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코리아 2010] 현대인의 불편해소 다양한 작품들… 'G20 베스트 디자인' 한자리에

독일연방공화국디자인상을 수상한 센스 XL
필요는 발명을 낳고 짜증은 디자인을 낳는다.

독일의 SENZ umbrellas BV사가 만든 '폭풍 우산'의 모양에서는 비가 들이치는 바람에 새로 산 바지가 흠뻑 젖은 채 사무실에 들어서며 우산을 터는 직장인의 짜증이 그대로 느껴진다.

우산 중앙에 있어야 할 꼭지를 옆으로 배치하고 우산살을 비대칭으로 디자인해, 마치 폭풍에 날아가기 직전의 찰나를 포착한 것 같은 '센스 XL'은 손잡이를 쥔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지 않아도 어깨가 젖지 않을 뿐 아니라 무려 시속 100km의 폭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디자인 되었다.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학 학생들이 가운데 손잡이가 달린 우산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우산의 표준을 다시 규정하기 위해 만든 이 제품은 독일연방공화국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늦은 밤까지 책을 읽다가 잠이 솔솔 몰려올 때쯤 굳이 다시 일어나 불을 꺼야 하는 짜증, 시장에 나와 있는 천편일률적인 mp3 모양 때문에 존재의 함몰을 느껴야 하는 짜증 등등 현대인의 다양한 짜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디자인 제품들이 '디자인 코리아 2010'을 통해 선보여졌다.

인도디자인카운슬이 선정한 탁상 조명 '비피엘스터디라이트'
G20 국가 디자인 수상작 특별 전시

디자인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디자인 코리아 2010'이 지식경제부 주최, 한국디자인진흥원 주관으로, 지난 12월 7일부터 12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렸다.

국내에서 열리는 다양한 디자인 행사들을 통합해 유례없이 대규모로 개최된 이번 행사에서는 특별히 G20 정상회의를 기념, G20 국가 중 '굿 디자인 상'을 운영하는 14개 국의 수상작 제품을 모은 'G20 베스트디자인'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독일, 프랑스, 인도, 일본, 캐나다 등 디자인 선진국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 외에 올해 '우수 디자인(GD')으로 선정된 수상 후보작 55점과 디자인전문회사, 차세대디자인리더, 영디자인스튜디오 등을 하나로 통합한 '디자인 커넥션', 차세대 디자이너 등용문인 '제 45회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디자인 영재를 발굴하는 '제 17회 한국청소년디자인전람회',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디자인이 만나는 '코리아 디지털디자인 국제공모전 2010'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중국레드스타디자인상을 수상한 이노-B2 바비 MP3
"지금 디자인 계의 최대 화두는 융합입니다. 아이폰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인터넷과 전화를 할 수 있는 단말기가 기존에 각각 존재하고 있었지만 아이폰은 그 기능들을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죠. 모든 새로운 가치와 기회는 융합을 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이영선 본부장의 말에 따르면 디자인은 형태를 결정하는 역할에서 점점 더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외관을 짓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 어떤 기능을 부여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디자인의 영역으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특히 예술 작품이나 공예품처럼 보이는 디자인에 첨단 기술을 부여한 제품들이 최신 트렌드다. 클래식한 외관과는 달리 한 손가락으로 들 수 있을 만큼 가볍게 만든 자전거라든지, 패널 두께가 0.8mm에 불과한 초박형 3D TV가 그 예다.

제품 디자인에서 시스템 디자인으로

이번 행사에서는 친환경 디자인부터 시작해 보는 사람의 웃음을 자아내는 디자인, 소비자가 참여할 수 있는 디자인, 기득권층을 풍자하는 디자인 등 디자인의 다양한 역할을 시험하는 재미있는 제품들이 선보였다.

이상진 디자이너의 '북마크(Bookrest Lamp)'
G20 베스트디자인 관에 전시된 브라질의 체스 게임 '폴리티카겜 체스'의 패키지는 피자 상자 모양이다. '무슨 일이든 피자면 그냥 해결된다'는 브라질의 속담을 이용해 자국의 부패한 정치인들을 풍자한 것. 중국 레드스타인상을 수상한 바비 MP3는 여성들이 사용하는 콤팩트 같은 핑크색 케이스에 내부에는 거울까지 달아 놓았다.

세계 최초의 여성 전용 MP3답게 비주얼에 신경 쓴 한편 대용량 디스크, 어학 기능 지원, 자동 가사 지원 등 기능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케루케루라는 이름의 양념통은 통 위에 덮개 대신 동그란 스푼이 달려 있다.

통을 들어서 옆으로 기울이면 따로 숟가락에 덜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만 쪼르륵 따라낼 수 있어 편리하다. 색깔도 노랑, 하양, 연두, 오렌지 등으로 상큼한 색을 선택해 주방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이 밖에도 인테리어와 가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액자 형 난로, 직육면체 책꽂이에서 탈피해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린 대나무 책꽂이 등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되었다.

차세대디자인리더들이 모인 곳에서는 좀 더 실험적이면서 생활에 밀착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디자이너 이상진의 북마크(Bookrest Lamp)는 책을 전등갓으로 활용해 관람객들의 작은 웃음을 자아냈다.

인도디자인카운슬이 선정한 대나무책꽂이 '트러스미'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집의 몸체처럼 생긴 조명 위에 펼친 채로 책을 얹으면 자연스럽게 책이 지붕이 되면서 전등갓 역할을 하게 된다. 동시에 조명은 어디까지 책을 읽었는지 표시해주는 책갈피 역할을 수행한다. 이 제품은 현재 영국의 디자인 브랜드인 suckUK사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온라인을 통해 전세계로 판매되고 있다.

디자인 영재를 발굴하는 청소년디자인전람회에서는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영원한 우유'라는 작품으로 초등부 은상을 받은 홍성민 어린이는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는 사각의 케이스를 만들고 그 안에 얼음을 채워 우유가 상하는 것을 막고 어디에서나 휴대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스 박스는 물론이고 초경량 급속 냉동제까지 출시된 세상에서 초등학생의 아이디어는 우습게 보이지만 기존의 제품들에 쉽사리 기대려 하지 않았다는 점, 친환경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 200mm 우유뿐 아니라 500mm도 넣을 수 있도록 고려했다는 점, 시적인 제목을 붙였다는 점에서 현 디자인 트렌드에 부합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영선 본부장은 향후 디자인 코리아를 통해 디자이너와 기업이 지속적으로 만나 디자인과 타 산업과의 연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디자인이 부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도 팽배합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10%만이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죠. 그러나 요즘 디자인은 모든 산업 분야에서 필수불가결의 요소입니다. 뉴욕의 디자인 전문회사 아이데오에서 성공적으로 론칭한 금융 서비스 프로그램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얼마를 결제하면 잔액이 입금되는 식의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손으로 만져지는 오브제가 아니라 금융 프로그램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디자인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금융, 사회 과학, 심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이 서비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타 분야 전문가들을 매니징하고 네트워킹을 담당하는 중추적인 역할이 디자인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증명하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벨기에 헨리반데벨데상을 수상한 종이 분쇄기 '네오'

벨기에 헨리반데벨데상을 수상한 '조지 마닐라 나비레트' 주얼리
중국레드스타디자인상을 수상한 양념통 '케루케루'
독일연방공화국디자인상을 수상한 액자형 난로 '가야'
변동진 디자이너의 일상풍경시계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