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신촌, 홍대로 이어진 카페 벨트는 합정동과 상수동으로 뻗어나간 지 오래다.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부지기수로 생기고 없어지는 홍대발 소비문화는 이 주변 출판사들이 파주출판단지로 대거 이동하며 생긴 현상이다.

이곳에 출판사들이 북카페를 열기 시작했다. 회전율과 이윤을 이유로, 있던 북카페도 문을 닫는 마당에 이들이 커피 장사를 하기 시작한 이유는 뭘까? 출판사 북카페에는 어떤 책이 꽂혀 있을까?

문학동네's 카페 꼼마

홍대 주차장골목에 문을 연 <카페 꼼마>는 출판사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북카페다. 카페가 지천에 널린 홍대에서도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면 꼭 한 번씩 구경하게 되는데, 이유는 통유리에 비친 '전설의 15단 책장' 때문. 벽 한 면을 꽉 채운 책장에는 문학동네와 문학동네 계열사에서 발행한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고, 2층도 역시 벽 한 면을 책장이 채우고 있다.

"출판사에서 일했던 내내 독자와 만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구체적으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는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이곳의 대표 장으뜸 씨의 말이다. 장 씨는 문학동네 마케팅을 담당했다가 카페를 열며 이곳의 운영만 전담키로 했다.

<카페 꼼마>는 문학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곳인 만큼 특징이 확실하다. 저자와의 만남 등 책 관련 행사들이 자주 열리고 홍대 주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식으로 문을 연 건 지난 주말이었지만, 이미 성석제, 백영옥 작가가 이곳에서 독자 행사를 진행했고 취재 당일에도 정수복 선생의 독자 행사가 열렸다.

"출판사가 기획한 저자 만남은 사실 책 홍보를 목적으로 하잖아요. 앞으로 카페에서 자체적으로 독자행사를 기획하려고 해요. 독자가 작가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거죠. 신간 저자뿐 아니라 평소 사람들이 만나고 싶던 작가를 초청하고요. 이 카페 처음 만들 때 취지도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장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요."

카페 한 쪽에 마련한 '작은 서점'도 이곳의 차별화 포인트다. 절판된 책을 정가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한다. 신간의 저자 사인본도 함께 판매할 예정이라고.

"절판되면 그 책 유통이 멈추는데 서점에서 반품은 받아야 하거든요. 출판사에서 책을 품절시켜도 몇십 부 여유 재고는 가지고 있고요. 개정판이 나오면 예전 판형은 유통시키지 못하는데 그 책을 원하는 독자도 있어요. 자투리로 남은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보물일 수 있는 거죠. 그 책들을 판매할 생각입니다."

사진 / 임재범
<카페 꼼마> 건물의 3층에 위치한 <라 꼼마>는 문학동네 대표와 요리사 박찬일 씨가 공동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지난해 문을 연 이곳 역시 출판사 기자간담회나 문학행사를 가끔 열어 문학기자와 작가들 사이에서 애용됐다. <카페 꼼마>의 디저트는 이곳에서 공수받는다. 케이크와 마카롱 같은 빵류는 하루 분을 미리 받아 판매하고 샌드위치는 주문 즉시 3층 주방에서 만들어 내려온다. 대신 <라 꼼마>의 커피는 <카페 꼼마>에서 만들어 보낸다.

"직원들이 홍대 주변에서 활동하는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가수예요. 젊은 예술가들이 자주 찾아서 예전 커피하우스처럼 이야기 나누는 공간됐으면 합니다."

후마니타스's 책다방

합정역 부근의 <책다방>은 이미 책 마니아들 사이에서 명소가 됐다. 출판사 후마니타스가 지난해 8월 이곳으로 이사하며 북카페와 출판사를 합친 공간을 선보이며 개점 넉 달 만에 적자 없이 꾸려갈 만큼 자리 잡았다. 통유리로 된 책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카페 한 쪽에 역시 통유리로 된 편집부 사무실이 보인다.

카페의 다른 한 쪽에는 대표와 주간의 사무실이 있다. 카페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편집자와 출판관계자들의 만남이 카페에서 이뤄진다. 근처 정당,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문화예술인들이 항상 복닥거리고 있다.

"북카페는 모든 출판사의 로망이잖아요. 특별한 건 아니고 단지 누가 하느냐가 관건인데 예전 사무실보다 여기 공간이 넓었어요. 원래 카페가 아니어서 권리금이 없었고요. 공간을 보고 대표님이 밀어붙이셨죠."

