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의식적 병원 가기'에 제동병원이 발견 못 하는 심리적 요인에 관심 둘 것 권유

병에 걸리는 순간 우리 몸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 몸이 아프거나 심상치 않은 증상이 나타나면 우리의 몸은 자연스럽게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에게 1분쯤 증상을 말하고, 몇 가지 질문을 받는다. 총 3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처방이 내려져 주사를 맞거나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약국으로 가면 그만이다.

이 기계적인 치료의 메커니즘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과연 병의 원인을 의사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환자는 옳은 처방을 받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 몸의 건강 상태를 효과적으로 유지, 관리하며 사는 것일까.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미 잘 드러나 있다. '스트레스성'과 '알레르기성' 등 모호한 표현으로 사용되는 온갖 증상들은 대개 현대의학의 힘으로도 풀 수 없는 것들이다.

의사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병원에서 가장 자주 듣는 조언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라'는 뻔한 말뿐이다. 병원에서 주는 약이 수면제나 진정제 기능을 가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영리한' 환자들은 자신의 바쁜 스케줄에 맞춰 이마저 임의로 복용한다. 결국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몸의 상태는 점차 악화될 뿐이다.

최근에 출판된 <우리는 왜 아플까> (대리언 리더, 데이비드 코필드 지음, 동녘 사이언스)는 이런 '무의식적 병원 가기'의 악순환에 제동을 건다. 책은 우리의 몸을 단순한 질병의 숙주로 보는 의사-환자의 구조에서 벗어나 병원이 발견하지 못하는 심리적 요인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유하고 있다.

현재 양방 치료에서 배제하고 있는 심리학적 요인에의 접근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대체의학이나 한방에서의 사상체질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신경성 고혈압 환자는 평소엔 멀쩡하다가도 병원만 가면 혈압의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다.

두통약을 끼고 사는 두통 환자는 병원에서 두통약으로 알고 받은 수면제를 복용하고 안정된다. 한 달 동안 끊이지 않는 기침 때문에 병원을 제집처럼 출입했던 한 직장인은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자 거짓말처럼 기침이 멈췄다. 하지만 회사 복귀 후 컴퓨터 앞에 앉자 금세 다시 기침이 시작됐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어떤 증상이 비단 육체에 스며든 질병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 요인도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의학은 심리적 영역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의학의 영역에서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혹은 '유전자' 같은 용어들이 거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활용되고 있다.

'스트레스'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환자들이 처한 심리적 압박의 환경은 병원에서는 그냥 '스트레스'라는 한 마디로 처리돼버린다. 개인의 환경에 따른 개별적인 요인들의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처방 역시 '충분한 휴식'으로 단순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 정신신체의학회에서 발간한 팸플릿에는 실제로 이 같은 질문이 적혀 있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여자가 생활이 평온할 때는 괜찮다가 아이들과 언쟁을 벌이면 관절염이 갑자기 심해진다.

왜 그럴까? / 의사 결정권이 거의 없는 직장인은 상사보다 심장마비와 위장 장애로 더 고생한다. 왜 그럴까? / 천식 환자가 자신이 병으로 고생했던 경험을 글로 쓰면 폐 기능이 더 좋아진다는 것은 사실일까? 등이다.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대중에 소개해온 라캉주의 정신분석가 대리언 리더와 인공두뇌학과 응용수학을 연구하는 과학철학자 데이비드 코필드는 이처럼 심리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증상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심리적 요인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결국 내재된 스트레스를 표출하는 방식, 즉 언어의 힘에 관한 것이다. 말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것. 누군가가 자신에게 어떤 이유로든 욕을 했을 때, 실제로 마음의 상처뿐 아니라 몸도 충격을 받는다.

한 실험에서 천식 환자에게 식염수를 주고 마시게 했다. 그리고 환자에게 '당신은 자극제를 흡입했다'고 말하자, 절반의 천식환자들에게 기관지가 수축돼 호흡이 곤란한 기도 저항이 일어났다. 유독 심한 환자에게는 해독제를 처방하고서야 완화되었는데, 그들에게 준 해독제는 똑같은 식염수였다.

또, 수술 전 마취 전문의가 던진 말이 수술 후의 통증과 입원 기간에 영향을 끼친다는 유명한 연구도 있다. 복부 수술을 앞둔 환자 97명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마취 전문의가 마취 준비 과정과 수술 시간, 다른 세부 사항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수술이 끝난 후 어디가 얼마나 오래 아플지에 대해서는 한 집단에만 설명했다.

수술 후 두 그룹은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미리 설명을 들은 환자들은 진통제를 적게 썼고 다른 환자들에 비해 퇴원도 사흘이나 빨랐다. 저자들은 이 사례를 통해 "말은 의료 행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치료과정에 심리학을 접목시킨 국내의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행복전도사' 故 최윤희 씨의 병이 불치병이 아닌 치유 가능하다는 의료진의 말이 있었더라면 그처럼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같은 암시가 주는 치유의 힘을 정통 의학이 외면하고, 심리학자의 역할로 떠넘기고 있지만 현대의학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심리적인 부분이라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