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테이블웨어, 한국인 첫 대상

도쿄 테이블웨어 대상 수상작 '휴'
'그릇까지 먹는다'는 말이 있다. 음식이 너무 맛있거나 오래 굶주린 나머지 그릇까지 씹어 먹을 기세라는 말이지만, 그릇이 음식 맛에 끼치는 영향력을 뜻하기도 한다.

식사를 하는 동안 발휘되는 오감 중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건 미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시각, 미각, 후각, 촉각, 청각의 순이다. 식사 중 시야에 잡히는 그릇과 수저의 색, 식탁의 나뭇결이 얼마나 은밀하게 우리의 식욕을 떨어뜨려 왔는지 혹은 부추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월 13일 막을 내린 '도쿄 테이블웨어 페스티벌'에서 한국인이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세계 각지의 도자 전문가, 테이블 세팅 전문가들이 몰려드는 이 행사에서 지난 19년간 일본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이 대상을 수상한 것은 최초다.

참가자의 이름과 출신 국가가 완벽하게 가려진 채 진행된 블라인드 심사 결과 한국인, 그것도 전문가가 아닌 학생이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사실에 현지 관계자들도 놀라움과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인공은 청강문화산업대학 푸드스타일리스트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로, 이정남, 김재두, 정연호, 김미경, 강진주, 5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그들은 이번 대회의 테마인 리치 캐주얼(rich casual)에 맞게 '휴(休)'라는 제목으로 풍요롭고 편안하며 자연스러운 식탁을 차려냈다.

도쿄 테이블웨어에서 대상을 수상한 (좌로부터) 이정남, 강진주, 정연호, 김미경, 김재두.
테이블 코디네이션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국내에서 푸드 스타일링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일단 기본적으로 도쿄 테이블웨어 페스티벌 참가를 목표로 한다고 보면 된다. 창작 도자기 부문과 테이블 코디네이션, 두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는데, 우리가 대상을 수상한 테이블 코디네이션은 전문가와 아마추어를 구분하지 않고 선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제까지 한국인의 입선이나 가작은 꾸준히 나왔지만 아마추어의 대상 수상은 처음이다.

어떤 점이 수많은 전문가들을 제치고 심사위원의 눈길을 끌었다고 생각하나

온갖 화려하고 비싼 테이블웨어(tableware)들 사이에서 비교적 저렴한 식기를 이용해 실용적이고 친환경적인 스타일링을 한 것이 참신하게 보인 것 같다. 와사라는 브랜드의 1회용 종이 그릇을 사용했는데 8개 한 세트에 1만 5000원 정도다.

일본은 음식이든지 테이블웨어든지 시각적으로 극도로 화려한 것들이 많은데 그 사이에서 이런 소박함이 오히려 눈에 띈 듯하다. 와사의 종이 그릇은 일반적인 1회용 용기와 달리 땅 속에서 금방 분해가 되기 때문에 우리의 주제인 에코와도 잘 맞아 떨어져 선택했다.

나무로 만든 테이블 매트 한 켠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고 커피콩을 넣어 식물을 심은 것도 좋은 아이디어로 평가받았다. 아무리 보기 좋더라도 먹을 것을 올리는 식탁 위에 흙이 있는 건 실용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색감이 비슷한 커피콩으로 흙을 대신해 화분처럼 만든 것이다. 이런 모양의 매트라면 굳이 식사 때가 아니더라도 평소 주방 한 쪽에 놓고 화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 제목 '휴(休)'는 무슨 의미인가. 휴식 같은 식사를 추구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누구나 실생활에 쉽게 접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비싼 레스토랑의 테이블 세팅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시도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인, 그러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다.

일반적으로 재활용이나 친환경이 주는 이미지는 모던이나 심플과는 좀 거리가 있다. 모던한 느낌에는 은 소재 식기나 레드, 블랙 같은 강렬한 색깔이 주로 쓰이는데, 화이트, 아이보리, 브라운, 그린의 연한 색깔과 나무 소재로 현대적인 느낌을 구현한 것이 새롭게 평가된 것 같다.

5명이 공동 작업을 하다 보니 갈등이나 시행 착오도 있었을 것 같다

싸우기도 숱하게 싸웠고 콘셉트도 계속 바뀌었다. 아마 준비 기간이 더 연장됐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스타일링이 나왔을 것이다. 테이블 매트 같은 경우도 사실 이렇게 도마처럼 두꺼운 모양이 아니라 더 얇게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미리 모양을 예측하는 것이 어려웠고 기술적인 한계로 수정도 힘들었다.

주어진 조건을 가지고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것이 스타일리스트의 능력이기 때문에 매트에 맞춰 다른 부분들을 바꿨다. 계속 보니 두꺼운 매트가 더 마음에 들더라.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식공간 전반을 연출하는 사람이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식탁을 그려달라.

이정남: 내추럴한 게 좋다. 잘라낸 나뭇결의 단면이 온통 드러나는 식탁 위에 향신료, 꽃만으로 간단하게 장식해 시각적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식탁을 꾸미고 싶다.

김미경: 편안함 한 구석에 재미가 있으면 좋겠다. 이번 작품의 커피콩 화분처럼 작은 아이디어가 반짝여서 음식을 먹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식탁이 좋다.

김재두: 영국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식탁을 준비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봤다. 화분과 정원에서 허브와 채소를 뚝뚝 잘라 음식을 만드는 것처럼, 나무 테이블에 나뭇가지를 잘라 만든 젓가락 등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식탁을 만들어보고 싶다.

강진주: 테이블과 그릇, 포크, 나이프, 글라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식탁이 꿈이다. 현대적인 선이 잘 살아나는 식탁이 내 취향이다.

정연호: 살림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꾸미지 않은 식탁이 가장 매력적인 것 같다. 여기에 작은 센터피스(식탁 장식물) 하나로 분위기를 확 바꾸는 것이 재미있다.

우리나라는 테이블웨어에 대한 개념이 이제 막 태동하는 수준이다. 유독 이렇게 늦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즐기기 위해 먹는 문화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맛있게 먹기'인 미식이 부상하고 있으니 이제 곧 '예쁘게 먹기'인 테이블 스타일링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다.

가짓수가 많은 한식의 특징도 테이블웨어가 미진한 이유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한식은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밑반찬이 많아 식탁이 꽉 차는데 여기에 꽃이나 여러 개의 잔을 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일단 내년에 열리는 도쿄 테이블웨어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준비 중에 있다. 도자기 부문 우승자가 만든 테이블웨어를 가지고 테이블 코디네이션 부문 우승자가 스타일링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 예정이다. 도자기 부문 대상 수상자는 일본인인데 모던하고 내추럴한 식기들이 마침 우리와 잘 맞아 떨어져 어떤 작품이 나올까 기대하고 있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