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당진 안국사지지금은 몇 점의 유물과 절터만 남아 옛 영화를 짐작게 해

보물 제100호인 안국사지 석불입상
우리나라에는 안국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찰이 여럿 있다. 무주 적상산의 안국사가 대표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역사적인 고찰이다. 안국사(安國寺)는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호국 사찰'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무주 안국사가 조선왕조를 수호하기 위한 사찰이라면, 당진 안국사는 고려왕조를 수호하던 사찰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된 몇 점의 유물들과 절터만 남아 있을 뿐, 그 옛날의 번성했던 영화를 찾아볼 길이 없다.

1530년(조선 중종 25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미현조'에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라는 기록이 나오지만 사찰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백제 말에 창건한 이후 고려시대에 번성한 거찰이라고도 하고, 절터 안에서 발견된 유물들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또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 폐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29년 승려 임용준이 주지를 맡아 다시 일으켜 세웠으나 그 후 다시 폐사되었다고 전해진다.

안국사지(안국사 옛터)는 당진읍에서 남서쪽으로 10여km 떨어진 은봉산(안국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축대, 장대석, 주춧돌, 기와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안국사지에서 북동쪽으로 수백 미터 지점에 안국사지 석불입상과 안국사지 석탑이 서 있고, 그 뒤로는 커다란 바위에 명문이 새겨진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이 박혀 있다.

보물 제101호로 지정된 안국사지 석탑
보물로 지정된 석불입상과 석탑

보물 제100호로 지정된 안국사지 석불입상은 본존 높이가 4.91미터에 이르며 그 옆으로 협시살(좌보살과 우보살)이 본존을 수호하듯 서 있다. 본존은 머리 위에 직사각형의 갓(보개)을 썼으며 몸체는 사각기둥형이다.

넓고 네모진 얼굴은 몸에 비해 어색할 만큼 크고 눈과 눈썹은 길게 표현되었다. 두 팔과 두 손은 신체에 돋을새김으로 붙어 있는데 오른손은 가슴에, 왼손은 배 앞에 대고 있다.

본존보다 입체감 있게 조각된 우보살은 머리에 높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본존과 거의 같다. 좌보살은 머리가 잘려졌으며 마멸이 심해 세부적으로 알 수 없으나 작은 얼굴에 눈, 코, 입 등이 본존과 같다.

보물 제101호인 안국사지 석탑은 안국사 창건 당시에 조성한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높이 3미터의 이 탑은 왠지 균형이 맞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탑신부는 기단 위에 1층만 남아 있고 그 위로 옥개석이 4층으로 겹쳐져 원래의 층수를 알 수 없지만 5층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탑신에 불상을 조각하는 등, 당시의 석탑 구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커다란 자연석에 새겨진 안국사지 매향암각
충청남도기념물 제163호인 안국사지 매향암각은 커다란 자연석에 새겨진 암각문으로 바위의 크기는 높이 2.93미터, 길이 13.35미터, 너비 2.5미터에 이른다. 이 바위는 배를 닮아 배바위, 고래 모습과 흡사해 고래바위, 베틀에 딸린 북 모양이어서 북바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이 바위 왼쪽에는 '경오이월일(庚午二月日)'로 시작되는 명문, 오른쪽에는 '경술시월일(庚戌十月日)'로 시작되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명문의 조성 시기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이 암각명문은 매향(埋香; 내세의 복을 빌기 위해 향을 땅에 묻는 일)과 관련된 고려말과 조선초의 기록이다. 전국에서 발견된 여러 매향 관련 명문 중에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자료로서 주변 지역의 역사와 매향 의식을 살펴볼 수 있어서 소중하다.

영탑사도 들러보고 두견주도 맛보고

안국사지에서 멀지 않은 영탑사도 들러볼 만하다. 당진군 면천면 성하리에 있는 영탑사는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로 규모는 아담하다. 그러나 금동삼존불은 고려 중기 이후의 조각 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높이는 51cm에 불과하지만 문화재적인 가치가 높아 보물 409호로 지정되었다.

팔각형의 연꽃무늬 대좌 위에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이 있고 양 옆으로 협시보살이 보좌하는 삼존불이다. 영탑사 입구에는 영천이라는 샘물이 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을 연상시키는 시원한 물맛이 갈증을 씻어주는 질 좋은 지하수다.

영탑사가 있는 면천면은 진달래술, 즉 두견주로 유명하다. 고려 개국 공신 복지겸의 딸이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하기 위해 산신령의 계시로 빚었다는 술로, 이후 토속 약용주로 뿌리를 내렸다.

1960년대에 곡주 제조를 금지하는 식량 정책으로 명맥이 끊겼던 면천 두견주는 88올림픽을 계기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다시금 빛을 보았다. 두견주는 진달래와 누룩, 찹쌀, 멥쌀로 빚는 순수한 발효주로 진해 효능이 좋고 미네랄이 풍부해 영양가도 높다.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당진 나들목-32번 국도-여미 교차로(우회전)-운정로를 달리다가 수당리사무소(회관) 앞에서 좌회전하면 안국사지로 이어진다.

대중교통은 서울(강남, 남부터미널), 인천, 수원, 대전 등지에서 당진으로 가는 버스 운행. 당진에서 수당리 방면 시내버스를 타고 수당리회관 앞에서 내린 다음 25~30분쯤 걷는다.

맛있는 집

당진군 송산면 가곡리의 성구미는 봄철 간재미로 이름난 포구다. 간재미는 살이 도톰하게 오르고 뼈가 연해지는 4~5월이 제철이다. 간재미는 찜으로 먹기도 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요리는 회무침이다.

갓 잡은 간재미의 껍질을 벗기고 고추장, 고춧가루, 식초, 마늘, 통깨 등으로 버무린 다음 야채와 배를 넣어 무친다. 쫀득쫀득한 간재미 살, 오돌오돌 씹히는 물렁뼈, 매콤새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성구미 포구의 여러 집 가운데 어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화횟집(041-353-0127)의 인기가 높다.



글ㆍ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