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믹스 4파전에, 티백과 드립백 커피, 캡슐로 즐기는 에스프레소까지

1:2:1.5, 2:2:2, 2:2:3… 숫자들만 봐도 군침이 돌고 정신이 번쩍 든다면 당신은 진정한 한국인이다. 이들은 바로 시중에 내려오는 '다방커피'의 황금비율. 커피와 프림, 설탕 한두 스푼을 구미에 맞게 섞어 물에 타면 입에 착착 붙는 달고 고소한 맛이 만들어졌고, 이 맛은 커피 믹스에 담겨 집 안에 파고 들었다.

아침에 잠을 떨칠 때, 손님을 맞을 때, 청소를 끝내고 잠깐 쉴 때, 저녁 식사 후, 회사에서 남겨 온 일을 마무리하는 우울한 밤에도 커피 믹스는 동반자이자 활력소가 되었다.

하지만 이 오래된 관습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한국인의 커피 취향을 통일한 한 브랜드의 커피 믹스를 향해 신참 커피 믹스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맛과 향이 천차만별인 티백과 드립백 커피가 찬장의 새 식구가 되었다. 캡슐만 넣으면 에스프레소가 나오는 머신도 식탁 한 구석에 등장했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는 곧 커피 믹스, 커피 믹스의 맛은 곧 다방 커피라는 공식이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엌을 향한 커피 산업의 구애가 뜨거운 지금, 집에서 맛볼 수 있는 커피는 얼마나 다양해졌을까.

커피 믹스에서 티백 커피까지, 집 커피의 지각 변동

아름다운 커피의 드립백커피
집 커피의 절대 강자 커피 믹스계의 지각 변동은 대형 마트에서 감지되고 있다. 시장의 70%를 차지한 동서식품의 맥심과 2인자 한국네슬레의 테이스터스초이스의 양자구도에 롯데칠성의 칸타타와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가 도전장을 내민 것. 작년 하반기 출시된 칸타타 커피믹스와 최근 나온 프렌치카페 커피믹스가 속속 대형마트에 입점하면서 경쟁이 본격화될 참이다.

그 중 프렌치카페 커피 믹스는 프림에 진짜 우유를 넣어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 커피 믹스에 포함된 프림에는 우유 대신 우유 맛이 나는 식품첨가물인 카제인나트륨이 들어가 있었다. 우유를 물에 잘 녹는 프림으로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웠을 뿐 아니라, 커피에 섞였을 때 향이 좋지 않았기 때문. 남양유업은 무지방우유로 프림을 제조하는 데 성공, 이를 이용한 커피 믹스를 내놓았다.

커피는 좋지만 식품첨가물은 찝찝했던 커피 믹스 마니아들은 부지런히 이 제품을 시음한 후 인터넷에 후기를 올리고 있다. 그 맛이 어떨까. 뒷맛에 대한 언급이 많다.

"개운하다", "부드럽다", "텁텁하지 않아 양치질을 생략했다" 등의 평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커피 믹스보다 연해서 커피로서의 매력은 약하다"는 평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제품이 믹스 커피에 대한 한국인의 입맛을 바꿔 놓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커피 믹스만큼이나 간편하지만 혀보다 코를 더 유혹하는 티백 커피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탐앤탐스, 홀리스 등 커피전문점에서는 별다른 기구 없이 드립 커피의 향을 즐길 수 있는 티백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 커피믹스
아름다운가게에서 나오는 아름다운커피 제품들은 향만큼이나 아름다운 뜻을 품고 있다. 네팔과 페루 등 커피 생산지와의 공정무역을 통해 수입된 커피를 원료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선물, 안데스의 선물, 킬리만자로의 선물 등 세 종류의 원두를 각각 싱글백, 드립백 형태로 맛볼 수 있다. 싱글백은 보통 티백과 같고, 드립백은 커피가 담긴 백을 벌린 후 뜨거운 물을 부어 내려 먹도록 만들어져 있다. 싱글백은 가벼운 커피를 원하는 이에게, 드립백은 진한 커피를 원하는 이에게 적합하다.

