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지 기능 들어간 '안 아픈' 킬러 힐 네오리즘 착화기

현관 앞에 선 여자는 치열한 고민에 휩싸여 있다.

'오늘 동선은? 걸어야 할 거리의 양은? 만날 사람은? 내일 스케줄은?'

여자 앞에는 3cm, 5cm, 7cm, 그리고 11cm 굽의 구두가 나란히 놓여 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출근, 강동 지역에서 미팅, 그리고 다시 강북으로 돌아와야 하는, 차 없는 그녀의 최종 선택은 11cm 킬러 힐이다.

'오늘 만날 사람은 디자이너인데, 긴장 풀린 차림으로 나갔다가 어떤 눈길을 받으려고.'

밤 10시 반, 기다시피 귀가하던 그녀는 타는 듯한 발바닥과 허벅지까지 올라온 통증을 참지 못하고 집을 100m 앞둔 어두운 골목길에서 결국 구두를 벗어 손에 들었다.

킬러 힐이 사람 잡네!

킬러 힐은 높은 구두를 신고 마라톤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여자들도 아침마다 주저하게 만드는 극단적 아이템이다. 단화밖에 못 신는 일부 여성들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걸을 때 큰 무리를 느끼지 않는 굽의 높이는 3~5cm다. 6cm부터는 신는 자와 보는 자 모두에게 약간의 긴장감을 조성하며, 7cm부터를 통상 하이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9cm 이상으로 올라가면 사람 잡는다는 킬러 힐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킬러 힐이 대세가 된 이래 국내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 인문학자들이 그 미적, 사회적, 생물학적 의미에 대해 한 마디씩 했지만 그 후에도 킬러 힐 유행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그러들기는커녕 9cm에 익숙해진 이는 11cm로, 11cm에 성공한 이는 다시 13cm로 펄쩍 뛰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킬러 힐이 주는 고통을 알기 위해서는 굳이 무지외반증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싸구려 힐의 경우 신고 한 걸음 떼기 시작할 때부터 불길한 기운이 엄습한다. '오늘 멀리 가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것이다.

가장 먼저 고통이 느껴지는 곳은 앞꿈치라고 불리는 곳으로, 그 작은 면적 하나에 체중의 대부분이 실리면서 발과 신발 바닥이 비벼지며 불타는 아픔을 선사한다. 20분 이상 걸으면 발목이, 그 다음에는 종아리가 저릿저릿해지며, 집에 돌아갈 때쯤이면 허벅지와 고관절 전체가 제 구실을 못해 비틀거리게 된다.

어쩌다 발이 아파 잠시 구두를 벗고 발가락을 요리조리 구부리며 스트레칭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시 구두에 발을 밀어 넣을 때의 심정은 3시간 동안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휴식 후 다시 스케이트를 신을 때와 비슷하다. 스케이트야 발이 아프면 쿨하게 벗어 버리고 밥 먹으러 가면 되지만, 킬러 힐은 어쩔 수 없이 하루종일 끌고 다녀야 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킬러 힐은 포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트렌드라는 마법이 설명해줄 것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누가 뭐래도 킬러 힐의 시대인 것이다.

이 와중에 마침 '안 아픈' 킬러 힐이 출시됐다는 소식이 들려와 귀를 솔깃하게 만들고 있다. 국내 제화 브랜드 소다에서 론칭한 '네오리즘'은 일본 제화 회사 오기츠 사와 기술을 제휴해서 만든 패션 컴포트 슈즈 브랜드로, 신발 곳곳에 고통을 줄일 수 있는 기능을 최대 10가지까지 장착했다고 한다.

발과 직접 닿는 라이닝(까레)에는 미끄럼 방지 기능과 항균·투습 기능을, 신발의 척추 역할을 하는 인솔(중창)에는 매직폼을 쓰고 중족골을 보호하는 스폰지를 한 겹 덧댔다. 중족골은 발가락을 위로 쳐들었을 때 발등 위로 솟아오르는 가늘고 긴 다섯 개의 뼈들인데, 앞꿈치와 함께 가장 많은 체중이 실리는 곳이다.

