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의 옷 ④] 이상한 '한국적' 신사복미적감각 부재, 강요된 성 역할이 패션 감각 훼손

여의도의 출근 시간 풍경을 본 적 있는가. 수많은 양복쟁이들이 파란불 신호에 맞춰 단체로 움직이는 모습은 하나의 장관이다. 디자이너 정욱준은 한국 남자들의 패션 센스에 절망하면서도 그 풍경만은 아름답다고 인정했다.

한국에 양복이 들어온 지 반 세기가 지났다. 그 사이 한국 신사복을 대표하는 몇 가지 단어들도 생겨났다. 와이샤쓰, 기지 바지, 깜장 구두, 마이. 유러피안 클래식도 아니고 디자이너 수트도 아닌, 한국만의 희한한 정장 법칙을 들여다보자.

블랙의 저주

"한번은 20대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입사를 앞둔 이들이었죠. 그런데 그들 중 80~90%가 자신의 첫 번째 수트로 선택한 컬러가 블랙이었어요."

남성 편집숍 샌프란시스코 마켓의 주인 한태민 씨의 말이다. 뉴요커들이 블랙을 궁극의 컬러로 사랑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사실 한국인들의 블랙 사랑도 그 못지 않다.

특히 한국 남자들은 검은색 수트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한데, 한 씨의 말에 따르면 완벽하게 잘못 끼워진 첫 단추다.

"블랙 수트에 신을 수 있는 구두는 검은색밖에 없어요. 여기에 검정색 넥타이까지 하는 사람도 꽤 있죠. 결국 장례식 복장이 회사원들의 유니폼이 되는 이유예요. 정작 기본 중의 기본인 차콜 그레이(숯처럼 진한 회색) 수트는 검은색 정장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선택에서 제외되고, 하늘색 셔츠나 갈색 구두 같은 기본 아이템도 자연스럽게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거죠."

블랙은 수트에 있어서는 불능의 색이다. 네이비 수트에는 검은색 구두도 잘 어울리고 짙은 브라운색 구두는 더 잘 어울린다. 이는 그레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블랙은 같은 블랙을 제외하고는 다른 색들과의 매치를 불허한다.

무수한 컬러와 패턴의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를 검은색이 틀어 막은 결과, 한국 정장의 색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비슷하게 되었다. 검은색, 흰색, 은색.

어깨가 커서 팔과 허리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다 가려버리는 벙벙한 검은색 마이(단추를 잠그지 않아 보통 펄럭거린다), 그 안쪽으로 보이는 폴리에스테르 혼방 와이샤쓰(여름에는 반팔), 또 그 속으로 살짝 비치는 메리야스, 길어서 주름이 잔뜩 잡힌 기지 바지, 엉덩이의 볼륨을 더해주는 뒷주머니의 까만 가죽 지갑, 가장의 노고가 느껴지는 주름진 깜장 구두. 여기까지가 한국 신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진출처 : the sartorialist
'한국 남자들의 패션 감각은 수준 이하'라고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 더 끔찍한 광경이 펼쳐질 테니까. 광택이 잘잘 흐르는 은갈치 정장, 분홍색 와이샤쓰, 큐빅이 박힌 폭 좁은 넥타이, 일명 개목걸이로 불리는 굵은 금속 체인, 여기에 또 다시 깜장 구두.

"수트의 발원지인 유럽 클래식 수트에 대한 기본 정보가 상당히 부족해요. 그리고 여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 전에 일명 캐릭터 캐주얼이 너무 급하게 들어왔어요. 한국 사람들이 유행을 흡수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잖아요. 적당한 바지 길이가 어떤 것인지, 기본으로 갖춰야 할 구두가 뭔지 알기도 전에 폭 넓은 바지, 짧은 재킷 같은 옷을 접하게 된 거죠."

이태원에서 영국식 클래식 수트 '테일러블'을 운영하는 곽호빈 씨의 말이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의 정장 세계는 평생 못 놀아본 모범생이 자기를 비웃는 여자의 눈길에 분노한 나머지 자행한 서툰 일탈에 비유할 만하다.

사실 한국식 정장을 시종 비판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한국과 일본에서 비스포크 수트 레이블 로리엣을 전개하는 디자이너 홍승완은 한국 정장의 핏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에 양복이 도입되던 50~60년대에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에요. 아메리칸 수트는 어깨도 품도 넉넉한 편안한 스타일이죠. 반면 일본은 유러피안 정장의 영향을 받아 핏에 엄격해요."

