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시카츠, 야키도리, 오코노미야끼.. 정통 일본 이자카야 다와라야

쿠시카츠
"일본에 난리가 나면 집 주인들은 금고는 놔두고 소스 통부터 챙깁니다."

소스를 발라 숯 위에서 굽는 일본식 닭꼬치 는 소스의 맛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세월 때문에 필연적으로 역사와 전통의 음식일 수밖에 없다.

한 달 반 전 상수역 근처에 문을 연 이자카야 '다와라야'의 주인 하츠카와 히데토시 씨는 침전물이 둥둥 떠 있는 새까만 소스를 자랑스레 꺼내어 보여 주었다.

"지금이 아주 맛있을 때입니다. 간장, 설탕, 청주 등 소스에 들어가는 재료의 맛이 서로에 맞게 강약이 조절되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죠. 여기에 소스의 맛을 완성시키는 것이 닭고기입니다. 닭을 굽기 위해 소스에 담글 때 고기의 기름 같은 것들이 소스에 들어가거든요. 이 침전물들이 그 흔적이지요.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소스의 맛이 정점에 다다릅니다. 이때부터는 조금씩 소스를 충전해가면서 그 맛을 유지해 나가는 거죠."

10년 전 한국에 온 하츠카와 씨는 그 전에도 교토에서 가게를 운영했다. 그의 형은 지금도 인근 가게들 가장 큰 집의 사장이다. 빗자루만한 주걱으로 큰 솥에서 소스를 휘저어가며 세월을 입히고 애지중지하는 것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오코노미야끼
그는 막 만든 소스와 한 달 묵은 소스를 그릇에 내주었다. 한 달 만에 큰 차이가 날까 싶은 생각은 묵은 소스의 톡 쏘는 맛에 훌쩍 달아난다. 단맛과 짠맛의 평면적인 조화를 이루던 소스는 살아있는 것처럼 강하고 힘찬 맛으로 숙성되며 겉절이와 묵은지만큼의 차이를 보인다. 오래된 집의 소스는 최고 90년까지 묵은 것도 있다.

"사실 구운 닭은 어떤 가게에서 만들든 맛이 비슷해요. 를 다르게 하는 건 역시 소스죠. 한 달을 채우기 전에는 일부러 닭을 소스에 담가가면서 맛을 냈어요."

그러나 다와라야에서 꼭 한 가지를 먹어야 한다면 가 아닌 다. 오사카의 명물인 는 쿠시(꼬치)와 카츠(커틀렛)의 합성어로, 국내에서는 맛볼 수 있는 곳이 다섯 곳도 채 안 될뿐더러 최근 일본에서도 전국적으로 붐을 타고 있는 음식이다.

원래는 고기조각을 꼬치에 끼워 튀긴 것을 라고 하지만 채소, 해산물, 치즈, 내장까지, 튀길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튀긴다.

다와라야에서 15종 세트를 시키면 고구마, 메추리알, 호박, 오징어, 보리멸, 가지, 연근, 관자 등이 하나 가득 튀겨 나온다. 일류 스시집 덴푸라의 얇디 얇은 튀김 옷과 재료만 빼낼 수 있을 정도로 두꺼운 분식집 튀김옷의 중간 두께로, 단정하게 튀겨진 는 전용 소스에 찍어 먹는다. 간장 찍듯이 살살 찍고 있으면 주인장의 "푸~욱 찍어 먹으라"는 재촉이 들려온다.

야키도리
"오사카에는 골목이 있습니다. 가게 앞에는 '소스 두 번 찍어 먹는 것 금지'라는 종이가 나붙어 있죠. 보통 큰 통에 소스를 주고 공동으로 찍어 먹기 때문에 먹던 음식을 또 다시 소스 통에 넣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걸 싫어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개별 접시에 드리고 있긴 하지만요."

소스의 비밀을 지켜라

스테이크 위에 뿌리는 우스터 소스와 맛이 비슷한 소스는 우스터 소스를 기본으로 향신료와 각종 육수, 양파 등을 넣고 1시간 가량 끓여 만든다. 소스처럼 세월의 내공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집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가게마다 노하우를 들키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갖춰진 일본 가게에서는 장이나 소스를 만드는 소규모 기업에 맞춤 주문을 하는데, 이 때에도 비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2군데 혹은 3군데의 회사에 주문을 넣어 완성품을 다시 가게에서 합치는 방식으로 소스를 제작한다. 다와라야의 소스는 물론 주인장이 직접 만든 것이다.

저녁 6시, 일본의 이자카야 골목은 벌써부터 북적북적하다. 가게 한 편에 자리잡고 앉아 바싹 튀긴 를 새큼달큼한 소스에 푹 찍어 한 입 먹고 시원한 맥주나 쮸하이(소주+탄산음료)를 한 잔 들이키는 것은 초저녁 이자카야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밥 먼저 먹고 술 마시러 가는 우리네와 달리, 일본에서는 안주를 곁들여 술부터 마시고 그 다음에 밥으로 부족한 허기만 살짝 때우기 때문이다.

"이자카야를 흔히 일본식 주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일식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탈리아식 이자카야도 있고 프랑스식 이자카야도 있죠. 게다가 요즘 이자카야에는 김치가 빠지는 곳이 없습니다. 이자카야의 기준은 싼 안주, 술, 그리고 운동복 바람으로도 들를 수 있는 편안함이죠."

다와라야의 가장 좋은 시간도 저녁 6시다. 밥 먹으러 간 한국 사람들은 8시나 돼야 들어오기 때문에 그 동안 한산한 가게에서 를 튀기는 기름과 시커먼 소스가 보이는 바에 앉아 요것조것 물어가며 먹을 수 있다.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일본인 주인장이 요리하는 것만큼이나 열심히 일본 음식들을 설명해준다.

물론 식사도 할 수 있다. 간단한 한 입거리 음식 외에도 국물이 시원한 우동과 본고장 맛을 그대로 낸 , 구운 오니기리(주먹밥), 맥주와 함께 먹으면 무한정 들어가는 닭날개 후추 튀김 등이 별미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