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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찬란한 꽃무늬, 몸뻬, 선캡…

오늘 한국의 옷(5) 아줌마 패션
외국인, 예술가들 눈길 사로잡는 아줌마… 보편적 한국의 미감과는 거리 멀어
지난 10월, 서울에 거주하는 원어민 강사들이 모처에서 할로윈 파티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캣 우먼과 호박귀신을 가뿐히 제친 코스튬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아줌마 패션'이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20대의 여자 강사는 브로콜리처럼 거대하게 부풀린 머리에 까만 썬캡을 쓰고, 꽃무늬 '카라 티'에 역시 꽃이 만발한 몸뻬를 맞춰 입고 나타나 우악스런 걸음걸이로 주변 사람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돌아 다녔다.

총천연색의 강렬한 컬러와 요란한 무늬의 아줌마 패션은 어김없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특히 예술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강남의 잘 빠진 아가씨들이 입는 옷이 아니라 남대문과 동대문에 주렁주렁 걸린 휘황찬란한 마담 패션이다.

터키의 대표적인 사진작가인 아리프 아쉬츠는 서울 스케치를 담은 책 <이스탄불에서 온 장미 도둑>에서 '아줌마, 내 인생을 바꾸다'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썼다. 10년이 넘게 흑백 사진만을 고집해온 그가 컬러 필름을 꺼내 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한국 아줌마들의 현란한 패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트 피스로서의 접근까지가 적당하다. 만약 아줌마 패션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감성을 가늠하려는 이가 있다면 힘이 닿는 한 말려야 할 일이다.

국내 패션 현상 중 가장 특징적이라 할 수 있는 아줌마들의 패션은 한국의 보편적 미감과는 거리가 멀다. 야수파도 울고 갈 대담한 색 조합은 거리를 달리는 무채색의 자동차와 완벽하게 대비되며, 편안하게 축축 늘어지는 몸뻬의 실루엣은 주변 시선을 극도로 신경 쓰는 한국인들의 패션을 가볍게 비웃는다.

색이든, 모양이든, 소재든, 아줌마 패션은 분명 이 사회에 섞일 수 없는 반동 분자다. 적어도 동시대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국인의 감성 한 가운데 자리잡은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미니멀리즘이다.

우아해지려면 꽃무늬를 버려라?

지난해 백화점의 중년 여성 조닝에서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디자이너 정구호가 만든 여성복 브랜드 르베이지가 론칭 첫 해에 매출 125억 원을 달성한 것이다. 신세계 강남점에서만 25억 원어치를 팔아 치운 이 브랜드의 콘셉트는 '우아한 중년'이었다.

"중년 여성의 원숙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색을 뉴트럴 컬러라 보고, 베이지, 그레이 등 차분한 색감과 함께 몇몇 트렌드 컬러를 톤 다운시켜 선보였어요. 기존의 아줌마 패션과 너무 달라 처음엔 회사 측에서 걱정하기도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화려한 컬러의 판매율이 더 낮았어요. 멋진 중년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망을 기업이 과소평가했다는 의미죠."

정구호 상무의 말에 따르면 '멋진 중년 패션=심플한 패션'이다. 그에 따르면 연두색, 보라색, 주황색의 알록달록한 투피스, 시뻘건 루즈, 반짝이는 보석 단추 등은 뽀글 파마와 함께 청산해야 할 과거의 유산이다. 브랜드의 매출 수직 상승은 소비자인 아줌마들도 이에 동의했음을 증명한다.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대한 선호는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다.

"몸뻬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 아세요?"

