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명동 1,2호점서 동시 진행… 선착순 320명 우선 쇼핑 후 개방

2010년 11월 23일 아침 8시, 명동 한복판에서는 다소 이상한 풍경이 목격될 것이다.

거대한 쇼핑몰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얼굴에는 추위로 인한 짜증과 선착순 안에 들었다는 기쁨,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회의와 그러면서도 곧 열릴 매장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기대감, 그리고 10분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는 투지가 엿보일 것이다.

SPA 브랜드 H&M과 럭셔리 브랜드 랑방이 만났다. 칼 라거펠트, 소니아 리키엘 등 하이패션 디자이너들과 1년에 두 차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던 H&M이 이번 파트너로 랑방을 맞이한 것이다.

SPA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은 이제는 흔해빠진 일로 뉴스거리도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작업을 눈 여겨 보아야 하는 이유는 랑방의 아티스틱 디렉터 알버 엘바즈가 콜라보레이션에 임하는 자세 때문이다.

"오늘날 럭셔리란 어떤 의미일까요? 럭셔리는 특별한 동시에 대중적일 수도 있는 것일까요? 럭셔리함의 진수를 보다 넓은 소비자층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디자이너 컬렉션은 극소수의 소비자 층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이번 H&M을 위한 컬렉션은 대중에게 럭셔리에 대한 꿈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마치 디자인 학교로 다시 돌아가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 듯한 경험이었어요."

그의 말이 중저가 브랜드와의 협업을 앞두고 던지는 디자이너의 상투적인 멘트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번 컬렉션을 슬쩍 훑어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엘바즈는 "랑방의 가격을 내리는 것이 아닌 럭셔리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라는 목표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감성을 하나도 양보하지 않았다. 상반신을 덮는 거대한 러플, 시선을 압도하는 오버 사이즈 프린트, 끝을 풀어헤친 단처리,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드레이핑, 랑방의 시그너처인 보우 장식까지.

디자이너 브랜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교한 테일러링과 대담한 컬러 선택은 그가 지난 2001년 랑방에 몸을 담은 후부터 지금까지 매 시즌 정성 들여 꾸미고 덧칠한 자신의 방을 살짝 열어 공개하는 느낌이다.

SPA 브랜드의 협업에서 매번 지적되는 질 낮은 원단도 이번에는 많이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실크 100%로 이루어진 드레스와 인조 모피로 만든 재킷이 20만 원대에 나왔다.

이중 어두운 네이비 컬러의 실크 코트는 탤런트 이영애 씨가, 니트로 된 프린지 드레스는 영화배우 전지현 씨가 각각 청담동 쇼룸에 들러 살짝 '찜'해 놓고 갔다는 후문이다.

아침 8시부터 320명, 선착순입니다!

협업의 결과물을 공개하기도 전에 폭발적인 문의를 받은 H&M 코리아 측은 최대한 합리적이고 평등하게 쇼핑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고객들에게 공지했다. 일단 매장 오픈은 아침 8시. 물론 그 전에 와도 상관은 없다. 아니,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가능성이 높다.

8시 종이 땡 하고 울리면 직원들이 나와 선착순 320명에게 팔찌를 채워준다. 팔찌의 색은 16가지로 각 색깔마다 20개씩 있다. 색깔을 나눈 이유는 그룹 쇼핑을 위한 것으로, 같은 색의 팔찌를 찬 그룹은 매장 안으로 안내되어 팔찌에 표기된 시간까지 쇼핑을 할 수 있다. 한 그룹에 할당된 시간은 단 10분.

제품 당 최대 1개씩만 구매할 수 있으며, 반품 및 환불 기간은 3일이다. 이 무슨 유세냐고 항의할 수 있겠지만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수를 세다 보면 이 시스템이 다행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선착순 320명의 쇼핑이 끝나면 매장을 자유롭게 개방한다. 단 남성 컬렉션의 경우 팔찌 없이 그냥 들어가 쇼핑할 수 있다. 이번 콜라보레이션의 남성 컬렉션은 랑방의 남성복 디자이너 루카스 오센드라이브가 디자인했는데 소재나 디자인 면에서 나쁘지 않지만 여성복 컬렉션이 워낙 강렬하고 화려해 살짝 묻히는 느낌이다.

반짝이는 구두와 대형 보타이 등 액세서리 류는 주목할 만하다.

명동에 있는 H&M 1호점과 2호점에서 동시에 선보이는 이번 컬렉션은 브랜드 측의 예상에 따르면 1~2일 만에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번 소니아 리키엘과의 콜라보레이션 때 물량이 부족했던 것을 감안해 이번에는 비교적 충분한 양을 확보했다.

마지막으로 알버 엘바즈는 랑방의 화려하고 강렬한 드레스를 간신히 구해 모임에 입고 갔다가 똑같이 입은 여자를 만날까 봐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티저 영상으로 답했다.

'화려하게 부풀린 원 숄더 드레스를 입은 두 여자가 호텔 복도에서 마주 걸어온다. 휴대 전화로 통화를 하며 연신 "Oh, my God"을 뇌까리던 두 여자는 상대방의 옷에 눈이 머무르자 잠시 경악하다가 곧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여전히 "Oh, my God."을 외치며.'

걱정할 것 없다. 어차피 랑방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은 이번뿐이니까.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