뒤꿈치에서부터 발허리까지는 미국 특허를 받은 투명 젤 타입의 쿠션, 인솔리아가 받치고 있다. 앞꿈치로 쏠리는 무게를 뒤 쪽으로 분산시켜 실제 굽보다 1~2cm 낮게 느끼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으며, 앞으로 기울어지는 몸을 곧게 펴 자세를 보정해준다.

이 밖에도 푹신함을 위해 밑창 안쪽에 댄 초경량 저비중 발포 연질창, 아치 부분을 지지하는 아치 서포트 미드 솔, 발 뒤꿈치의 벗겨짐을 막는 카운터 패드 등 모델에 따라 3~10가지의 기능이 들어가 있다.

언젠가 누군가의 상상력처럼 나이키 에어 패드를 장착한 하이힐이 탄생한 것일까? 정말 안 아픈지, 안 아프다면 왜 그런지, 직접 신발을 신어 보았다. 3시간 동안의 쇼핑,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균형 잡기, 내리막 걷기 등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겪은 '안 아픈' 킬러 힐 착화기.

실험자: 30대 초반 여성
평소 신는 신발 높이: 6cm~11cm
신은 신발: 뒤 굽 10cm, 앞 굽 1cm의 스트랩 샌들
하루 걷는 양: 평균 1시간 반~2시간
실험 기간: 2주간 4일 착용

첫날: 신은 순간에는 다른 신발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높은 굽으로 인해 발뒤꿈치부터 딛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무빙 워크에 탄 것처럼 스르르 걸어야 하는 것은 여타 킬러 힐과 마찬가지. 그러나 앞꿈치가 신발 바닥에 닿았을 때 미끄러지듯이 비벼지지 않아 마찰의 아픔이 적다. 스타킹을 신었음에도 발이 라이닝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걸음의 안정성을 높여준다.

둘째 날: 3시간 동안 쇼핑. 보통 20분 만에 절실히 의식하게 되는 신발의 존재가 1시간 정도 지나면서 슬슬 느껴진다. 앞꿈치 중에서도 두 번째 발가락 아래 부분, 굳은살이 길게 박혀 남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부위가 가장 많은 하중을 받는데, 정확히 그 부분에 탱탱한 쿠션이 받치고 있어 무게와 고통을 확실하게 완화시켜 준다.

3시간 후에는 어김 없이 종아리까지 통증이 올라오지만 보통 그쯤이면 현저하게 떨어지는 보속(걷는 속도)은 거의 처음과 다름 없이 유지된다. 엉뚱하게도 스트랩에 쓸려 발등 살이 벗겨진 것이 문제.

셋째 날: 간격을 두지 않고 바로 다음날 또 착화. 전날 허벅지나 종아리에 축적돼 신자마자 몰려와야 할 통증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러나 급출발하는 버스에서는 영락없이 휘청대야 한다. 2시간 가량의 걷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속도나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꼿꼿이 서서 걸을 수 있었다.

마지막 날: 같은 자리에서 6시간 동안 섰다, 쪼그렸다를 반복. 가만히 오래 서 있기에는 스폰지나 쿠션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 걸은 날보다 오히려 더 지치는 결과를 낳는다. 자리에 누울 때쯤이면 허벅지 뒤가 당기는 것이 느껴지며 다음날까지 미약하게 지속된다.

총평: 7cm 힐과 비슷한 정도의 부담감. 실제 굽보다 3cm 정도 낮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 20분 만에 지칠 것을 1시간 만에 지치도록 체력을 연장시켜주는 역할. 굽의 물리적인 높이에서 오는 장애(내리막 걷기, 가만히 서 있기, 버스 안에서 균형 잡기)는 해결이 안 되지만, 오래 걷기, 가볍게 뛰기에 있어서는 발과 다리가 받는 부담을 30% 이상 줄여준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