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패션 대신 스타일 통일하고 커플 속옷으로 은밀한 공유

잭앤질
"나 잡아봐라~ 잡으면 용~치~"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온 한 신혼부부가 해변을 뛰어다니며 할 법한 대화다. 그럼 두 사람의 의상을 생각해 보자. 분명 커플룩을 차려입고서 '우린 부부랍니다'라는 무언의 인증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신혼여행지에서의 '같은 옷 입기'는 주변에서 어느 정도 무마해주는 게 통상적인 분위기다. 두 사람만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커플룩만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게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혼여행을 다녀와 찍은 사진을 볼라치면, 대부분은 "아이고, 유치해~"라는 말을 한다. 우리는 왜 유치함을 알면서도 굳이 커플룩을 고집했을까? 거리에서 자기하고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만 봐도 부끄러워 안달을 못하면서 말이다.

커플룩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2월 14일 연인들의 날인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와도 거리에선 커플룩을 입은 연인을 찾아내는 게 이젠 쉽지 않아졌다. 조심스럽게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입은 커플들은 종종 볼 수 있어도 대놓고 커플임을 증명하는 옷은 피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커플들에게 커플룩이라는 말은 이제는 좀 촌스럽게 들린다. 요즘 젊은 커플들은 커플룩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똑같은 건 싫다니, 그럼 어쩌란 거지?

코데즈컴바인
은밀하고 대범하게

"성별에 따른 의복의 차이나 분화는 없어지면서 양성이 함께 입을 수 있는 남녀공용 의복이나 커플룩, 또는 남성적 이미지를 드러내는 스타일의 옷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남녀 간의 차별이 약화되어가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의상의 변천구조는 고대사회의 남녀 공용 의복에서 출발했으며, 중세에 이르러 남녀 구별이 시작됐고 현대에 다시 남녀 옷 구별의 차이가 무너지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남녀차별이 해소된 사회일수록 남녀 의복의 스타일이 서로 닮아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의복의 변천사는 각 시대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커플룩 하나가 갖는 의미가 역사적으로 봤을 때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 <금기의 수수께끼>의 저자 최창모 씨는 '남녀 의복 교환착용의 금기'의 역사를 성서에 명시된 부분을 통해 분석했다.

그런데 점점 남녀의 구별이 없어진 의복이 커플룩을 낳고, 이제는 그 커플룩을 거부하며 더 변모한 스타일을 꾀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겉이 똑같은 것이 아니라, 속을 같이 하려는 젊은이들을 보면 중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데니즌 프로 리바이스
"과감한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평소에 입지 않았던 화려한 제품을 선택하는 연인들이 많죠. 특별한 날에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데 이것처럼 은밀한 게 없잖아요."

이것이란 무엇인가. 바로 속옷이다. 지난 2000년대 초 속옷업계를 강타한 게 커플속옷 아이템이었다. 대부분의 국내 언더웨어 브랜드들은 앞 다투어 속옷의 커플화를 이뤄내는 데 노력했다.

입에 담기에 민망한 속옷은 커플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층에게 흡수됐다. 부부가 아니라 커플, 연인들 말이다. 이들은 속옷을 서로 같은 색상과 디자인으로 공유하면서 은밀한 비밀을 나눈다. 커플속옷은 출시된 이후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여성의 브라와 팬티, 남성 팬티 등 3종 세트가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이면 더욱 반응을 일으킨다. 지금까지도 커플속옷의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들이 줄기차게 출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스 언더웨어 관계자는 "커플속옷은 연인만이 선물할 수 있는 특별하고 은밀하고 대범한 아이템"이라고 말한다. 서로의 은밀한 부분까지 공유하고 싶은 연인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2009년 '보여주고 싶은 속옷'을 출시한 게스 언더웨어는 커플속옷이 더 활기를 띠게 한 계기가 됐다.

특히 브랜드 네임이 들어간 팬티 밴드라인이 청바지 등 허리 부위에서 노출되자 속옷커플은 동질감을 선사하며 사랑받았다. "같은 속옷을 입었다는 공유감과 그것을 일부러 노출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커플패션은 커플들에게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줬을 것"이라는 게 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커플, 티 낼 필요 없잖아?

"쌍둥이야, 연인이야?"

똑같은 커플룩을 입고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니다. 옷이 똑같은 것은 고사하고 개성조차 없는 사람들로 비춰졌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 커플들에게는 일률적인 쌍둥이 패션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리면서 자연스럽게 커플임을 드러내는 센스가 필요하다.

최근 커플룩의 경향도 같은 색상과 디자인에서 벗어난 다양한 시도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리바이스트라우스의 김민지 과장은 "커플룩이라고 해서 일률적으로 정해진 틀에 맞추는 패션은 유행이 지났다. 이제는 스타일에 통일감을 주거나 포인트를 같은 곳에 두는 스타일링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게스언더웨어
같은 색상의 커플제품은 촌스러워 보일 수 있다. 이때 동일한 소재에 컬러와 프린트에 차이를 두면 세련된 커플룩을 완성할 수 있다. 만일 모직코트로 커플룩을 연출한다고 하면, 남자는 모노톤의 그레이 컬러로, 여자는 큰 격자 체크무늬의 레드 컬러를 선택한다.

두 사람은 다른 색상을 입었지만, 같은 디자인을 입고 컬러에 포인트를 주어 커플이지만 커플룩 같지 않은 패션을 연출할 수 있다. 커플임을 숨기는 게 아니다. 단지 촌스러움을 감추려는 것이다.

"가을 최고 인기 아이템인 니트도 편안하면서 세련된 여행 패션을 연출할 수 있다. 연인과 함께 커플룩으로 입기에 좋으며, 상하의를 비슷한 색상으로 입는 것이 무난하다. 데이트할 때 자연스러운 코디법으로 상대 여성을 돋보이게 한다면 금상첨화다. 차분한 저채도 색상의 의상이나 파스텔 톤의 온화한 스웨터와 면바지 정도면 무난하다.

또는 그녀가 선호하는 스타일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원색적인 커플룩은 될 수 있는 한 피하는 것이 좋다. 80년대 신혼부부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장신구는 그녀가 크게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 정도의 저렴한 커플링을 같이 선택하여 착용하는 것이 좋다."

<지금 당장 넥타이를 잘라라>의 저자 정순원 씨는 '커플룩도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촌스러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쌍둥이 패션을 경멸하고 액세서리로 커플임을 밝히는 연인들이 많아졌다.

주얼리 액세서리나 신발, 가방 등을 맞춰 착용해 커플룩을 시도하는 것이다. 촌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시작한 커플룩의 변화가 세련된 스타일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