에스프레소코리아에서 판매하는 유기농커피티백은 국내 최초로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커피 재배시 독성이 있는 제초제나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쓴 맛을 최소화하고, 기호에 따라 단 맛을 조절할 수 있도록 떼어낼 수 있는 설탕 부분이 붙어 있다.

맛과 향은 물론 건강과 커피를 마시는 의미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선택의 범위가 넓어진 셈이다.

인스턴트 커피를 활용한 홈 베이킹

인스턴트 커피의 간편함은 심지어 베이킹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요리하는 많은 여자들이 시중 빵과 과자에 들어가는 커피엑기스 대신 인스턴트 커피를 활용하고 있는 것. 그것은 단지 부엌 찬장에 늘 인스턴트 커피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카 치즈 토스트
푸드스타일리스트 김보은 씨는 "인스턴트 커피를 넣으면 커피 엑기스를 넣었을 때보다 향이 은은하고 맛이 고소하다. 향과 맛이 진하지만 다른 화합물이 들어간 커피 엑기스보다 안심하고 쓸 수 있는 재료"라고 말했다.

김보은 씨가 블로그(www.bongsik.com)와 맥심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 '그녀들의 커피이야기'(cafe.naver.com/coffeeinlife)에 올린 레시피에서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커피 베이킹을 골라 봤다.

1. 커피 가루 2ts을 뜨거운 물 1ts에 녹인다. 버터 20g에 꿀 1ts을 넣은 후 커피액과 함께 섞는다.
2. 식빵 3장 사이 사이에 슬라이스 치즈를 끼운 후 사선으로 잘라 4조각으로 만든다. 각각의 조각에 커피 버터를 바른다.
3.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약 10~15분간 굽는다.

모카 팬케이크
1. 커피 가루 2ts을 뜨거운 물 3ts에 녹인다.
2. 버터 25g을 전자렌지에 돌려 녹인다.
3. 달걀 2개와 핫케익믹스 가루 160g, 우유 20g을 넣고 섞는다. 여기에 커피액과 버터를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저어준다.
4. 프라이팬에 굽는다.

원터치로 에스프레소를, 캡슐커피

"이 캡슐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에스프레소가 나온단 말야?"
2년 전 처음 본 캡슐커피머신은 '에스프레소 자동판매기' 같았다. 얼리어답터 친구의 집에서나 만져볼 수 있던 신기한 물건. 하지만 에스프레소 커피의 인기가 높아지며 캡슐커피머신에 대한 소문도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인기 있는 혼수 가전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캡슐커피머신의 원리는 간단하다. 로스팅, 그라인딩한 커피 원두를 담은 캡슐을 머신에 넣으면 캡슐에 구멍이 뚫리고 압력이 가해져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것. 다른 에스프레소머신보다 작동이 간단하고, 커피 맛이 일정하게 나오기 때문에 누구라도 쓸 수 있다.

이를테면 커피의 'ㅋ' 자도 모르는 초등학생 딸에게 "아빠에게 에스프레소 한 잔만 만들어 다오"라고 부탁해도 실패할 염려가 없다는 뜻이다.

크레메소의 캡슐커피머신 터치
이런 편리성 때문에 국내에서도 캡슐커피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시판되고 있는 캡슐커피 브랜드로는 네스프레소와 일리, 라바짜, 크레메소 등이 있으며 최근 네스카페돌체구스토와 커피빈이 합세했다.

머신 가격은 15만 원대에서 60만 원대까지 다양하며, 캡슐 가격은 개당 500~1000원 선. 커피 전문점의 커피를 경제적으로 즐기고 싶은 이들이 선택할 만하다.

캡슐커피의 다양한 구색도 커피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브랜드마다 맛이 다른 것은 물론, 다양한 농도와 향, 원산지를 지닌 캡슐이 출시되어 있다.

네스프레소에서는 총 16가지 캡슐이 나오며, 대부분의 브랜드가 기본 4~5가지 캡슐을 갖추고 있다. 디카페인 제품과 티 제품을 선보이는 브랜드도 있다. 커피빈은 기존 매장에서 즐길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에스프레소 4종류, 드립 커피 4종류, 티 3종류를 캡슐로 판매할 예정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자신에게 맞는 브랜드와 캡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캡슐커피에 입문하려면 사전 답사와 시행 착오가 필수다. 커피애호가들의 말처럼 "자신의 입맛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몇몇 브랜드들은 시음할 수 있는 부티크 매장을 마련해 놓고 있다.