후마니타스 주간 정민용 씨의 말이다. 사회과학 책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후마니타스의 신뢰는 꽤 높다. 고려대 최장집 명예교수의 저서 대부분이 이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면서 이름이 알려졌고, 이후 정치학 명저들이 차례로 번역 출간되며 충성 독자도 늘었다.

출판사는 신간을 출간하기 전 홈페이지를 통해 강독 모임을 알리고, 신청자들에 한해 원고를 미리 공개하고 독자들의 의견을 들어 편집에 반영한다. <책다방>을 연 이후 출판사는 당연히 이곳에서 강독모임을 연다.

"격주에 한 번씩 화요일 저녁 7시에 '다방모임'을 해요. 책이 나오면 강독하고 저자와의 만남도 하고요. 얼마 전에 책다방 바리스타가 커피교실도 열었어요. 비정기적으로 강독 모임은 늘 있고요."

강독모임을 통해 출간한 책이 어림잡아 10여 권이 넘는다. <정치가 우선한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민주주의의 모델들>, <절반의 인민주권>, <만들어진 현실>, <정치의 발견> 등이 이렇게 출간됐고, 출간을 준비 중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우리시대의 정치학자> 등도 책다방에서 강독 모임과 저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최장집 교수가 이곳에서 강연한 내용을 묶어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도 출간할 예정이다.

사진 / 이정화
인문학과 사회과학 책을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지만, 카페에는 소설과 에세이 등 꽤 다양한 책이 종류별로 꽂혀있다. 홍대 주변 출판사들이 정기적으로 교환하며 보는 책을 카페에 전시한 것이라고.

<책다방>은 입소문 덕분에 빨리 알려졌지만, 북카페란 특성상 회전율이 낮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다. 매니저 황연호 씨는 "8시간 근무하는데, 저보다 오래 계신 손님들도 있다. 자주 오는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알고 지낸다. 오히려 그렇게 하니까 많이 남지 않아도 운영할 정도로 항상 남는다"고 말했다.

디자인북's 정글

홍대입구 역, 경남예식장 방향에 있는 북카페 <정글>은 디자인북이 운영하는 북카페다. 디자인북은 1991년 홍익도서로 시작해 해외 디자인 서적을 수입, 유통하는 회사이다.

2001년 인터넷쇼핑몰 운영을 시작했고, 2009년 이곳을 개점했다. 1층 서점에서 책을 판매하고 2~3층에 북카페를 운영한다. 매주 첫 째주 금요일과 토요일마다 디자인북 앞마당에서 디자이너와 일반인들이 만나는 '오픈마켓'을 열고 있다.

카페는 출판사가 주머니 가벼운 예비 디자이너들이 고가의 수입디자인 서적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점에 착안해 모든 서적을 볼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고로 이곳의 최대 장점은 고가의 디자인 서적 3000권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 고객의 상당수가 디자인 전공 학생이거나 디자인 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카페 사진을 찍으셔도 되지만 디자인서적은 저작권상 촬영이 금지돼있어요. 그래서 디자인 시안이 필요한 분들은 대부분 자료스케치를 하시죠." 개점부터 지금까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매니저 정소라 씨의 말이다.

북카페 특성상 회전율이 떨어지는데다 전시된 책 대부분이 디자인서적이니 이윤을 내기 위해 운영한다고 보긴 어렵다. 그래도 꽤 찾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운영 2년이 조금 지난 올해 4월 초, 3층 출판사 사무실을 북카페로 확장했다.

"다른 북카페와 다른 점은 세미나실을 갖고 있다는 점이에요. 4명에서 20명까지 이용할 수 있는 세미나실이 5개 있는데, 미리 예약하시면 2시간 동안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북카페에 가면 대부분 사람들이 묽은 아메리카노를 시켜 몇 시간씩 책을 보지만, 이곳에 가면 더치커피를 마셔봐야 한다. 찬물에 장시간 내려 카페인이 적은 것이 특징인 커피다. 국내 상당수 더치커피가 아이스커피와 별 차이가 없지만 이곳의 더치커피는 향이 깊고 목넘김이 일반 더치커피보다 묵직하다.

"단순히 디자인 서적을 판매하거나 공개하는 곳이 아니고 커피 마시고 공부하고 세미나하기 좋은 장소예요. 3층으로 북카페를 확장하면서 디자인 작업대도 마련해뒀고요. 좋은 디자인을 접하는 공간으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