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의 옷 ③] 다리보다 가슴 노출에 민감한 사회, 노브라 둘러싼 담론 부족

외국인 여자들이 출연해 한국의 문화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던 <미녀들의 수다>가 한창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네티즌들의 눈을 두려워해 한국 찬양 일색으로 변질되기 전, 이 프로그램에서는 아주 신선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그 중 노브라에 관한 것이 있었다. 호주 출신의 패널 커스티는 "한국에서는 남의 눈 때문에 노브라로 외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호주에서는 더운 날이면 속옷을 안 입고 얇은 티셔츠만 입고 다니는데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해 여름이 되면 불편해요."

그러나 그 당시에도 채널 하나만 돌리면 다른 한국을 볼 수 있었다. 짧다 못해 거의 존재 의미를 잃은 미니 스커트와 핫 팬츠를 입은 여자들이 신나게 춤을 춘다.

얼마나 짧았느냐 하면 허벅지와 둔부가 이어지는 곳, 그러니까 엉덩이 밑부분 살이 드러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짧은 바지를 입고 위에 헐렁한 셔츠를 걸쳐 멀리서 보면 하의를 안 입은 것 같은 여자들의 옷차림은 TV뿐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물론 가슴은 꼭꼭 여민 상태다.

가슴 노출은 오직 시상식과 패션쇼 런웨이에서만 존재한다. 그것도 최근에 와서야 클리비지(cleavage: 가슴 사이의 골) 정도만 허용될 뿐 유두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일이 시끄러워진다.

루크 마틴의 카툰
이에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한국의 노출 법칙이 탄생하는데, 그것은 바로 '다리는 되지만 가슴은 안 된다'이다.

아래를 드러낼 것인가, 위를 드러낼 것인가

예로부터 노출에 대한 금기는 (당연하게도) 더 민감한 부위를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여기서 다리가 가슴과 동일선상에서 언급되는 이유는 그것이 걸을 때 쓰이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두 개의 기둥이라서가 아니라 훤히 드러났을 경우 능히 성기와 엉덩이를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리의 에로티시즘은 단연 성기와의 연관성이다. 행동연구가 데스몬드 모리스는 "여성의 다리가 '약속의 땅'을 가리키는 두 개의 화살표라는 생각이 남자들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휜 다리보다 쭉 뻗은 다리가 더 선호될 수도 있겠다. 초기의 스타킹인 백심 스타킹(Back seam stocking: 다리 뒤쪽에 한 줄의 봉제선이 보이는)이 그 이후에 나온 스타킹보다 더 섹시한 아이템으로 일컬어지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발목과 종아리, 무릎을 지나 도착한 허벅지는 '이제 거의 다 왔다'라는 의미에서 한결 더 야하다. 에두아르트 푹스가 표현한 "애정의 사원을 지지하는 이 두 개의 굳건한 기둥"은 20세기 이전의 서구에서는 밖으로 노출하는 것이 아예 금기시되었다.

다리는 유럽 전역에서 금단의 영역이었으며, 영국에서는 100년 전만 해도 '다리(leg)'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외설로 여겼다.

이를 생각하면 한국인들의 허벅지 노출에 대한 관대함은 이상할 정도다. 핫팬츠나 미니 스커트 앞에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 한국 여자들은, 반면 네크라인이 푹 파인 옷을 입을 때면 거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가슴뿐 아니라 어깨가 드러나는 튜브톱, 등허리가 훌쩍 파인 옷 등 노브라를 의미하는 기타 모든 옷에 예민하다.

"한국에서 옷을 팔 때는 네크라인을 올려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아요."

영국에서 온 디자이너 스티브제이&요니피 중 요니의 말이다. 이 브랜드는 유럽을 포함 10개 국에서 팔리고 있다.

"영국에서는 가슴이 반이 넘게 드러나고 거기에 옷이 딱 달라붙기까지 하면 야하다고 느끼지만 가슴 골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가슴 윗부분만 드러나도 부담스러워하고 젖꼭지 윤곽이 비치면 화들짝 놀라죠.

옷 바깥으로 유두가 도드라지는 건 어디서나 섹시하게 보이지만 그냥 헐렁한 티셔츠 안으로 보이는 건 편안함을 추구하는 걸로 여겨지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수수하게 입어도 일단 유두 노출은 야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 같아요."