안데스 씨는 아줌마 패션의 연구자이자 수호자다. 온라인 사이트 데일리 코디(http://dailycodi.com)에는 매일 그 자신이 직접 아줌마들의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올라온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시장 노점상 아주머니들의 코스튬으로, 몸뻬 바지와 고무신, 꽃무늬 티셔츠, 전대는 그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색이나 무늬가 노골적으로 화려한 오리지널 몸뻬가 있는가 하면, 꽃무늬가 좀 덜 들어가고 다리에 약간 붙는 듯한 디자인의 심플한 몸뻬가 있어요. 이전에 몸뻬를 입고 계시던 친구 할머니가 급하게 외출할 일이 생겨서 옷을 갈아 입으시던데 재미있는 건 갈아 입은 옷도 몸뻬였어요. 다만 한층 심플한 디자인이었죠. 그 분들 사이에서도 외출용 몸뻬와 실내용 몸뻬의 구분이 확실하더라고요."

가격도 당연히 심플한 몸뻬 쪽이 높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우리의 뿌리 깊은 집착에는 여러 가지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 미국 페인트업체 듀폰이 실시한 국가별 자동차 인기색상 조사에서 지난 해 한국은 무채색 선호도 87%(은색 39%, 검은색 29%, 흰색 14%, 회색 5%)로 9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튀지 않으려는 심리를 꼽는다. 남보다 잘 나가려는 경쟁심 때문에 대형차를 구입하면서도 혼자만 다른 색 차를 타는 것은 싫어해 결국 가장 무난한 무채색 계열을 고른다는 것. 무채색 내에서도 검은색으로는 세련됨을, 은색으로는 무난함을, 흰색으로는 소박함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유채색을 고집해 터질 듯한 자아의 발현으로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유전자 설도 있다. 미니멀리즘은 기본적으로 서양의 사조지만 국내에서는 70년대에 이를 받아 들여 한국 고유의 예술 사조인 모노크롬 회화로 승화시킨 바 있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그림, 사진, 영화를 일컫는 모노크롬은 1976년 이후로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한 흐름이 되었다.

현대미술 비평가인 김복영 교수에 따르면 이는 우리 선조들이 창조하고 계승해온 물아일체 사상과 맞닿아 있다. 회화를 정신 수양의 일환으로 생각했던 조선 시대의 예술가들은 금욕적이고 영적이며 고상하고 청아한 형태로 개성을 표현했는데 이 작품들이 모노크롬 회화의 정신성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유전자에서부터 여백의 미가 들어 있다면 이 화려한 아줌마 패션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총천연색 컬러에 감춰진 미적 절망

'사회적 자살을 위한 패션 첫 걸음'

한 블로거는 아줌마 패션에 대한 내용을 포스팅하며 위와 같은 무시무시한 제목을 붙였다. 그는 아줌마가 아닌 사람이 이런 옷-화려한 꽃무늬와 기하학적인 선, 섞이기 힘든 난해한 배색들이 전면에 가득한 옷을 입는다면 그 스스로를 무리로부터 완벽히 고립시키겠다는 의도이므로 사회적 자살과 다름 없다고 말한다.

고립과 자살이라는 단어를 살짝 순화하면 절망과 포기가 된다. 안데스 씨는 아줌마들의 화려한 패션 뒤에 가려진 씁쓸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번은 옷을 사기 위해 지인과 함께 시장에 간 적이 있어요. 저는 몸뻬에 꽃무늬 티셔츠, 전대를 차고 있었고 같이 간 사람은 30대 초반이 흔히 입는 복장을 하고 있었어요. 저와 비슷하게 입은 노점상 아주머니에게 둘 중에 누가 더 촌스러우냐고 물었더니 제가 더 촌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들은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런 꽃무늬 옷을 입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촌스럽고 미적으로 뛰어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입는 듯해요. 꽃무늬 패션도 엄연한 서민 문화인데 그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것을 부정한다니 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꽃무늬가 그들을 촌스럽게 만든 것인지, 그들이 꽃무늬를 촌스럽게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붉고 푸른 꽃무늬가 김치 국물을 닦아도 간장을 흘려도 끄덕 없는 부지런한 무늬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질색하는, 외국인 또는 예술가들만이 관심을 기울이는 꽃무늬의 흐드러진 향연에 파묻혀 아줌마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내용 참고:
미니멀 아트의 제양상과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 (이인숙)
한국인 자동차 95.2%의 컬러 심리학 (국민일보 2010.3.1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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