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식량난 위기… 정계ㆍ학계 입 모아 곤충 음식 제안

"벌레가 당신의 수확물을 먹는다면, 당신도 그 벌레를 먹어 버리는 건 어떨까?"

1885년 빈센트 홀트가 한 말은, 물론 해충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당시 쓴 '왜 벌레를 먹으면 안 되나?'라는 글은 벌레라는 훌륭한(?) 식재료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식단에서 제외시켜버린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한 것이었다.

벌레 예찬은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대두되고 있다. 그때보다 훨씬 더 긴박한 필요에 의해서다. 지난 2008년 유엔식량농업기구가 태국에서 연 워크숍의 주제는 '식량으로서의 곤충, 이제는 인간이 깨물 차례'였다.

그들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 아프리카와 중남미, 아시아 등 90여 개 나라에서 1400여종의 곤충을 먹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많이 먹는 딱정벌레, 개미, 벌, 귀뚜라미에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 비타민, 탄수화물,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올해 초에는 네덜란드 바헤닝언대 과학자들이 곤충 음식을 제안했다. 로이터 통신은 바헤닝언의 한 요리 학원 수강생들이 요리사 헹크 반 구프의 지도 아래 파이에 거저리를 넣어 굽는 모습, 스프링 롤에 구운 메뚜기를 넣는 모습을 보도했다.

"닭고기나 생선을 요리할 때 각종 야채와 함께 곤충들을 같이 넣으면 아주 맛있는 음식이 됩니다."

갑자기 정계와 학계가 입을 모아 벌레를 먹자고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는 인간이 깨물 차례?

식탁 한 가득 음식을 시키고 남은 것을 처리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들은 실감할 수 없겠지만 지금 전 세계는 다가오는 식량난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60억인 인구는 40년 뒤 무려 90억 명으로 불어나게 되며, 최근 식품 가격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장 큰 이유는 기후 변화다. 미국 컬럼비아대와 스탠포드대 공동 연구진은 지난 5월 초 사이언스 지에 "1980년 이후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 밀 생산량이 5.5%, 옥수수 생산량은 3.8% 줄었다.

지난 30년 간 곡물 가격은 약 20%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 작물들이 상승한 온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아사이언스 2011.05.30 기사).

밀과 옥수수에서 눈을 돌려 주목한 것은 곤충이다. 지구 전체 동물의 70%를 차지하면서도, 이제까지 한 번도 조명된 적 없는 이 무제한의 생물 자원 말이다.

곤충 요리의 이점은 단순히 굶주림 해결뿐이 아니다. 지금 전 지구가 매달리고 있는 과제, 친환경과도 직결돼 있다. 바헤닝언대 아르놀트 판 휘스 교수는 곤충이 기존에 식량으로 쓰이던 동물들에 비해, 면적도 덜 차지하고 사료도 덜 들어가며 온실 가스도 덜 배출하는 미래형 에코 먹거리라고 설명한다.

"쇠고기, 돼지고기 등의 소비량은 2050년까지 두 배 가량 늘 예정이지만 가축 사료용 작물을 기르는 땅은 30%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가축이 음식물을 소화할 때 뿜어내는 온실 가스는 전체 온실 가스 중 18%나 차지합니다. 반면 곤충 1kg을 생산할 때 배출되는 온실 가스는 소, 돼지 1kg을 생산할 때 보다 훨씬 적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몰려오는 채식 열풍에도 거슬리지 않는 음식이라는 것. 곤충도 동물에 속하지만 채식주의자들이 불쌍히 여기는 동물에 보통 곤충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이상적일 수 있을까? 유엔식량농업기구는 동남아시아의 국가들과 함께 곤충을 식량 자원으로 바꾸는 시범 사업에 착수했다. 곤충을 대량으로 사육하고 그것을 상품화해 판매하는 시스템 마련에 골몰하는 중이다. 이제 우리는 예쁜 캐릭터가 그려진 포장지에 담긴 곤충들을 사서 아작아작 씹어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벌레 혐오는 본능 vs 학습

그러나 물론 그럴 수가 없다. 곤충은, 아니 벌레는 번데기를 제외하고 (종종 메뚜기도) 이 나라의 식탁에 한 번도 올라온 적이 없다. 개미를 먹고 있는데 장판 틈 새로 개미가 줄을 이어 행진하고 있으면 어쩔 것인가. 애완 동물과 사이 좋게 밀웜(거저리 유충)을 나눠 먹을 수 있을 것인가.

