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호텔이란] 프라이빗 파티, 호텔 아트페어 열고 한식 세계화 주도

서울아트페스티벌
스물 아홉 살의 회사원 최현정 씨는 지난해 연말 모임을 위해 서울 시내의 한 호텔방을 예약했다. 미혼여성의 식당 아닌 객실 예약은, 과거라면 색안경을 끼고 볼 법한 일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그녀가 하룻밤을 보낼 사람은 남자가 아닌 5명의 여자친구들. 각자 회사에 다니느라 자주 만나지 못했던 고등학교 절친들은 호텔에서의 하룻밤을 위해 비용을 갹출했다. 밤새 와인을 마시고 밀린 이야기를 털어 놓느라 그들의 프라이빗 파티는 밤새 잠들지 않았다.

반들거리는 대리석으로 채워진 로비, 가지런히 자리잡은 냅킨과 식기들, 구김 한 줄 없이 매끈하게 정돈된 침대보, 친절이 몸에 배인 호텔리어들까지, 호텔을 떠올릴 때 그려지는 이미지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만큼 마음 속엔 거리감이 느껴지던 호텔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여행객들의 숙식 공간 혹은 소수의 부호들을 위한 감추어진 유희의 공간이던 그곳은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의 놀이공간이자 문화예술공간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연말의 프라이빗 파티를 호텔에서 하는 젊은 여성들만큼이나 설이나 추석 등의 명절이 되면 도시의 가족 혹은 싱글 투숙객도 늘어난다.

아시아 탑 갤러리 호텔 아트페어
짧은 명절 연휴 동안 귀성할 수 없거나 해외여행이나 고향 길을 택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의 휴식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이 주 고객이다. 이 기간 동안 남아도는 객실을 채우기 위해 명절 패키지 상품을 쏟아냈던 호텔의 마케팅도 호텔과 도시인이 가까워지는 데 큰 몫을 했다.

쾌적한 객실과 식당은 물론 카페, 사우나, 수영장, 마사지 샵과 아트 샵 등을 고루 갖춘 호텔은 여가를 즐기며 휴식을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편의시설이 한 곳에 집약된 도시의 축소판과도 같다.

이 같은 흐름과 더불어 호텔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문화행사를 비롯한 아트페어와 한식 세계화 주도이다. 호텔에서 열리는 각종 상품의 런칭쇼에 오케스트라 초청 연주회가 열리는가 하면 컨벤션 센터에서 주로 열리던 아트페어가 호텔 객실로 파고들었다. 정부가 주도하던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는 호텔의 한식당과 자체 연구센터를 통해 확장되어가고 있다.

물 건너온 호텔 아트페어, 한국에서 붐

진원지는 미국이었다.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작가들이 작품이 즐비한 자신의 방으로 일반인들을 초대한 것이 그 시작. 작가들이 직접 작품을 해설해주고, 컬렉터들의 반응을 바로 살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되었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의 R&D 센터
처음엔 오픈 스튜디오 형식이었지만 여러 갤러리가 참여하는 아트페어 형식으로 바뀌어 미국의 마이애미의 브리지 아트 페어, 스코프 아트 페어, 일본의 아트 오사카, 대만의 영 아트 타이페이 등 미국과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최근 1~2년 사이 한국으로 들어온 호텔 아트페어 역시 호응을 얻으며 하나의 붐처럼 이어지고 있다.

객실의 벽과 침대 위, 화장대와 심지어 욕실까지 사람과 옷이 아닌,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메워졌다. 작품을 이렇게 놓아도 될까 싶지만 오히려 내 방에 놓인 작품처럼 보이고, 예술의 권위가 느껴지지 않아 작품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2009년 여름,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AHAF)'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교류와 활성화를 위해 아시아 각국의 갤러리와 미술협회가 참여한 AHAF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당초 일본에서 시작해 매년 아시아 국가에서 순차적으로 기획된 전시는 이제 국내에서 매년 여름마다 만나게 됐다.

지난해 여름에도 열린 AHAF는 아시아 70여 갤러리의 400여명의 작가, 3000여 점의 작품이 신라호텔 90여 객실에 자리잡았다. 호텔의 프라이빗한 성향은 오히려 딜러와 컬렉터에게 모두 만족감을 주고 있으며, 새로운 컬렉터 층을 개발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의 AHAF는 관람객수 8200명을 동원, 판매수익 25억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신진작가들의 지원 육성을 위한 '도어즈 아트페어 2010'이 열렸고, 올해 1월 말까지는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에서 국내 성화작가 35명의 작품이 전시되는 '더 크리스천 아트 페어가 열린다.

지난해 시작된 (SAF)도 올해 1월 노보텔앰버서더에서 아트페어를 열었다. SAF의 전시위원장인 정국명 갤러리 시선 대표는 "아트페어의 문턱을 낮추고 새로운 컬렉터 발굴에 긍정적"이라며 호텔 아트페어를 평가했다. 작게는 1000평, 크게는 2000평에 이르는 기존 컨벤션 전시장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모두 보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 수직으로 구성된 입체적인 호텔 공간은 오히려 호기심을 부추기며 관람객들을 끌어들인다. 여기에 기존 아트페어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아트상품을 호텔 아트페어에서는 전시와 판매가 가능해 아트페어에 대한 문턱도 크게 낮췄다. 매년 두 차례 호텔에서 아트페어를 개최한다는 정국명 위원장은 올해 7월에는 리츠 칼튼에서 열 예정이라고 전했다.

한식 세계화에 특급 호텔들 나서

지난해 11월에 열린 G20 정상회의,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는 G20에 참석한 정상 배우자들에게 '김윤옥의 한식이야기(HANSIK Stories of Korean Food by Kim, Yoon-Ok)'라는 책을 선물했다. '한식세계화추진단'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김 여사는 이 책에 한국사람들이 즐겨 먹는 나물, 찌개, 잡채, 불고기 등의 음식을 소개했다.

2008년 10월 정부가 '한식의 세계화'를 선포된 이래, 2009년 한식세계화추진단이 발족됐다. 2010년 3월에는 한식재단도 출범했다. 관련 정부 정책도 농림수산식품부를 중심으로 일원화되면서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시금 한식이 한국 문화의 세계화 이슈의 중심에 섰다. 세계 정상들의 오찬과 만찬을 준비하는 특급호텔들은 각자 최고의 한식 요리를 준비했고, 그 여파가 장기적인 한식 세계화에 호텔들이 적극적으로 가세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서울의 한식당 '무궁화'가 최고층인 38층으로 확대이전하며 리뉴얼 오픈했다. 약 50억 원과 1년을 투자한 결과물이다. 그런가 하면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은 지난해 11월, 업계 최초로 한식 세계화를 위한 R&D 센터를 오픈했다. 1989년 호텔 내 김치 연구실을 개설한 데 이은 한식에 대한 적극적인 행보다.

7명의 현직 조리장으로 구성된 이 R&D센터는 미국과 중국을 시작으로 한식을 프랜차이즈할 계획이다. 특히 시장 잠재력과 성장력이 크고, '탕'과 '구이'문화가 한국과 유사해 올해 한식 프랜차이즈로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R&D센터의 이춘식 팀장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한식 메뉴 개발만 하지는 않는다. 메뉴 전체의 콘셉트를 잡고, 한식 조리와 운영 매뉴얼, 주방 시스템과 고객 만족도 모니터링까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고 밝혔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