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 국가대표ㆍ대학생 부문 각각 3명씩 선발

멋지게 차려입은 검은 수트의 남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잔을 들어 품위 있게 시음을 한다. 자신들만의 섬세한 미적 감각으로 '신의 물방울'을 가리는 소믈리에(Sommelier)들의 경연장. 하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와인 향 대신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건 뜻밖에도 우유빛의 막걸리다.

최근 몇 년 동안 와인 문화가 급격히 대중화되는 바람에 소믈리에는 곧 와인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됐지만, 최근에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최근 잇따른 한식의 세계화 시도는 막걸리로 대표되는 전통주 분야에서도 소믈리에를 양성하려는 움직임을 이끌고 있다.

현대판 '대장금', 전통주 소믈리에

4월 9일 서울 경희대에서는 이색적인 행사가 열린다. 전통주의 달인을 뽑는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의 1차 예선이 시작되는 것. 농촌진흥청과 경희대학교가 후원하고 한국전통주 소믈리에 협회가 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한국국가대표 부문과 대학생 부문으로 나뉘어져 1차 예선, 2차 예선, 그리고 최종 결선으로 치러진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뽑는 '전통주 소믈리에'는 전통주를 전문적으로 구매·저장·관리하고 전통주들의 리스트 작성과 함께 서비스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이다.

지난해 대학생 부문 1위를 차지한 백승운 씨
'전통주'와 '소믈리에'라는 단어 사이의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주최 측은 전통주 소믈리에를 '대장금'이라고 명명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 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는 대장금이라는 문화 아이콘에 소믈리에의 전문적인 이미지를 결합시킴으로써 전통주와 한식의 조화를 전달하는 문화 외교관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전통주 소믈리에의 선발은 전통문화 전문가로서의 자질과 와인 소믈리에에 필적하는 감각을 검증받아야 하는 만큼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이론 시험으로 치러지는 1차 예선에서는 전통주의 역사와 양조, 종류와 특성, 재료, 음식과의 조화를 비롯해 전통주 마케팅, 전통주 서비스 등 전통주에 관한 모든 지식을 다룬다.

이 시험을 통과한 20명이 치르는 2차 예선은 각각 막걸리, 소주, 약주(청주), 한국와인 두 종류씩을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ㆍ품명을 숨기고 시음하는 것)하는 것이다.

와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산도, 알코올, 당도, 여운 등을 아울러 전통주의 맛을 총체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고난도의 지식과 감각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3차 결선에서는 국가대표 부문과 대학생 부문에서 각각 3명씩 선발해 전통주 소믈리에로서의 활동을 인정하게 된다. 지난해 국가대표 부문 금상을 수상한 오형우 전통주 소믈리에는 현재 농촌진흥청의 전통주 홍보대사 및 전통주 품평회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최초이자 최고의 대장금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 중이다.

지난해 국가대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오형우 씨
전통주 세계화를 위한 교두보

이 같은 새로운 직업군의 등장은 결국 우리 전통주 산업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소믈리에를 통한 전통주의 세계화 계획은 2009년 '우리 술 경쟁력 강화 방안'이 발표된 후 지난해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농촌진흥청 양조식품연구센터가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후 떠오른 이슈가 '우리 술 세계화'였고, 이에 따라 전통주 전문가의 존재가 부각된 것이다.

농촌진흥청 발효이용과의 정석태 연구관은 "이런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우리 술을 잘 알고 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즉 와인에서 말하는 소믈리에를 육성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전통주 소믈리에를 통한 산업의 진흥은 이미 일본의 사케(청주)의 경우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일본은 국제적인 소믈리에 대회를 개최하면서 외국의 유명 소믈리에들에게 사케를 알리고 스시(초밥)와 함께 세계화에 성공했다.

정석태 연구관은 "국제대회에서는 개최국 술이 테이스팅 주류에 반드시 포함되어 외국 소믈리에들이 맛을 봐야 하기 때문에 전통주가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결국 전통주 세계화의 관건은 국제대회 유치와 이를 위한 전통주 소믈리에의 육성이라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측은 이 같은 사례를 교훈 삼아 2012년 대전에서 치러질 '아시아 오세아니아 소믈리에 대회'의 지원과 함께 2016년 '국제 소믈리에 대회'의 국내 유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런 생각은 협회 측도 마찬가지다.

한국 전통주 소믈리에 협회의 고재윤 회장은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는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내년에는 외국인 부문을 추가하여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회에 참가시키고, 나중에는 이 대회를 국제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장기적인 계획을 밝혔다.

기존의 와인 소믈리에는 와인의 대중적 인기와 함께 호텔과 와인바를 비롯해 전문 판매점 등에서 활동하며 와인의 저변을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다. 때문에 새롭게 등장한 전통주 소믈리에로 인해 전통주 업계와 관련 기관에서도 전통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바람이 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