사람의 신체는 성별 신호의 덩어리이며 이를 잘 알고 있는 점잖은 우리의 조상들은 여러 가지 의복을 이용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감쌌다. 이 얌전한 민족이 가장 먼저 드러내기를 선택한 부위가 가슴이 아닌 다리인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옷 가운데 밑가리개가 문화적으로 가장 널리 보급돼 있다는 것이 새로운 사실도 아닌데 말이다.

볼품 없는 가슴 대신 다리라도?

'노골적 섹스어필을 꺼린다'가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다. 가슴, 그 중에서도 유두는 확실히 직접적인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부위다. 딱딱하게 솟은 젖꼭지를 본 남성들은 발기한 페니스에 비견하며 드디어 화성인과 금성인의 공통점을 찾았다고 기뻐한다(물론 추위나 기타 물리적 접촉, 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후에 확인하고 다시 절망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허벅지에 대한 거리낌 없는 노출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여행가이자 비교문화학자인 이노미는 <말하는 문화>에서 동양과 서양을 각각 타인 중심 문화권과 자기 중심 문화권으로 나눴다. 자기 중심 문화권인 서구에서는 똥배와 처진 가슴, 무 다리를 드러내는 것에 누구 하나 손가락질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반면, 한국은 노출에 대해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일단 칭송받을 만한 조건이 아니면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뚱뚱한 것도 말라 비틀어진 것도 모두 죄악이 되는 한국 사회에서 대담하게 노출한 여자들의 대부분은 멋진 몸매의 소유자들이다. 동양 여자들은 서양에 비해 예쁘고 풍만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고, 이에 '못난 가슴보다는 날씬한 다리를 드러내자' 했던 것이 지금의 노출 법칙을 만들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유두의 크기도 이유가 된다. 독일의 한 브래지어 생산 업체는 아시아 여성들이 기타 지역 여성들보다 평균적으로 유두가 더 크다고 말한 바 있다. 큰 유두는 임신, 출산, 수유의 이미지를 동반하기 때문에 당연히 작고 깜찍한 유두보다는 덜 예쁘고, 덜 섹시하다.

외설에 대한 기준은 보통 사회적 학습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 사람들이 허벅지보다는 상대적으로 본 횟수가 적은 젖꼭지를 더 야하게 느끼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이해가 간다.

역사에서 원인을 찾아보면 사회가 가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가 짧았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서구에서는 가슴을 둘러싼 논란이 중세부터 시작됐다.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루이 13세는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궁정에 출입한 어느 여인의 가슴팍에 와인을 들이붓기도 했다.

약 10년 전, 국내에서 배꼽티가 유행할 때 지나가는 여자의 배꼽을 한 노인이 지팡이로 꾹꾹 찔렀던 사건과 비슷한 일이 파리에서는 이미 400년 전에 일어났던 것이다. 일부 세력의 비난과 빈정거림에도 불구하고 가슴 노출은 남녀 모두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므로) 한때 유럽의 궁정에서는 목선이 남들보다 덜 파인 드레스를 입을 경우 복장이 적절치 못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13년 빌헬름 2세는 오페라 공연장을 출입하는 여인들에게 '나와 같은 날 오페라 공연을 보러 오는 모든 여인들은 가슴골을 노출하라'는 왕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여기에 1960년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브라 화형식이 벌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유두도 해방됐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양장과 함께 브래지어를 받아들인 지 이제 겨우 반 세기밖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동안 먹고 살기에 바빠 가슴 노출의 적정선이라든지, 브래지어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한 담론이 거의 없었다. 클리비지라는 단어가 패션 용어로 잡지에 등장한 것이 약 3~4년 전, 브라 끈이 밖으로 나온 것도 그 시기와 비슷하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세지면서 한국에서도 노브라를 지지하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성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말에 이전처럼 조심스레 가슴을 가리기보다는 "네 발정은 네가 책임져라"는 여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 칼럼니스트는 노브라가 한국에서 연착륙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섹시 글래머 스타에 의한 유행이라고 말한다. 미니 스커트가 윤복희를 향한 계란 세례를 통해 정착된 것처럼 연예인 중 누군가 노출된 유두의 건강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따른 진통을 책임질 용기가 있다면, 그 후에는 너도나도 따라갈 것이고 거기에 눈이 익숙해지는 건 금방이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는 한국이니, 가슴의 모양과 크기와 탄력이 지극히 이상적인 연예인이어야 할 것이다.

참고서적: <유혹의 역사>, 잉겔로레 에버펠트, 미래의 창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