네스프레소의 캡슐커피머신 라티시마 프리미엄
네스프레소는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과 신촌점 등 9개 장소에서, 크레메소는 롯데백화점 청량리점과 부산 광복점 등 5개 장소에서 부티크 매장을 운영 중이다. 커피빈은 1월 27일 서울 코엑스몰 내에 1호 매장을 오픈한다.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경험자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것도 실패 확률을 낮추는 좋은 방법이다. '커피마루'(cafe.naver.com/coffeemaru) 등 커피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에서 캡슐커피 체험기를 검색해 볼 것. 커피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일리나 라바짜 제품이 진한 향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하지만 두 제품 모두 캡슐 가격이 다른 브랜드보다 비싼 편이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품질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다른 브랜드를 권하는 이들도 많다. 홈카페 관련 블로그(homeespresso.tistory.com)를 운영하는 이상선 씨는 "가격에 비해 맛이 우수한 브랜드는 네스프레소와 이탈리코다.

하지만 맛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직접 시음해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커피 관련 블로그(blog.naver.com/cooker21)를 운영하는 이재훈 씨 역시 "일리와 라바짜 캡슐은 맛이 진한 편이고 네스프레소는 맛이 연한 편이다. 요즘 캡슐커피들은 브랜드마다 각자의 제조 비법이 있어서 맛과 향이 다 다르다"고 말했다.

커피머신의 경우 브랜드마다 성능이 크게 다르지는 않는다. 가격에 따라 예열 시간이나 소음이 조금씩 차이가 날 뿐이다. 다만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가 아닌 카페라테와 카푸치노를 주로 마신다면 우유 거품 만드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네스프레소의 라티시마, 시티즈 앤드 밀크에는 우유 거품 기능이 있어 카페라테와 카푸치노를 손쉽게 만들 수 있고, 커피빈은 우유 거품 내는 머신을 따로 선보였다. 라바짜는 캡슐커피머신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우유 가루 캡슐을 판매하고 있다.

캡슐커피머신 꼼꼼히 고르기

캡슐커피머신을 사기 전 아무리 꼼꼼히 따져 본 당신이라도 써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들이 있다. 먼저 써본 블로거들에게 유의해야 할 점을 물었다.

첫째, 커피머신보다는 캡슐을 먼저 따질 것. 이상선 씨는 "캡슐커피에서 머신의 성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브랜드마다 머신은 캡슐의 맛을 가장 잘 끌어내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캡슐의 맛과 다양성을 기준으로 브랜드를 선택한 후 예열 시간, 우유 거품 기능 등을 따져 머신 종류를 고르는 것이 순서다.

둘째,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된 제품을 살 것. 이재훈 씨는 "캡슐커피머신을 구입할 때 중요한 것은 A/S"라고 말했다. 캡슐커피머신은 잔 고장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저렴하다고 해외 구매대행 서비스를 통해 머신을 구입할 경우 A/S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머신을 해외 본사까지 보내야 하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셈. 따라서 브랜드를 선택할 때 A/S가 잘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셋째, 유지비를 고려할 것. 집에 머신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커피를 자주 마시게 된다. 그러다 보면 캡슐 구입비가 생각보다 늘어나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하루에 커피를 5잔 마시는 경우 한 달에 7만~15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이재훈 씨는 "캡슐커피 회사는 머신보다는 캡슐을 판매해서 이윤을 올린다. 머신 가격을 내리고 캡슐 가격을 올리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넷째, 우유와 섞어 마실 때는 강도가 높은 캡슐을 선택할 것. 카페라테와 카푸치노 등 우유를 섞어 마시는 커피의 경우 에스프레소 본연의 맛과 향이 덜 느껴질 수 있다. 자신이 주로 마시는 커피 종류에 따라 캡슐의 강도를 고르는 것이 좋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