깜장 구두에 대한 강박을 해명하자면 갈색보다 검은색을 사회 초년생의 첫 구두로 권장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패션에는 법칙이 없으니까. 그러나 귀족들의 옷에서 유래한 수트를 이야기하려면 아무래도 유럽의 그것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수트는 1~2cm 차이로 신사와 양아치를 단번에 갈라버리는 엄격한 법칙의 세계다. 남성잡지 에스콰이어에서 발행한 <성공하는 남자의 스타일 북>에서는 남자의 옷장에 필요한 최소의 옷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았다.

수트 3벌(감색, 진한 회색, 줄무늬 들어간 중간 회색으로), 순면으로 된 셔츠 5벌(화이트, 블루, 프렌치 커프스와 버튼 커프스를 섞어서), 중간 폭 넥타이 4개(네이비, 사선, 패턴 있는 걸로), 가죽 구두 2개(짙은 브라운 옥스퍼드 또는 윙팁으로). 여기에 수트의 최대 미덕인 '몸에 꼭 맞음'을 위한 몇 가지 수치가 따라 붙는다.

수트 상의 길이는 양 팔을 내렸을 때 손 중간에 도드라지는 손가락 관절쯤에 위치하도록, 셔츠의 커프스는 재킷 소매 밖으로 늘 1.3~2cm가 나오도록, 바지는 구두 굽이 시작되는 위치에서 2.5cm 정도 위에서 끝나도록, 패딩이 어깨 바깥으로 나와 팔 아래 움푹 패는 공간이 생기면 한 사이즈 작은 것으로 교체, 재킷 안에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두 사이즈 작은 것으로 교체 등등.

이 밖에도 클래식 수호자들이 추가하고 싶은 규칙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안타까운 점은 이것을 알고 지키는 이들이 극소수라는 점, 그리고 이 기본 아이템들을 제외한 모든 옷이 한국 남자들의 옷장을 꽉꽉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로크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멋 부리는 남자, 똑똑한 여자는 재수 없다?

무지의 뿌리에는 무관심이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없어요. 이해하기 싫은 게 있을 뿐이죠."

<지금 당장 넥타이를 잘라라>의 저자 정순원 씨는 한국 남자들의 미적 감각은 '부재한 것이 아니라 매몰돼 있다'고 말했다. 튀지 말라는 사회적 압박, 패셔너블한 남자를 향한 한심한 눈초리, 밥벌이에 따른 피곤함 등이 그 이유다.

"한국적 기독교인 유교가 우리에게 육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중시하게 만들었죠. 게다가 지난 산업화 시대에 남자들에게 요구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닌 완력입니다. 한국 남자들은 과잉 남성화로 헐떡이고 있어요. 지금의 패션은 그 잔재입니다."

그에 따르면 근대 산업화의 역군으로서의 남성상은 남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사회의 주인공을 만들어줄 테니 너의 인생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요즘 남자들은 손해 보는 장사임을 대번에 눈치채고 거부한다. 기성세대 역시 그들의 훼손된 미적 자부심에 서서히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의 한 쪽 기둥이 무너졌으니 나머지 한 쪽도 정상일 리가 없다. .

"한국 남성들이 과잉 남성화에 빠져 있는 동안 여자들은 또 다른 미망에 빠졌다. 독립적이고 인격적인 여성보다 예쁘고 섹시한 여자에 대한 요구뿐이다. 한 외국인이 여대 앞을 빠져 나오는 학생들의 과한 치장을 두고 창녀를 연상시킨다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한 쪽에 과하게 부가된 성 역할이 한국 남자의 패션을 망치는 주범일까?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법칙도 성립한다. 스스로를 꾸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여자에게도 뇌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용의가 있는 남자는 식당 카운터 뒤에서 남자가 밥값 계산하기를 기다리는 여자 꼴을 안 봐도 된다는 것.

반대로 남자에게도 취향이 있다는 것을 껄끄러워하지 않고 누군가의 등에 업혀 편하게 살 생각을 버린 여자는 온갖 성형의 유혹과 셀룰라이트 고민, 그리고 남의 인생의 엑스트라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