벌레와 곤충은 혐오와 비혐오라는 감정에 의해 분리돼서 쓰이지만 사실 많은 부분이 겹친다. 곤충은 벌레 안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벌레 중에서도 머리 가슴 배로 나뉘어져 있고 다리 3쌍, 날개 2쌍, 더듬이가 있는 것들을 따로 곤충이라고 부른다. 잠자리는 곤충이자 벌레이며, 날개도 더듬이도 없는 거미는 그냥 벌레다.

그러므로 벌레로 총칭해서 쓰도록 한다. 상위 개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치미는 혐오감에 좀 더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다. 벌레에 대한 혐오감은 다가올 식량난을 위해서도 처리되어야 할 대상이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밝혀야 할 진실이다.

저명한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한 집단이 선호하는 음식이 맛이나 모양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철 없는 추측이다. 특정 지역에서 최고로 치는 음식들은 그냥 맛있어서가 아닌, 영양학적, 생태학적, 경제학적으로 최고의 효율성을 인정받아 선택된 것들이다.

그는 벌레가 거의 대부분의 장소에서 선호되지 않는 이유는 혐오스러워가 아니라 그 곳에서 '효율적인' 음식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병을 옮기는 것으로 말하자면 돼지, 닭, 소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벌레는 끓이기만 하면 다른 음식처럼 완벽하게 안전한 음식이 될 수 있다. 보기에 역겨워서 먹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은 오로지 그것을 먹지 않는 사람들뿐이다."

벌레는 영양이 풍부한 훌륭한 식재료이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이 작고 여기저기 흩어져 다니는 동물들을 잡아서 모으는 데만 여간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보다는 차라리 사슴을 잡아 먹거나 돼지와 닭을 키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을 것이다.

반면 벌레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고 떼로 몰려 다니는 아마존 밀림이나 다른 열대 지방에서 벌레는 쉽게 얻을 수 있는 훌륭한 먹거리로 자리잡았다. 가축 사육이 힘든 상황도 한 몫 했다. 벌레에 대한 각 지역의 혐오도는 "결국 얼마나 잡아 먹기 쉬운가"에 따라 조성됐다는 말이다.

이제 벌레를 먹는 모습은 기인 열전에 나오는 것처럼 눈 딱 감은 도전자와 경악하는 관중이 함께 하는 풍경이 아니다. 이미 중국 거리에서는 가판에서 전갈 튀김과 메뚜기 튀김을 판 지 오래 됐고 멕시코에서는 또르띠야 위에 튀긴 메뚜기를 올려서 먹는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독거미 타란툴라는 캄보디아에서 구이용으로 비싸게 거래되고 있으며 이 거미를 넣어 담근 술은 건강주로 여겨진다. 서구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핫릭스 사는 사탕 속에 귀뚜라미와 나비, 전갈 등을 넣은 벌레 사탕으로 대히트를 쳤으며 현재 전갈을 넣은 초콜릿을 시험 판매 중이다. 영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후추 맛이 난다는 동남아 개미를 잔뜩 넣은 막대 사탕을 팔고 있다.

서두에 언급된 빈센트 홀트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벌레가 대중적인 음식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한끝에 어떤 해결안을 내놓는다. 그 방식은 현대 유행 확산의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아 흥미롭다.

"상류사회 사람들만의 방식은 세상 어디서나 유행을 선도하는 매력적인 동인이다. 농업 쇠퇴로 많은 노동인들이 고통받고 있다면 왜 고귀하신 높은 분들이 벌레를 우리 식탁에 음식으로 당당하게 올릴 수 있도록 자리 잡아 주지 못하는가?"



황수현 기자 sooh@hk.co.kr