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영양 일월산경북의 지붕, 생태계의 보고, 신비로운 영산, 토속 신앙의 흔적들

선녀가 목욕했다는 용화선녀탕
영양 사람들은 일월산을 가리켜 '육지 속의 섬'이라고 일컫는다. '경상북도의 지붕'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주변 산악 가운데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워낙 오지인지라 망망대해에 고고하게 떠 있는 섬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장엄하면서도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산세를 사방으로 뻗어 내리고 있는 일월산(日月山)은 최고봉인 일자봉(日字峰: 1219m)과 제2봉인 월자봉(月字峰: 1205m)에서 이름을 따왔다.

일월산은 동해에서 솟아오르는 해와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기도 하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옛날 산마루에 있었다는 천지의 모습이 해와 달을 닮아서 일월산이라고 일컫는다는 말도 전해진다.

일월산은 생태계의 보고로서 온갖 수목과 야생화가 자생한다. 영양군은 2004년 일월산 자락의 일월면 용화리에 일월산 자생화공원을 조성했다. 일월산은 산나물의 천국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해마다 5월 하순 무렵이면 일월산 산나물 축제가 열린다.

일월산은 산신령이 살았다는 전설을 낳았을 만큼 신비로운 영산(靈山)으로 추앙되어 왔고 그로 인해 아주 오랜 옛날부터 토속 신앙이 깊이 뿌리 내렸다. 그러나 지금은 수많았던 당집들이 모두 정리되고 월자봉 아래에 황씨부인당이 남아 있을 뿐이다.

월지봉 아래 황씨부인당의 산령각
월자봉 정상 아래에 올라앉은 황씨부인당

일월산은 태백산의 가랑이 부분에 솟아 있어 음기가 강한 여산(女山)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음력 그믐날이면 전국 각지에서 무속인들이 찾아와 내림굿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점괘가 신통해진다는 말이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까닭이다.

봉화터널 북쪽 입구 못 미쳐 400m 지점에서 옛 31번 국도로 들어서서 3.5㎞ 남짓 오르면 해발 940m의 일월재 삼거리다. 봉화 터널(길이 782m)과 영양 터널(길이 600m)이 뚫리면서 이제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이 옛 국도는 폭이 좁고 굽이와 경사가 심해 운전자를 진땀 나게 하지만 우거진 숲 사이로 오르는 운치가 그만이다. 일월재 삼거리에서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길로 3㎞ 남짓 더 달리면 황씨부인당 앞에 다다른다.

황씨부인당은 예상외로 초라해 보이지만 월자봉 정상 바로 아래의 울창한 숲 속에 깊이 파묻힌 아늑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요즈음에도 일월산의 정기와 영험을 믿고 기도하러 올라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이곳에는 황씨 부인에 대한 여러 가지 설화가 이어져 내려오는데 얘기가 제각각이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일치하는 내용은 성이 황씨인 부인이라는 것, 이곳으로 올라와 목숨을 잃었다는 것, 억울하게 죽은 부인의 한을 풀어주려고 당집을 지어준 것이라는 정도다.

용화선녀탕 입구의 솟대
시어머니의 학대를 받아 이곳으로 올라왔다고도 하고 첫날밤부터 남편으로부터 소박맞았다는 얘기도 있는 등, 분분하다. 본디 설화란 사람들 입을 통해 전달되면서 가공되게 마련인 듯싶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용화선녀탕

황씨부인당에서 일월산 정상은 도보로 불과 30분 거리다. 그러나 방송 중계소 등 여러 시설물이 있어 정상에는 오를 수 없고 300m 아래에 서 있는 정상 표지석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굳이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오가는 길에 굽어보는 전망이 장쾌해 아쉬움을 달랠 만하다.

황씨부인당에서 남쪽 산길로 30분 남짓 내려가면 아담한 천년 고찰 천화사도 둘러볼 수 있다. 비구니 사찰로 1950년대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하지만 자세한 내력은 알 길이 없다. 대웅전과 요사채가 하나씩 있을 뿐인 아담한 절로 소박한 산사의 정취가 그윽하고 옆으로는 맑은 계곡이 흘러 운치를 더한다.

일월산 동쪽 기슭에는 용화선녀탕이 숨어 있다. 선녀암이라는 작은 암자에서 2~3분쯤 산길을 오른 뒤에 계곡으로 내려서면 용화선녀탕이 반긴다. 높이 10m쯤 되는 폭포 아래로 파인 웅덩이가 욕조를 닮아 신비스럽다. 선녀를 다스리던 신선이 내려와 살펴보고는 물이 맑고 부드럽다며 선녀들의 목욕을 허락했다는 전설이 있다.

용화선녀탕 입구 선녀암의 돌탑
이에 따라 이 웅덩이를 선녀탕, 이를 품은 골짜기를 강림골이라고 일컬으며 지명을 따서 용화계곡이라고도 한다. 백옥 같은 몸을 비스듬히 누이고 새소리를 벗 삼아 목욕하는 선녀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듯하다. 이곳에서 상류로 오를수록 인적 드문 비경들이 이어져 점입가경이다.

용화선녀탕 입구 공터에는 찬바람이 부는 냉풍 동굴과 옹달샘이 있다. 굴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 앞에 있기만 해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한여름이면 이곳을 찾아와 야영하며 호젓한 피서를 즐기는 알뜰 가족도 보인다.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만종 분기점-중앙고속도로-풍기(또는 영주) 나들목-영주시-봉화·울진 방면 36번 국도를 거친다. 봉화-춘양 입구-녹동을 지나 영양 방면 31번 국도로 남하하면 일월산 입구에 다다른다.

남쪽 지방에서는 중앙고속도로-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안동-34번 국도-월전-31번 국도-영양-일월을 거친다.

대중교통은 동서울, 대구, 안동 등지에서 영양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영양에서 일월을 거쳐 일월산 입구인 용화리로 가는 버스는 하루 3회 운행. 일월산으로는 버스가 올라가지 않는다.

맛있는 집

일월산은 산나물이 많이 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여느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채는 물론이고 옛날 임금님에게 진상했다는 금죽과 어수리 등 희귀한 산나물들도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이용한 산채정식과 산채비빔밥이 영양군의 향토 별미로 꼽힌다. 특히 입암면 신구리의 선바위가든(054-682-7429)과 영양읍내의 삼양식당(054-682-4700)이 유명하다.



글ㆍ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