를 자랑한다.

"요즘 소비자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어요. 가게를 지나가는 20초 동안 어떻게 하면 시선을 끌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해요. 드라마틱한 이펙트가 있어야 하죠. 이런 노력에는 돈이 들지 않아요. 작은 공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어요."

시간이 부족한 듯 아쉽게 끝난 그의 이야기에 갈증을 느낀다면 전시회에 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사이드 폴 스미스>은 11월 28일까지 계속된다.

<인사이드 폴 스미스> 전

전시회는 폴 스미스의 옷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옷 말고'가 전시의 테마에 가깝다. <인사이드 폴 스미스–그의 예술, 그의 사진, 그의 세계>라는 전시회 제목에 걸맞게 사진가로서의 폴 스미스, 수집가로서의 폴 스미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무언가를 수집해 왔는데 이 수집품들은 패션 디자인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그가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그가 직접 찍은 300여 장이 넘는 사진도 볼 수 있다.

그는 여행을 할 때나 그저 길을 걸을 때 인상적인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이는 그의 재킷 안감과 등판 등에 자유자재로 쓰이곤 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Stamped Object'로 지난 15년 동안 익명의 팬 또는 팬들이 폴 스미스 앞으로 보내온 물건들을 모은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 물건들이 전세계적으로 추앙받는 많은 예술품들보다도 더 예술적이라고 느낀다."

배를 젓는 노, 물뿌리개, 스케이트보드, 이티 인형, 장난감 자전거 등 과연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건들이 박스에 담기지도 않은 채 표면에 우표와 주소를 덕지덕지 매달고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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